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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춤추는바람 Oct 18. 2021

쓰레기를 버릴 때마다 미안해진다

아이와 함께 자라는 엄마




 

비가 온 뒤 급작스레 기온이 떨어졌다. 아이는 감기에 걸렸고 구름 낀 하늘이 기분을 가라앉히는 주말, 우리 식구는 내내 집에만 있었다. 점심으로 우동을 끓여 먹고 오후가 되자 출출한 기분이 들어 피자를 시켜 먹었다. 저녁엔 건강한 음식을 먹었으면 싶었지만 찬거리가 마땅치 않았다. 배달 앱을 켜고 생선 구이를 검색했다. 피자에 이어 생선 구이와 대구탕까지 배달시켜 먹었다.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배달 음식 먹는 횟수가 많아졌다. 지난여름 극심한 더위와 감염병의 유행으로 남편의 재택근무와 아이의 어린이집 휴원이 이어졌고  식구가 집에 머무는 날이 지속되었다. 하루  번의 식사를 혼자 힘으로 충당할  없어 상당 부분 배달 음식에 의존했다. 음식을 시켜 먹으면 식사 준비를 위한 시간과 노력을 줄일  있어 편리하지만 음식이 담겨왔던 플라스틱 용기가 쓰레기로 쌓여 마음이 불편했다. 당시엔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합리화했지만 그때 버린 쓰레기가 내가 죽을 때까지 썩지 못한  환경을 오염시킬  있다고 생각하면 아이에게 미안해진다.




하지만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된 요즘, 아이를 데리고 밖에서 뭘 먹기도 어렵고, 매 끼니 집밥을 차려 내는데도 한계가 있다. 주말이면 나도 좀 쉬고 싶고 평소에 먹지 않았던 음식을 먹었으면 싶기도 하다.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즐거움을 채울 외부활동이 제한되니 먹는 것으로 라도 소소한 기쁨을 누리고 싶으니까. 다만 가능한 배달 음식의 횟수를 줄이고 일회용 수저를 받지 않거나 불필요한 반찬을 거절하는 방식으로 쓰레기를 덜어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다. 그리고 음식이 담겨온 용기들은 깨끗하게 씻어서 분리배출하여 재활용될 수 있게 신경 쓴다.




감염병의 유행은 소비 패턴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식당에 가는 대신 음식은 배달해 먹고 쇼핑은 인터넷으로 주문해 택배로 받는다. 이는 쓰레기 배출로 이어진다. 음식이 담겨있던 일회용 용기와 물품이 담겨 있던 택배 박스, 비닐 포장재, 냉장 제품을 위한 냉매제 등 엄청난 쓰레기가 순식간에 만들어진다. 재활용 쓰레기 버리는 날이면 아파트 단지 내 분리수거 공간에 산더미처럼 쓰레기가 쌓인다. 비닐과 플라스틱 폐기물이 넘쳐나는데도 음식 배달 서비스 이용률은 점점 높아만 간다. 이러다 코로나 19와 함께 쓰레기 대란을 마주하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시간과 물에 대하여>(북하우스, 2020)를 쓴 안드리 스나이르 마그나손에 따르면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생산된 모든 플라스틱의 절반이 2000년 이후에 생산”(178쪽)되었다고 한다. “지난 10년간 우리는 기록이 시작된 이래 가장 더운 여덟 해를” 겪었고 “21세기 이후 아이슬란드 빙하는 지난 100년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많이 쪼그라들었다”라고 한다. 우리가 쓰고 버리는 포장재를 만들고 폐기하기 위해 공장이 가동되면서 공기 중에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로 기온이 상승하고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높아질 것이다. 육지가 바다에 잠기고 기온은 지속해 상승하여, 사막화, 가뭄, 산불, 지하수 고갈이라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저자는 아이들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까 고민한다. 고통받고 아파하는 지구의 모습을 신문이나 동영상으로 접한 아이들이 눈물 흘리며 “지구가 우리 때문에 파괴되고 있나요?”(136쪽)라고 물을 때마다 명치끝이 아파온다고 했다.




“아파해야 한다. 그 아픔을 막기 위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음 또한 아파해야 한다. 가슴 아파함 없는, 안쓰러움 없는, 연민 없는 사랑은 없다. 가슴 아파할 수 있음이 앎과 변화를 낳는다.”(54~55쪽) <앞으로 올 사랑>(위고, 2020)에서 정혜윤 작가는 팬데믹과 기후 재난의 시대를 헤쳐나가는 데 필요한 것이야말로 ‘사랑’이라고 역설한다. 변화의 가능성은 사랑에 있다고 말이다. 지구에서 사랑하는 사람과의 풍요로운 삶을 지속하기 위해 자연에 대한 경이로움을 회복하고 다른 존재와의 관계 속에서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고. 우리가 바뀌지 않는다면, 지구 온난화는 가속화되고 식량난과 함께 주거난이 밀어닥칠 것이다. 아이들에게 남겨질 세상은 말 그대로 소설 속 디스토피아가 될 것이다. 감염병은 왜 생겼는지, 인간이 동물과 자연에게 가하고 있는 학대와 우리를 지배하는 세상의 논리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게 되면 일말의 고통과 연민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아픔을 느끼는 것, 거기에 변화의 시작이 있다고 작가는 말한다.




아이들에게 미안해서 쓰레기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아름다운 이 땅을 더 아름답게 만들어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지는 못할 망정, 더 망가뜨리지는 말아야 할 것 같아서. 인터넷으로 택배 주문을 하기보단 동네 슈퍼에 가서 장을 보고 비닐봉지 대신 장바구니를 사용한다. 물건을 구입할 때는 포장재를 최소한으로 사용했는지 재활용은 가능한지 따져본다. 가능하면 플라스틱보다 종이로 포장된 것으로, 가능하다면 안 사 보는 편으로 노력을 기울인다. 액체 비누를 고형 비누로 교체했고, 습관적으로 쓰던 물티슈도 사지 않게 되었다. 사회적으로도 다양한 통로에서 포장재 및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는 한편 다회용기나 친환경소재 활용을 적극적으로 고민하면 좋겠다. 최근에는 반찬통을 들고 가 음식을 포장해오는 다정하고 용감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도 하니 희망이 없지만은 않아 보인다.




우리가 필요해서 구입한 물건조차 언젠가는 쓰레기가 된다. 단순한 소비에 있어서도 한 번 더 고민하고 따져봐야 하는 이유다. 며칠 전 어린이집에서 보낸 가정통신문에 ‘11월 26일은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이라는 안내가 적혀 있었다. 우리의 소비가 지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해보자는 취지로 세계적으로 벌이는 캠페인이라고 한다. 아무것도 사지 않으면 좋겠지만 가능한 ‘아무것도 사지 않는 것’을 지향하며 소비의 순간 나의 행동을 되새겨보고 그 행동이 생산과 소비, 사회와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고민해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멈춰 서 생각하는 사이 소비의 욕구가 잦아들 수 있고, 그도 아니라면 사회와 환경에 피해가 덜 가는 선택지를 골라내는 기회가 될 수 있을 테니까.




재활용 분리수거 날까지 이틀이 남았는데 쓰레기통(분리수거함)은 이미 꽉 차 버렸다. 오늘내일은 조금 더 신경 써서 쓰레기를 줄여 봐야겠다. 그런 노력이 때론 번거롭게 느껴지지만 아이들이 숨 쉴 깨끗한 공기가 줄어들고 뛰어놀 세상이 좁아진다는 생각을 하면 어려운 일도 아니지 않은가 싶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환경을 보살피는 마음으로 이어지고 확장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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