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성장 중입니다.(이별을 받아들이는 방법)
이전 장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듯, 우리는 누구나 이전의 행복했던 혹은 좋았던 경험들을 본능적 수준에서 되살리며 이전 애인과의 행복한 기억에 잠기기도 합니다. 이러한 기억들은 추억 속에서 좋은 영향을 주기만 한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만, 안타깝게도 종종 불쑥 나타나 현재 맺고 있는 새로운 애인과의 관계에서 좋지 못한 영향을 주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아프지만 이러한 비교로부터 한 번쯤 나아가는 용기를 발휘해야 할 시기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어떻게 이러한 전 애인과의 비교를 극복해 나갈 수 있을까요?
사실 이러한 전 애인과의 비교로 상담실에 찾아오는 내담자 분은 생각보다 많습니다. 즉, 이러한 비교를 한다는 것은 단순히 나만의 고통이 아니며, 내가 이상해서 나오는 행위가 아니라는 것을 먼저 여러분들께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상담사로서 이러한 전 애인과의 비교로 나오는 현재 애인에 대한 죄책감, 그리고 후회 등을 다루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바로 수용과 비교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자리 잡게 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개념을 자리 잡게 하는 것은 사실 올바른 현실적 개념을 머릿속에 심어드리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앞서 언급하였듯, 애인과의 비교는 자기를 평가하는 기회의 장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애인과의 비교를 하는 자신은 자기 패배적이며, 죄책감을 가지는 소위 말하는 '지질하고 나쁜 사람'이라는 인식을 벗어던져야 합니다. 오히려 과거의 관계에서의 실패나, 부족함을 인식하고 이를 향상하기 위한 자기 평가를 하는 자기 성장의 기회를 가지게 된 사람으로 인식에 대한 전환을 시도합니다. 애초에 이러한 비교는 누구나 할 수 있는 당연한 일 이기 때문에 자신이 실제 가져야 하는 죄책감과 자기 패배적 생각에 대한 축소 과정이 필수적으로 필요합니다. 이는 누군가가 보기엔 합리화처럼 보일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러한 비교의 과정 속에서 적절한 자기 수용과 평가가 나타난다면 이는 분명한 자기 성장으로 이어진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또한 이러한 비교의 과정에서 적절한 자기 수용과 평가를 위해 상담 장면 밖에서도 권장하는 일은 사회적 자원(가족, 친구 등)을 이용하기 위한 소통입니다. 방금 저는 이러한 비교는 누구나 할 수 있는 당연한 일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비교에 대한 고통을 적절하게 수용하기 위해선 먼저 수용받는 경험이 필요요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수용은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일이기에 나의 사회적 자원들 즉, 나와 친밀한 사람들에게 이야기해 보며 감정을 표현하고, 그들의 경험을 듣는다면 이는 '보편성'을 경험할 수 있기에 나는 수용받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수용받음을 경험한 사람은 이후에 바로 이어질 자기 수용에 아주 큰 도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자기 수용이란 기본적으로 자신의 감정적 수용부터 시작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자신의 감정을 수용하고 이해해야 합니다. 전 애인과의 비교로 나는 어떠한 심리적 불편감을 경험하고, 그것이 현재 애인과의 관계에서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그것이 악영향이라고 할지라도)를 수용해야 합니다. 이때 명심해야 할 것은 계속 언급하듯 '비교는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감정을 부정하거나 억누르는 대신 허용하고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그 감정을 이해하고 관리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한 감정들은 사실 이미 내가 살아오며 다른 장면에서 경험하고 극복해 온 것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전 애인과의 관계를 다시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그 사람과 만나며 어떠한 점이 인상 깊거나 힘들었는지, 그리고 헤어지게 된 원인이 무엇인지 돌아보며, 나는 당시에 그러한 관계를 어떻게 지속해 나갔는지를 파악하고 문제점을 찾아볼 필요성이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인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전 