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게 큐슈에서 가장 높은 산 오르기
본 글은 2018년, 글쓴이가 모 포털사이트에 교환학생 생활 중 썼던 포스팅을 가져온 글입니다.
어린 나이에 쓴 글이라 다소 어리숙하고 지금과 다른 가치관과 생각을 가져 지금의 제가 보아도 어색하기 그지없는 글이지만 나누고 싶어 가지고 왔습니다.
2018. 10. 18. 0:41의 글
올해 하반기의 목표는 '건강해지기' 였다.
미관상 나의 모습을 위해서 밥을 굶거나
정신적으로 힘들어서 식욕을 잃고 밥을 거부하거나 하는 일 없이 밥 잘먹고
운동도 꾸준히 하고
어찌됐든 올해 상반기처럼 비실비실하게 살지 않기.
그래서 힘들어 죽겠지만 등산도 조금씩 해오고
웨이트도 조금씩 해왔다.
작년과 올 상반기의 나라면 죽어도 안하려고 했을 것들.
밥도 꽤 신경써서 먹으려고 했고..
그러자 몸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정신이 맑아짐이 느껴졌다.
그러다 올 여름에는 운동이 꽤 즐거웠다.
그렇게 조금은 활동적인 인간이 된 듯 했다.
후쿠오카에 와서도 그랬다.
건강하게 살고 싶었다.
그리고 또 이곳 다자이후는 산으로 둘러쌓여 있는 지형이라 학교에서도 기숙사에도 마트에 가는 길에도 어딜 가도 높은 빌딩보다 산이 더 가까이 보이는 동네이다.
그런 산을 보고 올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어쩌면 당연했다.
그래서 사감선생님께 '가볍게' 등산할 수 있는 산을 추천해 달라고 했고
선생님께서는 자주 가신다는 '보만산(寶滿山)'을 추천해 주셨다.
태풍이 연속으로 주말에 연달아 오고 평일에는 시간이 없어서 어물쩡 어물쩡 못가다가
드디어 5명이 모여 등산을 가기로 했다.
기숙사에서 산 입구까지 가는데만 30여분이 걸렸고 등산 자체는 느린 페이스로 올랐기 때문에 약 3시간 정도 걸렸다.
사실, 보만산을 추천해주신 사감 선생님은 60대 후반 정도로 보이신다.
그래서 그 산을 사감 선생님도 가시는 걸 뭐 하는 가벼운 기분으로 정말로 가까운 뒷산가듯이 올랐다.
하지만 난 그곳에서 한계를 맛보았다.
날씨는 다행히도 최고였다.
적당히 선선했고, 햇빛도 쩅쨍한게 그야말로 등산을 위한 날씨였다
역시나 산 입구에는 신사가 있었다.
그리고 사슴도 한마리 있었는데
설마 이 좁은 우리에 이 아이를 하루종일 가둬 놓는 건 아니겠지 싶었다.
조금 더 들어가면 본격적으로 큰 신사가 자리잡고 있다.
등산객들은 이곳에서 자신들의 안전한 산행길을 기도했다.
여기 까지는 치마를 입거나 구두를 신거나 등산객의 모습이 아닌 관광객들이 조금은 보인다.
일본 신사는 어딜 가든 엄청나게 큰 나무들이 있다.
여기부터 본격적인 등산의 시작.
이 산은 듣기로는 수행승들의 길로써 대부분의 길이 계단으로 이뤄져 있는 곳이라고 했다.
사감 선생님께서 계단이 엄청나게 많은 곳이라고 미리 일러두셨기도 하고.
하지만 보통 계단이라고 하면 누구나 생각하는 절 올라가는 길에 있는 잘 닦인 계단을 상상하겠지만 그냥 바위로 투박하게 쌓아 올린 계단이었다.
올라가면서 계속 이거 계단이라고 불러도 되는거 맞아?? 했다.
그 때문에 계단 보다는 암벽 등반을 하는 기분이었고 다리가 짧은 나는 꽤나 고생을 했다.
산행길은 처음부터 끝까지 바위 계단으로 시작해 바위 계단으로 끝나는 형태였다.
도중엔 이거 길인가 싶은 길도 있다.
나 같은 경우엔 엄청 말랑한 러닝화를 신고 올랐는데,
발목이 몇 번 휘청휘청해서 다음에는 제대로된 신발을 구비해서 가야겠다 싶었다.
바위로 길이 꽤 험난하고 내려오는 길은 특히 더 많은 주의가 필요했다.
