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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춤추는바람 Jun 05. 2021

유월

서로에게 발맞추려는 마음



‘봄장마’라고들 했다. 봄의 끝에서 여름 장마 같은 비를 자주 만났다. 비 그친 다음 날, 바삭하고 투명한 공기가 공간을 채웠다. 하늘은 파스텔 톤의 파란 물감을 풀어놓은 듯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빛은 사방으로 부서져 내렸다. 선선한 바람이 구석구석을 돌며 개구쟁이처럼 간지럼을 태웠다. 



놀이터에선 비눗방울이 피어올랐다. 아이들의 재재거리는 목소리도 날아올랐다. 세상의 명랑함이 다 모인 소풍날 같았다. 하긴, 시인의 말처럼 아이들에겐 매일매일이 소풍이겠지. 딸아이는 여럿이 어울려 노는 언니들을 따라 철봉에 매달렸다 그네를 타다, 바닥에 떨어진 열매를 주웠다.



쉴 새 없이 바람이 드나들었다. 놀이터를 둘러싸고 늘어선 벚나무들이 바람을 따라 크게 흔들렸고 그럴 때마다 파도 소리가 났다. 쏴아-쏴아- 고개를 들고 하늘을 보면 바닷가에 서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바람결에 이쪽, 저쪽으로 쓸리며 몸을 비비는 나뭇잎들. 잎사귀들이 흔들릴 때마다 그 사이를 통과한 빛이 땅바닥 위에서 일렁일렁 춤을 추었다.



‘바람과 나무, 그리고 빛’이라는 커다란 화폭 속에 서 있는 것 같았다. 홀린 듯 두 팔을 양 옆으로 뻗어 보았다. 바람이 뒤흔들어도 그저 자신을 내맡기는 나무가, 세상을 다 차지하는 게 아니라 그늘의 자리만은 남겨주는 빛이, 오늘이면 사라지고 말지라도 열렬한 마음으로 나무를 쓸고 가는 바람이, 내게도 스며들기를 바랐다.



그네를 타던 아이가 곁으로 다가와 나를 따라 두 팔을 벌렸다. 비행기처럼 나르는 시늉을 하다, 서로의 그림자를 쫓다, 나는 아이를 품에 안아 그림자를 포갰다. 나의 커다란 그림자 안으로 아이의 작은 그림자가 쏙 들어왔다. 그림자 속에서 우리는 하나가 되었다. 그 순간 이런 믿음이 찾아왔다. 그림자를 포갤 수 있는 한 우리는 외롭지 않을 거라고. 다가가려는 노력과 하나가 되어 보려는 시도 안에서,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고.



바람과 나뭇잎, 유월의 빛이 넉넉하게 오가는 사이 마음에는 그리움이라는 웅덩이가 파였다. 쏴아- 쏴아- 사방에서 밀려오는 바람과 나뭇잎의 파도 소리는 그리움의 파도가 되었다. 밖에서 일하느라 우리 곁에 없는 남편이 갑자기 보고 싶어졌다. 



“날씨가 너무 좋다. 일찍 오면 좋겠다!”

남편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유월, 소리 내어 말해본다. 유순하고 둥근 무언가가 입안에서 굴러 나온다. 날카롭고, 끈적거리는 더위가 오기 전에, 이 물결 같은 시간에서 마음의 모서리를 다듬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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