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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춤추는바람 Oct 01. 2021

우리를 불러주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야

아이와 함께 자라는 엄마


 



서윤아



엄마가 어릴 적, 집 앞 골목은 날마다 뛰어노는 아이들로 북적거렸어. 문을 열고 나가면 어디선가 친구들이 나타났고, 잘 모르는 아이들과도 아무렇지 않게 어울려 놀았지. 땅따먹기나, 다방구, 얼음땡 같은 놀이를 하면서. 기억 속 어떤 장면에선 그 골목에 아무도 없고 한낮의 빛만 선명해 괴괴한데, 대체로 많은 장면에서는 아이들로 떠들썩해.



엄마가 특히 좋아했던 건 고무줄놀이야. 가느다란 검정 고무줄을 길게 늘어뜨려 술래 두 명이 양쪽 끝을 잡고 서 있으면 다른 편의 아이들이 노래에 맞춰 고무줄을 넘는 놀이지. 고무줄이 가슴 높이 정도 올라갔을 때부터 그 놀이의 진가가 드러나. 그때부턴 줄을 넘기 위해 높이 뛰어올라야 했거든. 술래의 뒤로 돌아갈 때 박차를 가해 달리고 그 힘으로 도움닫기를 하면 아주 높이 몸이 떠 올랐어. 



발로 세차게 바닥을 구를 때의 단단함, 뒤 이어 몸이 허공으로 솟구치던 느낌을 기억해. 그럴 때면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 같았으니까. 높이 떠오르려면 아주 가벼워져야 하는데, 그러려면 온 힘을 다해 발을 굴러야 하는 거야. 온몸의 무게로 힘을 주어 바닥을 구르면 가장 가벼운 상태가 되어 하늘로 떠오를 수 있다니, 정말 신기하지 않니? 어쩌면 두 발로 세차게 바닥을 두드리는 간절함에 땅이 나의 몸무게를 흡수해버리는 마법이 일어났던 건지도 몰라.



우리는 목청 높여 노래를 부르면서 춤을 추듯 고무줄을 넘었어. 노래에 맞춰 리듬을 타며 고무줄을 넘나들다 보면 나비가 된 것 같았지. 치마를 입고도 그렇게 펄쩍펄쩍 뛰면서 놀았으니까. 치맛자락은 뛰어오를 때마다 커다랗게 부풀어 올랐다 가라앉곤 했어. 고무줄이 머리 높이까지 올라가면 다리를 쭉 뻗어 올려 발 끝에 고무줄을 걸어 넘었어. 발 끝에 아슬아슬하게 고무줄이 닿는 짜릿함도 좋았단다.



놀이에 빠져 있다 보면 골목에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고, 멀리서 엄마가 들어오라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어. 우리는 아쉬워하며 조금만, 조금만, 하며 시간을 끌었지. 어둠이 내려 검은 고무줄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놀았어. 계속 뛰어다니느라 얼굴은 벌게지고 이마와 콧잔등에 땀이 송송 맺혔지만, 밤이 새도록 고무줄을 뛰었으면 하고 바랐던 그 저녁이 무척 그립구나. 어둠이 내리면 뛰어들어갈 집이 있고, 엄마가 갓 지은 밥을 담아 놓은 밥상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일까. 아무 걱정 없이 온 힘을 다해 발을 구르고, 더 높이 날아오르기를 한없이 꿈꿀 수 있었던 건 말이야. 



요즘 네가 줄넘기에 빠져 있잖아. 줄넘기를 배운 지 나흘밖에 안되어 재미있다고 날마다 연습하고 있지. 어린 너에겐 줄넘기가 아직은 어려울 거야. 그래서 줄을 돌리는 손과 뛰어오르는 다리가 한 박자씩 어긋나 어설픈 너의 모습이 얼마나 귀여운지 모르지? 그런데도 매 동작에 온 힘을 다하느라 기다란 줄을 돌리기 위해 두 손은 머리 위까지 올리고, 바닥에 떨어진 줄을 넘으려 뛰어오른 두 다리는 삼십 센티도 넘게 허공으로 떠오르는 거야. 어찌나 세게 발을 구르는지 펄쩍 뛰어오르는 너를 보며 엄마는 조금 뭉클했어. 줄넘기를 하는 순간에도 너는 진심을 다 하고 있으니까.



줄을 넘기 위해 두 발로 땅을 구를 때, 너도 그런 간절한 마음이었을까. 한없이 가벼워져 하늘로 날아올랐으면 하는. 어린 내가 고무줄 뛰기를 할 때처럼 말이야. 매 순간 간절하게 발을 구르느라 너의 얼굴은 상기되고, 네 기도를 들은 듯 땅바닥이 너를 밀어 올려 주었을까. 



그런데 말이야, 고무줄놀이가 끝나갈 때 밥 먹으라고 불러주는 엄마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어둠이 내려도 내 이름을 불러주는 목소리가 없었다면, 그 놀이의 끝은 얼마나 쓸쓸했을까. 누구야, 하고 이름을 불러주는 엄마가 있어 매번 아쉬워하면서도 반갑게 집으로 달려들어갔던 걸 거야. 줄을 넘을 때마다 큰소리로 하나, 둘, 셋, 넷-하고 개수를 세어주고, 열 번을 넘고, 열다섯 번을 넘은 걸 알아주는 엄마가 있어 너의 줄넘기가 더 즐거웠는지도 모르겠구나. 



우리의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이 있어서, 우리의 놀이는 그토록 즐거웠던 게 아닐까. 정신없이 빠져들어 나를 잃게 되어도 두렵지 않았던 건, 이름을 불러 나를 찾아줄 사람이 있다는 믿음 때문이라고. 그래서였구나. 잠에서 깬 네가 ‘엄마!’하고 큰 소리로 부르며 나를 찾을 때, 아빠와 놀러 나갔다가도 집에 돌아오면 문을 열자마자 ‘엄마!’부터 외칠 때, 조금은 아쉽지만 이상하게 반가운 마음으로 달려가게 되는 건. 그때마다 내 표정은 집으로 뛰어 들어가던 소녀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나를 불러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여전히 엄마는 나를 잃어버릴 만큼 빠져들 수 있는 세계를 찾는지 모르겠어. 나만의 세계에 빠져들어 자신을 잃어도 나를 불러줄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래서 엄마는 아직도 꿈을 키우나 봐. 언제든 나를 불러줄 사람들이 있어서. 



너에게도 엄마가 부를 때까지 정신없이 빠져드는 세계를 발견하는 날이 오겠지. 몰입의 기쁨으로 충만해지는 순간이. 자신을 잃을까 두려워하지 않고 기꺼이 자신을 내던지는 모험을 떠나길. 엄마가 너의 그런 미래를 응원해. 언제든 엄마가 너를 불러 줄 테니까. 돌아올 수 있게 여기서 너를 부를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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