애인의 모든 모습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나를 집에 바래다주는 행위라고 가정을 해 본다면, 나는 그의 그러한 행위에 중독되거나 나의 의존을 불러일으키진 않았나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애인이 집에 데려다주지 않아 나타나는 서운함이 있다면 나의 내면을 돌아보며 그러한 모습이 사실 내가 의존적으로 변하게 된 모습이 아닌지 혹은, 데려다주는 입장을 고려하지 못한 나의 실수는 아닌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집에 데려다주는 것은 매우 고마운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 것이며, 당신 또한 처음에는 불편해했을 것이라는 사실이 있을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이러한 전 애인과의 기억을 더듬고 관계성을 파헤쳐 가며 거기서 얻은 교훈과 나의 내면에 대한 탐색으로 지금의 관계에 적용하는 것 또한 올바른 자기 수용으로 가는 한 갈래의 길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때 지난 마지막에 말했던 '미련이 남은 경우에 하는 전 애인과의 비교'의 경우에는 추가적인 상실과 애도 작업을 포함해야 합니다. 이러한 상실과 애도 작업은 누군가와 사별했을 때 경험하는 애도의 작업과 그 단계가 무척이나 비슷합니다. 이는 퀴블러 로스(Elisabeth Kübler-Ross) 교수님의 분노의 5단계로 정리하셨신 이론에서 차용하여 사용합니다. 본래 분노의 5단계이지만 우리나라엔 애도의 5단계, 이별의 5단계, 슬픔의 5단계로 알려진 단계들입니다. 이 모든 단계는 사실상 동일한 퀴블러 로스 교수님의 이론을 차용하여 사용하고 있으며 중요한 점은 애도, 이별, 상실, 슬픔 과정에서 동일한 감정적 경험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러한 단계를 이해하고 진행해 나간다면 올바른 이별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첫 번째 단계는 부정의 단계입니다. 이별을 당하였건 선언하였건 아마 우리는 실감이 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 혹은 그녀와 함께 보낸 시간에서 공백을 느낄 때마다 허한 마음이 들고 온갖 감정의 파도가 우리를 괴롭힙니다. 또 내가 다시 한번 잘하면, 혹은 그녀가 다시 연락해 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이별에 대한 현실적 감각이 없습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이별을 부정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단계는 지극히 정상적인 것입니다. 상실한 현실을 못 받아들이는 것은 이별로 몰아치는 어마어마한 감정의 파도로부터 자신을 지키려는 방어적 수단입니다. 이러한 파도는 나의 자존감과 자아에 큰 영향을 줄 수 있기에 이를 보호하려는 우리의 시도입니다. 그래서 사실 아이러니 하게도 이러한 부정의 단계는 오히려 이별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위한 우리의 첫걸음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나 명백한 결국 이별이라는 것은 이미 우리에게 찾아왔다는 가슴 아픈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두 번째 단계는 분노입니다. 첫 번째 단계에서 결국 이별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상대방 그리고 내가 헌신했던 시간과 관계에 대한 적대감과 분노가 표출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이 시기 우리는 화날 대상을 찾고 분노를 표출하려 합니다. 물론 그 화를 내는 대상에는 상대방, 자신, 상황 모두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때로 우리는 술을 마시며 친구들과 자신의 한심함에 대해서 욕을 하기도 하고, 이미 헤어진 상대방을 헐 뜯기도 합니다. 이러한 과정이 바로 분노의 단계입니다. 흔히 이별 초기에 나타나며, 사랑했던 감정만큼 더 큰 분노감이나 적대심으로 표출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흔히 '배신감'을 경험하는 단계 또한 이 단계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러한 배신감, 분노감의 방향이 결국 해소되지 못한 채 자신을 향해 돌아와 내가 무능력하고 잘못하고 한심했기에 결국 이별을 했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때 무기력하고 우울감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때에도 이러한 감정적 경험을 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과정이란 것을 알아야 합니다. 때문에 우리는 대상에 대해 적당한 화를 내거나 욕을 해보기도 하는 등의 활동을 하며 이 과정을 극복해 나가야 합니다. 앞서 언급했던 술을 마시며 욕을 하는 것처럼요.
