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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춤추는바람 Oct 20. 2021

걷기 좋은 계절

줄리언 오피와 엄유정 전시 리뷰





계절을 뛰어넘은 듯 갑작스레 공기의 온도가 바뀌었지만, 구름 한 점 없이 높고 깊고 파란 하늘은 좋다. 걷기 좋은 계절이다. (옷은 두껍게 챙겨 입고.^^) 나가기 귀찮아하는 아이를 돈가스와 케이크로 꼬셔서 삼청동으로 간다.








국제 갤러리에서는 영국의 대표적 현대 미술 작가인 줄리언 오피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줄리언 오피는 건물, 사람, 동물을 단순화시켜 현대적이고 경쾌한 이미지로 보여주는 조형 작업을 해왔다. 이번 전시에서도 다채로운 색상으로 재현된 동물과 거리를 걷는 사람들, 런던 거리의 역사적 건물을 만나볼 수 있다.



그의 작품이 다루는 친근한 대상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소재가 단순한 선과 천연의 색이라는 예술의 언어를 통해 미적 감각을 지닌 작품으로 변형될 수 있다는 걸 체험하게 해 준다. 즉 예술이 지닌 ‘재현’의 의미, 재현의 개념에 대해 숙고하는 기회가 되어 준다. 줄리언 오피 작품의 두드러진 특징은 대상을 재현하기 위해 복잡성을 제거하고, 윤곽만 남긴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상의 특징은 압축·강화되지만 그로 인해 인위성이 강조된다. 친근하게 접해왔던 대상이지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닌 ‘대상화’된 무엇이라는 발견은 하나의 대상이 우리에게 떠올리는 개념과 실제 그 대상과의 차이까지 생각해보게 한다.



그래서일까. 빠르게 걷고 있는 사람들을 재현한 작품에서 조형물에 발이 없다는 사실이 인상적이다. 발이 없이 걸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저들은 걷고 있는 것일까(걷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걷는 시늉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저들은 걷는 사람일까, 라는 식으로 이어진다. 작가가 의미를 부여해 누락시킨 것인지, 단순화를 극대시키고 미감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써 제거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런데 눈앞의 조형물은 고정되어 있는데도 바라보는 관객으로 하여금 일정한 운동감과 속도감을 느끼게 한다. 걷고 있다는 착각, 움직이고 있다는 착시. 극도로 단순화시킨 대상이 그야말로 걷는 순간의 특성을 정확하게 담아내고 있다는 의미일 테다. 여기 작품 앞에서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는 내 머릿속의 과정이 작가가 의도한 "재현의 개념과 이미지가 읽히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 만들어낸 효과가 아닐까.

*국제 갤러리 전시 안내문



발이 없으면 걸을 수 없다는 걸 알지만 발이 없는대도 걷는 것처럼 보이는 조형물, 재현된 대상과 실재와의 대조, 그 속에 숨어있는 역설은 눈에 보이는 현상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보게끔 이끌어 준다. 움직이는 듯 보이지만 고정되어 있다는 역설, 정확하게 재현했지만 단지 윤곽선일 뿐이라는 역설, 그 대상을 극명하게 떠올리게 하지만 아주 인위적이라는 역설. 작품이 건네는 경쾌하고 즐거운 이미지 속에서 도시를 걷는 우리가 바로 그 작품 속 누군가일 수 있다는 상상을 한다. 그리고 발이 없는 걷기를 통해 걷는 사이 우리에게서 제거되는 것은 무엇일까 고민해보기도. (발일 수도 있고, 머리일 수도, 감정이나 눈일 수도 있는 무언가…)










엄유정 작가의 <밤-긋기> 전시(학고재 디자인 프로젝트 스페이스)에서는 밤이어야 볼 수 있는 풍경과 얼굴을 만날 수 있다. 엄유정 작가는 여행책에 실린 일러스트레이션(드로잉)을 통해 알게 되었다. 간결한 선으로 특징을 잡아 낸 인물들은 모난 구석 없이 둥글둥글해 호감이 갔다. 그들은 느긋하거나 낙천적일 것 같았고, 남을 해하지 않고 넉넉하게 세상을 품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이번 전시에서 만난 엄유정 작가의 그림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이미지와는 조금 다른 결의 인상을 풍긴다.