아무래도 가벼운 기분으로 와서 산책하듯이 등산하려 했기 때문에
스틱이나 엄청 거대한 등산가방을 가져온 등산객들을 보면서
일본 사람들은 이런 작은 일에도 만반의 준비를 하는 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우리는 로손에서 산 작은 삼각김밥과 기숙사에서 가져온 작은 페트병에 담긴 물 한병으로 올랐는데
바위 길이 험한 곳이 많아서 스틱은 있으면 매우 좋은 도구이고,
물은 1L짜리 페트병에 담아온 사람이 있었는데 그정도는 가져와야 겠다 싶었고
중간 중간에 당분 보충을 위해 곤약 젤리나 초콜릿을 가져오는 건 최고이다.
도대체 언제 도착하냐 하고 짜증낼 힘도 없어질 때면
멀리 후쿠오카 바다가 보이기 시작한다.
어쩌면 날씨가 아주 맑은 날엔 한국이 보이지도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방향은 모름
이런 길은 좀 양호한 편.
등산 하는 내내 정말 공포스러웠던 것은
산에 삼나무가 굉장히 많다는 것인데 ...
삼나무 꽃가루가 날리기 전에 빨리 귀국해야 겠다 싶었다.
드디어 만난 평지에 조금 숨을 고르고,
그제서야 보이기 시작한 들꽃에 예쁘다 라는 한 마디를 뱉을 여유가 생긴다.
그리고 한참을 더 올라 도착한 정상.
정말 너무 힘들어서 지나가는 사람들 붙잡고 도대체 얼마나 더 가야하냐라고 물으니
"あと20秒!!頑張って。(여기서 부터 20초. 힘내라!)"
라는 대답이 들려 거기서 부터 친구랑 미친듯이 달렸다.
이런 장난 아닌 경사를 오르면
자연스레 큰 숨을 쉬게 된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아- 드디어 라는 말을 뱉는다.
언제 정상에 닿나 싶다가도 계속 가다보면 어찌됐든 닿는구나 싶었다.
아직 어디쯤 왔는지 가늠이 안될 때는 고개를 치켜들어
나무 사이로 하늘이 언뜻언뜻 보이는지 아닌지 보면 된다.
그리고 중간에 홀로 산행 중인 어느 아저씨를 만났는데
함께 오르면서 이것저것 대화를 나누다가
이런 말을 들었다.
"너희들 이 산 오르면 규슈에 있는 산 대부분은 문제 없다!"
순간 사감선생님의 얼굴이 얼핏 떠올랐다.
정상에도 역시나 언제부터 있었을지 모르는 큰 바위들이 있다.
그리고 그 사이로 서로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았던 산들의 모습이 보인다.
정상에 있는 신사.
사람들은 신사를 중심으로 각자의 자리에 앉아서
도시락을 먹거나 커피를 마셨다.
정상에서 따뜻한 커피는 필수다.
나의 구원자 로손 삼각김밥.
태어나서 먹은 참치마요 김밥 중에 제일 맛있었다.
다음에는 따뜻한 커피와 제대로된 당 보충용 디저트와
도시락을 챙겨오리라.
사람들은 주변 산 중에서 가장 높은 산에 올랐지만
그 중에서도 더 높은 곳을 찾아 오른다.
하늘과 가까운 곳을 찾아 오르는 것은 과연 인간의 본능인 걸까.
사실 출발은 5명에서 했는데 나와 미호가 속도가 조금 빨라 나머지 세명과 떨어지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세명은 지쳐 돌아갔다.
결국 정상을 찍은건 나와 미호 둘 뿐.
둘이서 한국어 대만어 일본어 써대면서 힘들다 엉덩이 아프다
언제 도착하냐 이거 또 올 수 있는거 맞냐며 툴툴대다 보니
어쩌다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은 조금 추웠지만 도착하자 마자 느끼기엔 굉장히 상쾌하고 시원한 곳이었다.
실컷 흘린 땀이 금방 말랐고, 또 금방 추위를 느낄 정도 였다.
나랑 미호는 사진에서 보이는 바위에서 각자 쉬었다.
나는 햇빛이 따뜻해 누워서 잠들었고 미호는 그런 나를 찍어줬다.
일본에서의 등산은 처음이라 굉장히 설렘반 긴장반으로 올랐는데
한국이나 일본이나 풀냄새는 같고
지나가는 등산객들끼리 반갑게 인사를 주고 받는 것도 같다.
정상에 올라 느끼는 감상은 각자 다르지만,
모두 산을 오르고자 하는 마음 만은 같다.
그리고 그런 그들과의 인사는 등산 내내 큰 힘이 되었다.
난 외국에서 온 이방인이지만 산에서는 그저 같은 길을 가는 동행자일 뿐이니까,
처음으로 난 그곳에서 이방인이 아닐 수 있었다.
이제라도 산을 알게 되어서 다행이다 싶다.
아빠가 왜 그렇게 주말마다 산에 가는지 알 것 만 같다.
PS.. 11월달에는 다른 친구들도 함께 가기로 벌써 예약을 잡아놨다.
아마 그때는 단풍도 볼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