우리가 서로를 발견하길

영화관에서 쓰는 편지, <여행과 나날>을 보고

by 춤추는바람



Y야, 잘 지내니?

우리가 이번 겨울의 초입에 만났는데 벌써 입춘을 지났구나.


봄이 온다는 기척처럼 입춘을 맞아 며칠은 날이 포근하더니 다시금 영하의 한파가 몰아닥쳤어. 잠시 펴졌던 어깨를 옹송그리고 ‘으으으, 너무 춥다’며 떨고 있지만, 아직 추위가 남았다는 게 다행스럽기도 해.


어느 밤 길을 걷다 나의 숨이 어둠 속으로 희부옇게 번지는 것을 보았어. 바깥은 살이 에일 정도로 차갑지만 내 몸을 통해 나오는 숨만은 뜨거워 김을 내고 있었지. 그걸 보며 새삼스럽게 깨달았어. 우리가 이처럼 따스한 존재이며 살아있다는 건 세상으로 온기를 내보내는 일이라는 걸. 겨울에는 눈을 만나기도 하지. 순식간에 세상을 하얗게 뒤덮는 눈을 보면, 눈물이 쏟아질 것 같고, 아찔해 비명이 새어 나올 것도 같지. 낯선 대상을 처음으로 마주하는 생경함이 내 안에 떠올라. 그럴 때면 갓 태어난 아기의 심정이 이런 게 아닐까 상상해 보곤 해.


그래서일까, 내겐 겨울이 생(生)과 삶에 관한 진실과 비밀을 알려주는 계절 같아. 헐벗은 상태로 지속되는 삶, 가장 낮은 곳에서 숨죽인 상태로도 끝내 새로 태어날 준비를 하는 만물, 추워질수록 선명해지는 우리 안의 온기, 그러므로 우리가 함께여야 하는 이유. 그러니 아직은 눈을 더 보고 싶고 코끝과 귓바퀴의 가장자리가 아릿할 정도로 매서운 추위를 만나고 싶어.


늦기 전에 <여행과 나날>(미야케 쇼 감독, 심은경 주연, 2025)이라는 영화를 보고 싶었던 것도 비슷한 이유일 거야. 영화의 포스터에는 눈으로 뒤덮인 장소에 카메라를 맨 여성이 홀로 서 있어. 눈이 펑펑 내리는 시골 마을에 묶여 오도 가도 못하는 일이 낭만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서 때를 놓치지 않고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고 싶었어.


영화에는 시나리오 작가 ‘이’가 등장해. 영화의 도입부에서는 그가 시나리오를 적어나가는 과정과 해당 시나리오로 만들어진 영화를 교차하여 보여주지. 한적한 바닷가에서 외롭고 조금은 위태로워 보이는 소년과 소녀가 우연히 만나는 이야기야. 영화 속 영화가 끝나면 스크린엔 한 강의실이 비치고, 영화 속 영화를 만든 감독과 ‘이’가 한 교수와 일군의 학생들과 영화에 대한 대담을 나누는 씬으로 이어져. 다음 장면에서는 교수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장례식을 마친 뒤 ‘이’와 몇몇이 교수의 집에 머물러. 그 자리에서 ‘이’는 교수의 동생으로부터 유품인 카메라를 선물 받지. 동생은 카메라를 건네며 이렇게 말해. “매일 아침 카메라를 들고 산책하러 나가요. 어떤 장면 앞에서 사진을 찍는데, 그때마다 살아있다는 감각을 느껴요.”


살아있다는 감각. 우리는 매 순간 살아 숨 쉬지만, 그걸 자각하지는 않잖아. 대체로 살아있다는 것을 잊은 채 살지. 그러다 드문드문, 기쁘고 슬프거나 경이로운 순간에 불현듯 ‘아, 내가 살아있구나, 살아서 이런 걸 느끼는구나!’ 하고 깨닫지 않나. 감각할 새 없이 분주히 흐르는 시간 속에서 문득 시간의 틈새가 벌어진 것 같은 찰나, 나라는 단단한 껍질을 뚫고 외부에서 무언가가 흘러 들어올 때 우리는 살아있다고 느껴. 무의식에 묻혀 있던 ‘나’라는 존재가 의식의 표면 위로 명료하게 떠오르는 순간이지. 그걸 버지니아 울프는 ‘존재의 순간들’이라고 명명했고 삶의 의미란 그런 순간을 알아채는 데 있다고 썼어. 교수의 동생이 카메라를 메고 산책을 하고 사진을 찍으면서, ‘살아있다고 감각’하는 순간을 만난다는 말이 명징하게 다가왔어. 내가 살아오면서 집중했고 앞으로도 간직하고 싶은 건 ‘카메라를 메고 날마다 산책을 하는 사람’의 시선이기 때문이야.