세 번째 단계는 타협 단계입니다. 이 단계는 이름과 달리 재결합을 위한 노력을 합니다. 그동안의 감정적 고통이 너무 크거나, 혹은 정리가 되지 않은 감정이 파도처럼 몰아쳐 재회를 위한 노력을 하는 단계입니다. 그래서 이 단계에 우리는 로맨틱한 상황이나 좋았던 때의 기억을 말하며 재회를 모색하거나, 술을 마시고 연락을 하거나, 혹은 극단적인 협박을 하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이러한 빈자리를 대신하기 위해 새로운 사람을 빠르게 만나려 노력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앞서 말한 미련에 기반한 비교는 바로 이 단계에서 애도와 상실을 멈춘 상태로 이전 애인과의 결합이 아닌 새로운 관계를 형성했기에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이 단계부터 이후 두 단계를 다시 거친다면 올바른 이별 작업을 할 수 있으며, 새로운 관계에 몰입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네 번째 단계는 우울입니다. 세 번째 타협에서 결국 재회를 하지 못하였다면, 우리는 결국 이 관계의 상실을 완전히 받아들이고 깊은 우울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앞서 부정, 분노등의 파도와 같은 감정들이 이미 휘몰아친 상태에서 우리는 깊은 숲 속 고요하고 무언가 무서운 분위기의 호수와 같은 상태가 됩니다. 사회적 관계로부터 위축되고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는 식욕이 없어지거나, 불면, 흥미와 호기심의 감소 그리고 주변사람들과의 단절과 스스로 고립을 시키는 등의 작업이 일어납니다. 이 시기가 가장 극복하기 어렵기도 하며, 우리는 이 시기에도 마찬가지로 어렵지만 밖으로 손을 내밀어 도움을 요청하는 용기를 낸다면 보다 쉽게 극복할 수 있는 단계이기도 합니다. 왜냐면 지속적으로 강조하지만 이러한 이별 즉, 관계의 상실은 누구나 경험하는 '보편성'을 가진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다섯 번째 단계는 수용입니다. 이 단계가 바로 자기 수용의 일부적 단계입니다. 이 단계에 들어선다고 해도 감정적 고통이 사라지거나 후회가 사라지거나 하진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단계에서는 온전히 이별에 대해 수용하며, 자신의 삶에 몰입하게 됩니다. 이때 상담자로서 추천하고 싶은 활동은 바로 추억의 정리입니다. 앞서 미련에 의한 비교를 말하기 이전에 자기 수용의 단계에서 전 애인과의 관계를 다시 한번 돌아보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 단계를 여기서 마무리한다면 앞으로의 관계에 큰 도움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방법은 좋은 기억, 나쁜 기억을 모두 점검하며 나는 그 관계에서 무엇을 경험했고 앞으로의 새로운 관계에서 어떤 것을 추구할지 정리하는 것입니다. 순서가 보이게 유목화하거나, 그림이나 글로 적어 내려간다면 한층 정리에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실제 상담 장면에서 사용하는 기법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이별의 단계는 모든 사람들에게 같은 순서로 나타나진 않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모든 감정적 경험이 정상적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슬픔과 그리움은 내가 새로운 관계를 올바르게 형성할 때까지 혹은 형성하더라도 앞서 말한 것처럼 1%가 부족할 때 갑자기 나타날 수 있다는 것 또한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애인과의 관계에서 이전 애인과의 비교가 나타날 때 가장 궁극적인 것은 바로 과거를 너머로 현재에 집중하는 마음입니다. 상담심리학에서는 지금-여기를 강조하는 이론이 매우 많습니다. 우리가 현재, 그리고 지금 일어나는 나의 감정, 관계에 몰입할 때 우리는 현재의 관계와 자신의 성장을 경험하며 곧 행복하다는 긍정적 감정의 폭발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애인과의 비교는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자기 성장의 기회일 수 있습니다. 과거의 관계에서 경험한 것들을 돌이켜 보며 나의 부족함, 관계 에서의 부족함을 인식하고, 이를 향상하기 위한 노력을 한다면, 오히려 우리는 현재의 관계에서 무엇을 더 잘할 수 있는지,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고민하며 성장하고 결국 우리는 발전할 수 있습니다. 과거가 아닌 지금-여기에서 당신의 행복을 찾을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