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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춤추는바람 Sep 11. 2021

세상의 선(善)을 지키는 사람들

아이와 함께 자라는 엄마



아파트 단지에 장이 서는 날이다. 딸아이와 손잡고 과일가게에 들렀다. 일주일 동안 먹을 과일을 넉넉하게 사서 배달을 부탁했다. 건너편 채소가게로 옮겨 가 감자와 오이를 구입해 장바구니에 담는데 과일 가게 아저씨가 나를 불렀다. 같이 배달해주겠다면서. 어차피 과일을 가져다주러 갈 테니 오토바이 뒤에 봉지 하나를 추가하는 건 대수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 말이 반갑고 고마웠다. 어린 아이 손 잡고 들고 가기엔 꽤나 무게가 나갈 거라고, 그렇게 알아채 주는 마음이 좋았다. 아저씨의 선명한 호의를 받고 나니 이전의 일들이 다르게 보였다. 아저씨는 가끔 처음 불렀던 가격을 정정해 다시 낮은 가격을 제시한다. 마치 내게만 특별히 그 가격으로 준다는 식으로. 그러면 물건을 팔려고 술수를 쓰나 보다 생각했다. 



이제는 그게 술수면 또 어떤가 싶다. 매주 보는 사이 좋은 물건만 판다는 걸 알게 되었고 가격과 물건에 대한 신뢰는 쌓였다. 그런 관계에서 어떤 일이 채결된다면 즐거울수록 좋은 게 아닐까. 아저씨의 말이 더러 허풍처럼 느껴지더라도 웃으면서 속아넘어가고 싶다. 그 덕에 싸게 산 것 같아 기분 좋아지니 그것대로 반길 일 아닐까. 



과일 가게에서 나갈 때면 돌아서는 아이를 불러 귤 하나 손에 쥐어 주고 반갑게 인사하는 아저씨, 다른 데서 산 물건도 무거워 보이면 같이 배달해주는 아저씨. 작은 걸 사소하게 여기지 않는 모습에서 선한 기운이 느껴졌다. 물건만 팔면 그만이지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이의 차이는 작은 데에서 보인다. 



떡볶이 가게 아저씨에게 좋은 인상을 받은 것도 음식을 전해주는 모습 때문이었다. 봉지에 담은 떡볶이를 건네 주기 위해 굳이 포장마차를 돌아 나와 내 앞까지 왔던 적이 있다. 손님이 많지 않아 여유가 있어서 였을지 모르지만, 맞은편에서 손을 뻗어 건네도 될 봉지를 굳이 밖으로 나와 두 손으로 내어주는 모습에 나도 더 공손하게 두 손으로 받아 들었던 기억이 난다. 오가는 말투와 태도에서 호의를 느꼈던 터라 그 행동이 괜한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고. 



상대의 세심한 모습을 발견하고 나면 사무적으로 대했던 이에게도 호기심이 자란다. 가게 주인과 손님이라는 표면적 관계를 넘어 인간적으로 친근함을 느끼고,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 같아 존중의 마음도 생긴다. 이런 사람들이 곳곳에 숨어 있어 세상이 일정한 방향으로 굴러가는 게 아닐까 싶다. 박혜윤 작가의 말처럼 그들 덕분에 세상이 나쁜 방향이 아니라 조금씩 나아지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이 세상에 선이 늘어나는 것은 역사에 남지 않을 사소한 많은 행동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가 더 나쁜 세상에서 살 수도 있었을 텐데 그렇지 않은 이유의 절반쯤은, 드러나지 않는 삶을 충실하게 살다가 지금은 아무도 찾지 않는 무덤에서 잠든 이들 덕분이다.”

p.77 <숲 속의 자본주의자>, 박혜윤, 다산북스



야채 가게에 들렀다 나오는 나를 과일 가게 아저씨가 발견한 우연 덕분인지 모른다. 하지만 나를 보고도 저 정도쯤이야 하고 그냥 넘겨버릴 수도 있는 일.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알아챌 수 없고 알고도 무심히 지나쳐버리는 게 흔한데. 어린 아이를 데리고 가는 엄마의 입장을 생각해주고, 자신의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게 고마웠다. 누군가의 다정한 마음을 건네 받은 기분. 



한 번 더 생각해주고, 한 번 더 그쪽으로 움직여주는 것. 다정함이란 이런 걸 테다. 개별적으로 존재했던 타인과 나 사이에 가느다란 실을 연결하고 미세한 온기를 흐르게 하는 것. 그 온기가 우리의 발길을 어떤 방향으로 옮기게 하지 않을까. 서로의 입장을 이해해보려 노력하고, 한 발 물러서고, 한 번 더 손을 내미는 방향으로. 그래서 세상을 더 나빠지지 않게 하는 힘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매번 들르던 떡볶이 가게를 그냥 지나쳤다. 튀김이라도 살 걸, 떡볶이나, 어묵이라도. 그도 아니면 음료수라도 한 잔 사며 인사만이라도 할 걸 후회가 된다. 시몬 베유는 "어떻게 지내요?"라고 묻는 일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 했던가. “어떻게 지내요?”라는 사소한 인사에 "당신의 고통은 무언인가요?"라는 관심이 숨어 있다던 시그리드 누네즈의 문장도 떠오른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어요?’, ‘어떻게 지내요?’, ‘괜찮아요?’ 처럼 사소한 말에 담긴 관심에서 타인에 대한 사랑은 시작된다. 사랑도 선(善)도 세심한 마음이 한다. 다음 주에는 잊지 말고 떡볶이 가게에 들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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