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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춤추는바람 Jun 17. 2021

온전한 당신에게

당신에게 건네고 싶은 말



마을버스를 타야 갈 수 있는 큰 마트를 아이와 함께 다녀왔다. 피곤했는지 돌아오는 차에서 아이는 까무룩 잠이 들었다. 금세 내릴 곳에 도착했고 어쩔 수 없이 아이를 깨웠다. 간신히 버스에서 내린 아이는 잠이 덜 깨 정신을 못 차렸지만 짐이 많아 업거나 안아줄 수 없었다. "졸려." 힘없이 말하며 눈도 제대로 못 뜨는 아이가 애처로워 그 앞에 쪼그려 앉았다. 아이는 전신의 힘을 내게 맡기며 기대어 안겼고 나도 그런 아이에게 기댔다.



내가 기대면 아이가 쓰러지지 않을까, 아이의 무게로 내가 휘청거리지 않을까 했던 걱정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아이의 무게와 나의 무게가 만나 우리를 지탱해주는 힘이 되었다. 의심 없이 엄마에게 기대는 아이처럼 나 또한 불안을 버리고 전적으로 기대었기에 만들어진 힘. 아이에게 무게를 싣지 않으려 내 몸에 힘을 주며 애매하게 버티었다면 뒤로 넘어지지 않았을까. 우리는 투명한 믿음으로 단단한 기둥이 된 채 신호등이 바뀌길 기다렸다.



아이와 몸을 맞대고 있던 잠깐 동안 더없이 안온했다. 나를 안아주는 아이가 이토록 작은데도 충분하고 완전하다고 느꼈다. 어떤 조건이 갖춰져야 완전해지는 게 아니라 존재 자체로 이미 완전하다는 걸 온몸으로 감각했다. 내 품을 채우는 따스하고 보드라운 아이의 온기를 느끼며 온전함이란 서로에게 기대면서 완성되는 걸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통해 온몸을 다해 기대는 법을 알게 된 것처럼, 그러는 동안 내가 조금 투명해진 것처럼.



타인에게 기댄다는  취약함을 드러내는 일이고 내겐 그게 어려웠다. 기대는  나약한 사람의  같았고 스스로 해낼  있어야 어른이 된다고 믿었으니까. 질책이나 비난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이 앞서기도 했다. 많은 일을 혼자 해내려 애썼고, 단점을 들키지 않으려 강한 척하느라 날카롭게 굴기도 했다.



자신의 부족을 스스로온전히 포용하지 못했던 이다. 내가 나를 받아들이지 못해 타인에게도 취약한 모습을 들키기 싫었던  테고. 기대고 싶은 순간조차 자존심을 세우며 혼자 버티. 그런데 나를 수용하고 인정하는  상대를 수용하고 인정하는 문제로 연결되기도 한다. 자신에게 너그러울  없어 나를 몰아세웠던 만큼,  그만큼 나와 타인 사이에 다가갈  없는 공백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있는 그대로 나를 받아들일  있는 마음, 그런데도 나를 믿을  있는 마음이 타인에 대한 믿음으로 옮아갈  있다고 생각한다. 완벽할  없는 우리에겐 저마다의  구석이 있기 마련이다. 각자의 비어 있는 부분을 부족이 아닌  사람의 고유한 무늬로 바라본다면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할  지 않을까. 그리고 의심 없이 기댈 수도 을 것이다. 자신의 연약함을 받아들이고 누군가에겐 전적으로 기대기도 하면서, 완벽해지려는 욕심을 버리면서, 자신으로 온전해질 수 있을 것 같다. 서로에게 품을 내어주고 타인의 연약함을 보듬으면서, 우리는 부족한 채로 온전할 수 있고  온전함으로 조금씩 강해질 수 있을 것이다.



살아가면서 맺는 관계에서 일말의 의심과 경계, 걱정이나 방어적인 마음 없이 자신을 맡기는 대상을 만나는 일은 소중하다. 그렇기에 아이와 맺는 관계가 기적처럼 느껴진다. 아이는 자신을 전적으로 내게 맡기고 무한한 신뢰와 애정을 보여주니까. 우리가 서로에게 그런 존재가   있음을 경험하고 알아 가면서, 혼자 완벽해지려는 불가능마음을 버릴  있었다. 그러느라 고되고 아프고 힘들었던 마음과 작별할  있었다. 겸손하게 나를 인정할수록 고마운 일이 많아졌다. 부족한 나도 괜찮다고 다독이며 누군가에게 기대는 법을 배우고 있다. 그게 함께 살아가는 삶이고 경계를 허물고 타인을  안에 들이는 방식일 거라고 생각하면서.



아이는 매 순간 완전함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보여준다. 매끈하고 상처가 없고, 실수 없이 빼어난 것만이 완전함이 아니라고. 서툴고 모나고, 흠집이 있더라도 그것이 고유한 결이 되어 제각각의 무늬로 아름다운 것, 실수하더라도 다시 배우고 웃을 수 있는 힘이 완전한 거라고 알려준다. 깨알 같은 즐거움을 발견하고 물처럼 유연한 것, 봄날의 햇살처럼 따사롭고 여름날의 새벽이슬처럼 촉촉한 것, 겨울의 눈처럼 희고 빛나면서 보름달처럼 둥그렇고 산들바람처럼 간지러운 것. 아이들이 지닌 순수하고 자연스러운 본성은 그 자체로 완전한 거라는 생각이 든다.



완전함이란 순간에 잠시 닿을 수 있는 덧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완전해지려는 노력이 아니라 부족한 채로 온전함을 받아들이는 노력일 것이다. 연약하고 흠이 있더라도 자신으로 온전할 수 있고 서로에게 기대며 완성을 향해 갈 수 있다고, 작은 아이가 매일 온몸으로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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