그 뒤로 ‘이’는 한동안 작업이 잘 풀리지 않는 상황에 놓여.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는, 낮인지 밤인지, 새벽인지 모호한 상태에서 ‘이’의 독백이 흘러나와. 일상이란 주변의 익숙한 사물과 감정을 언어화하는 일이다, 참신한 이야기(생각)가 떠오르지 않는 건 일상적인 말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행이란 말에서 도망치는 일이다…. 주인공은 자신이 일상의 언어에 사로잡혔다고 생각하고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급작스레 여행을 떠나. 눈이 내리는 한적한 고장에 도착해 길을 걷고 밥을 먹고 하루 묵을 숙소를 찾아. 그날따라 마을의 호텔은 만실이고, 산 밑에 있는 오래된 여관엔 방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안내를 받지. 마을에서 외떨어져 있어 먼 길을 걸어야 닿을 수 있는 곳을 말이야.


우연히 찾은 낡은 여관에서 주인공은 독특한 주인장과 조우하고 기이한 사건에 연루되기도 하지. 하지만 마침내 “오랜만에 즐거웠다” 말하며 막을 내리는 영화는 서정적이면서도 무척 유머러스해. 영화의 후반부는 내가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뉘앙스였는데, 그래서인지 여운이 길게 남았어. 예측 불가함이야말로 여행의 묘미일 테니, 영화가 내게 남긴 여운을 되새겨 보다 보니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다는 바람이 막을 새 없이 흘러 들어왔어. 낯선 고장에서 모두가 방문하는 박물관과 미술관이 아니라 고작 강가를 따라 걷고 방을 구하지 못해 눈 쌓인 길을 걸어 허름한 여관을 찾아가는 게 다인 영화 속 주인공 같은 여행. 설명할 수 없는 기운에 홀려 어딘가 들어가고 누군가를 만나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대화를 나누고, 내게도 생소한 나를 마주하는. ‘아, 여행이란 그런 거였지!’라는 새삼스런 깨달음이 내 안에서 떠올랐으니, 한동안 그런 여행을 잊고 살았던 걸까.


영화를 보고 나자 눈이 하염없이 내리는 고장으로 훌쩍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동했어. 카메라 하나 달랑 메고 그 고장을 정처 없이 헤매어야지,라는 생각으로 가슴께가 간질간질했지. 살아있다는 감각일 거야. 무언가를 갈망하는 일이야말로 살아있다는 감각과 긴밀하게 닿아 있으니까. 자연스레 지난번 우리의 만남이 떠올랐단다. 그때 네가 물었잖아. “언니, 저랑 암스테르담에 갈래요?”라고.


타국의 도시 이름이 귓가로 흘러 들어오자 가지 못할 것을 예감하면서도 잠잠한 내 가슴에 일순간 물결이 일었던 걸 기억해. 1%의 미약한 가능성을 두고 암스테르담의 거리를 걷는 상상이 내 머릿속에 펼쳐졌던 것도. 실행하지 못했지만, 영화를 보고 네게 생각이 닿고 너와 암스테르담으로 떠나는 상상을 다시 해보았어. 어떤 길을 걷고 무얼 보았을까. 그곳의 날씨와 사람들의 표정은 어떨까. 우연히 누군가를 만나기도 했을까. 생소한 나를, 내게 있는지도 몰랐던 이상한 이야기를 알아채게 되었을까.


편지를 적어 내려가는 사이, 언젠가 암스테르담을 걷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쳤어. 우리에겐 알 수 없는 내일이 있기에 미래라는 괄호를 기대할 수 있어. 갑자기 가슴이 벅차올라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어 보아. 콧구멍을 통과한 공기가 거칠게 소리를 내고, 잠시 크게 부풀었다 가라앉는 가슴을 느껴.


영화 속 영화의 바닷가에서 소년과 소녀가 서로를 발견하듯, 외진 여관에서 ‘이’와 주인장 또한 서로를 발견해. 외롭고 조금은 위태로운 사람들이 우연히 서로를 발견하면서 서로를 구해. 우리는 서로를 발견하기 위해 여기 존재한다고 영화는 전해. 그러니 발견하고 발견되기 위해 더 잘 보고 싶어졌어. 매일 카메라를 들고 길을 나서는 사람처럼 섬세한 눈으로 세계를 탐색하고 싶어.


네가 불쑥, “암스테르담에 갈래요?”라고 물었던 것도 내 안의 어떤 마음을 눈치채 주었던 때문은 아닐까? 너의 안부가 궁금하구나. 추운 겨울은 어떻게 보냈는지, 다음 학기 준비로 바쁜 건 아닌지. 요즘 네게 살아있다는 감각을 건네는 건 무언지. 서로를 발견하기 위해 늦기 전에 연락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