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자라는 엄마
산책을 하는 동안 모두가 아이의 손을 잡고 싶어 했다. 외할머니, 이모, 엄마, 셋 다 아이 손을 잡겠다고 아우성이었다. 작고 보드랍고 따뜻한 아이의 손은 잡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지니까. 몰랑몰랑하고 유연한 아이의 손, 그 연약한 걸 손에 꼭 쥐고 있으면 마음도 그 손 같은 상태가 되어버린다. 그런데 그게 이상하게 위로가 되고 기쁨이 된다. 연약한 것은 우리 안의 조그맣고 여린 부분을 건드린다.
아이와 같이 <월-E>라는 애니메이션을 보았다. 미래의 어느 날, 지구는 인간이 버린 쓰레기로 뒤덮여 생명이 살 수 없는 황폐한 곳이 되어버렸다. 그런 지구를 버리고 떠난 인간들은 우주선을 타고 우주 공간을 떠돌고 ‘월-E’만이 홀로 남아 쓰레기를 치우며 살고 있다. 쓰레기 더미에서 흥미를 끄는 것들을 모아 집을 꾸미고, 바퀴벌레를 친구 삼아 살아가는 ‘월-E’는 버려진 비디오테이프에서 사람들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서로 손을 잡는 장면을 홀린 듯 바라본다. 손을 잡은 다는 건 무얼까, 궁금하다는 듯.
그런 ‘월-E’ 앞에 인간의 우주선에서 보낸 탐사 로봇 ‘이브’가 등장하는데 오랫동안 혼자였던 ‘월-E’는 ‘이브’의 존재에 호기심을 보이며 친구가 되고 싶어 한다. ‘이브’가 식물을 발견하고 그걸 보호하기 위해 작동을 멈추자 ‘월-E’는 이브를 보살피고 ‘이브’가 우주선으로 실려가게 되자 망설임 없이 그 뒤를 쫓아가 마지막까지 이브를 도와준다. 그의 도움으로 마침내 우주선은 지구로 돌아오게 되고, 하나뿐인 식물을 땅에 심으며 사람들은 미래를 꿈꾼다. 지구를 구하는 '월-E’의 선한 행동이 ‘손을 잡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되었다는 영화의 메시지는 무척 사랑스럽다.
‘월-E’는 기계인데도 비디오 영상 속 사람들이 손을 잡는 모습에 매료되고, ‘이브’를 만나 사랑에 빠져 그를 보살피고 도와준다. 로봇이지만 인간과 같은 감정을 지닌 ‘월-E’는 누군가를 필요로 하고, 서로 협력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그런 ‘월-E’가 손을 잡는 행동에 호기심을 보인다. 이를 통해 그 작고 단순한 행동에 담긴 의미를 되새겨 보게도 된다. 내가 아닌 타자의 존재를 인식하고, 그와 연결되고 싶어 하는 마음의 발로. 나와 세상을 연결하려는 마음과 행동의 시작이 바로 손을 잡는 일이라는 것을.
우리에게는 손이라는 게 있어 무언가를 만들고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고, 이를 통해 문명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또한 손은 느끼고 감각할 수 있는 기관으로 타자와 언어 이상의 교감을 나눌 수 있게 해주기도 한다. 손을 잡는 일은, 당신과 연결되고 싶다는 비밀스러운 고백이자 따스한 신호다. 손을 잡고 싶은 마음은 내가 아닌 너를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지극히 연약한 마음에서 비롯된다. 그 마음이 지구를 구하는 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영화의 메시지가 이제야 더 분명하게 와닿았다. (<월-E>는 2008년에 만들어진 애니메이션 영화다.)
쓰레기 더미에 뒤덮인 지구의 모습, 갑작스레 나타나는 거대한 우주선, 월-E와 이브가 쫓기는 추격신 등 긴장감이 감도는 화면 앞에서 아이는 무섭다며 이불을 뒤집어쓰기 일쑤였다. 그런데도 계속 보고 싶다며 고집을 부리던 아이는, 영화가 끝나자 너무 재미있다며 주말에 또 보자고 했다. 너무 재미있어서 꿈속에도 월-E 가 나올 것 같다며 설렘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불속으로 숨느라 바빴고, 더빙 영화를 찾을 수 없어 영어로 영화를 보았는데도, 이런 질문을 하늘 걸 보니 중요한 이야기는 다 이해했구나 싶었고.
“계속 친구를 도와주는 애가 누구야?” (월-E)
“마지막에 친구를 사랑하는 애는?” (이브)
“사람들이 쓰레기를 버려놓고는 왜 '월-E'한테만 치우라고 하는 거야!!!”
누군가의 손을 잡고 싶어 지는 마음, 월-E와 같은 마음이 우리를 서로 돕게 하고 지켜줄 거라는 걸, 그래서 서로 사랑하며 지구에서 계속 살아가게 해 줄 거라고 아이 같은 마음으로 믿게 된다. 그러니 곁에 있는 이의 손을 잡을 수밖에 없는 연약함이야말로 우리가 지닌 소중한 본성이 아닐까 싶고. ‘월-E’와 ‘이브’를 흉내 내 아이와 손가락 사이사이 깍지를 끼어 손을 잡았다. 꼭 잡고 싶은 손, 절대 놓치고 싶지 않은 손이 우리에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