밤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 일 것이다. 대체로 검은빛에 채도가 낮은 그림에서 어두운 내면에서 흘러나온 알 수 없는 일렁임이 감지된다. 제목을 통해 밤에 보았던 풍경과 얼굴을 캔버스에 담아내었을 거라 유추해본다. 빛이 사라지고 어둠 속에서 간신히 형체를 드러내는 것들은, 낮에 보는 것과 다른 모습일 테다. 같은 나무의 가지와 잎사귀도 밤에는 낮과 전혀 다른 모양과 분위기로 낯선 메시지를 전할 것이다. 모두가 잠든 시간, “늘 그곳에 있었지만 잊히는 것들, 조명 바깥의 이야기들이 장면의 주인으로 거듭”*나는 밤의 시간, 풍경을 들여다보며 사물이 건네는 모호하고 조금은 두려운 이야기에 가만히 귀를 기울였을 작가의 모습이 떠오른다. 온통 검게 칠해진 나뭇잎, 회색과 푸른빛을 띠는 나뭇잎을 바라보면 작가가 들었을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아마 그 이야기를 듣던 작가의 표정이 그림 속 얼굴들 속에 있지 않을까. 둥그런 얼굴에 동그란 눈, 기다란 선으로 그어진 코와 입, 그 단순한 얼굴 속에 깃든 무궁한 표정은 해석이 불가해 한참 들여다보게 된다. 슬픈 건지, 기쁜 건지, 두려운 건지, 명확하지 않아 더 궁금해지는 얼굴들. 분명 무언가를 숨기고 있을 것 같은 그런 얼굴이라 그림 속 눈을 오래도록 바라보게 된다. 비어 있어 더 가득 차 보이는 눈을 바라보며 이렇게 묻게 된다. “얼굴들은 누구를 조용히 바라보며, 무엇을 남몰래 기억하고 있을까.”*

* 전시 안내문  <밤의 바라봄에 대해> 박미란 | 큐레이터, 학고재 기획실장



우리에게도 그런 표정이 있겠지. 타인이 들여다보면 영 알 수가 없어 궁금해지는 표정, 무언가를 숨기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는 얼굴. 남몰래 누군가를 바라보거나, 무언가를 기억하고 있을 때, 우리의 표정이 저런 걸까. 엄유정 작가의 그림을 통해 나도 몰랐던 나의 얼굴과 내가 미처 바라보지 못했던 타인의 얼굴을 마주한 것 같다. 그 만남이 이상하게 따스하고 다정하게 느껴지는 건 작가가 품은 질문과 관심이 세상과 타인을 향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밤과 무표정한 얼굴 속에서 그것이 내밀하게 품고 있는 풍경과 기억, 감정과 기분을 헤아려 보려 했던 작가의 시선이 우리에게 동행하라고 말을 건다. 무심했던 시간과 풍경을, 타인의 얼굴을, 한 번 천천히 둘러보면 어떻겠냐고.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나는 즉각 내게 달려와버리는 귀여움에 무장해제되고 싶은 마음 반, 그러면 안 될 것 같다는 마음도 반이라서 도무지 어쩌란 말이냐, 이 마음을, 이런 상태다.

만물을 사랑하고 귀여워할 수 없는 사람은, 만물을 전부 사랑하지 않기로, 귀여워하지 않기로 결정해야 하나.

다른 답이 필요하다.

두 마음 사이에서 조금 더 흔들릴 시간이 필요하다.”

<노래하는 복희> 김복희



답을 알 수 없는 질문을 품고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사이를 헤매고 있지만, 꼭 답을 찾아야 하는 것도, 반드시 하나의 마음으로 안착해야 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아이에게 케이크를 사주고 맞은편에 앉아 책을 읽는 잠깐의 사이, 눈에 쏙 들어온 문장이 내게 그렇게 말을 건넨다. “두 마음 사이에서 조금 더 흔들릴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니 지속하며 오가는 사이 흔들리는 것만으로 충분한지도 모르겠다. 이 문장을 꼭 쥐고 있는 사이 작고 단단한 도토리 하나를 주은 다람쥐 같은 기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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