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시작되면 이 나라에는 이상한 병이 돈다. 화병이라고 부르는데, 정확한 병명은 아무도 모른다.
의료진들도 고개를 젓고, 정부는 그저 외출을 자제하라는 권고만 되풀이할 뿐이다.
그날도 빗소리가 창문을 두드렸다. 처음엔 작은 방울들이 유리면을 스치듯 지나갔지만, 시간이 갈수록 소리는 거세졌다. 사무실 형광등 아래에서 나는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동료들은 이미 오래전에 자리를 비웠다. 4시 정각에 일어나 우산을 챙기며 서둘러 나간 그들의 뒷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구조조정의 그림자가 사무실을 떠돌고 있었다. 어제까지 옆자리에 앉아있던 김대리의 컴퓨터는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모니터도, 키보드도, 심지어 책상 위의 가족사진까지도. 마치 처음부터 그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성과를 내야 했다. 살아남아야 했다.
시곗바늘은 일곱 시를 가리켰다. 밖을 내다보니 빗줄기가 수직으로 땅을 찌르고 있었다. 우산을 안 가져온 것이 후회됐지만 이미 늦었다. 사무실을 둘러봤지만 누군가 놓고 간 우산 하나 없었다.
복도를 지나 엘리베이터를 탔다. 1층에 내려서니 로비 너머로 폭우가 보였다. 회전문을 밀고 나가는 순간 빗방울이 얼굴을 때렸다.
그때 한 남자가 다가왔다. 나이는 쉰 정도로 보였는데, 눈동자가 이상했다. 너무 또렷했다. 마치 무언가를 꿰뚫어 보는 듯한.
"우산 사세요."
검은 우산 몇 개가 그의 팔에 걸려있었다. 평범한 우산들이었다.
"얼마예요?"
"만 원."
편의점에서 삼천 원이면 살 수 있는 우산이었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 우산은 특별해요."
남자가 우산을 펼쳤다 접었다 하며 말했다.
"비만 막아주는 게 아니라, 다른 것들도 막아줍니다."
"다른 것들이요?"
"이 계절에 떠도는 것들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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