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만 했어도

by 컨트리쇼퍼


사과만 했어도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온 것일까.

아스팔트가 녹아내릴 것만 같은 한여름, 사람들이 뱀처럼 긴 줄을 이루고 있었다. 모두 한 곳을 향해 있었다. '사과 전문 흥신소'라는 간판이 걸린 건물 앞에서였다.

건물 외벽엔 오래전 누군가 붙인 듯한 슬로건이 퇴색되어 있었다.


[사과는, 타이밍입니다]


그 말이 얼마나 잔인한 말인지 나는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줄을 섰다. 진심이 아니어도 상관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날도 줄은 길었다. 등줄기에 땀이 줄줄 흐를 만큼 더운 여름날이었다.

차들이 지나가며 매연을 뿜었다. 휴대용 선풍기를 얼굴에 갖다 대어도 소용없었다. 열기는 아스팔트 위로 아지랑이를 만들어내며 올라왔고, 그 열기는 빌딩 사이에 갇혀 빠져나가지 못했다. 습기와 배기가스가 뒤섞인 공기는 마치 독가스처럼 목을 조여왔다.

하지만 다들 참았다.

누구도,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은 누군가에게 직접 '미안하다' 말하고 싶진 않았을 테니까.

앞줄에서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이거 너무 비싸잖아? 분명 저번 주까지만 해도 십오만 원이었는데, 일주일 만에 두 배로 올리는 게 어딨어?"

"그러시면 다른 흥신소 찾아가세요. 저희도 사과를 대신해 드리는 데 따른 안전비용을 고려했을 때 충분히 합리적인 가격입니다."


안전비용. 그 단어가 내 귀에 걸렸다. 사과에 안전비용이라니.


"뭐가 충분해? 우리 같은 소시민한테 이 돈이 얼마나 큰돈인지 알아?"


직원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어차피 이 손님 말고도 기다리는 사람들이 차고 넘쳤으니까.


"그럼 직접 사과하러 가세요."

"내가 그걸 못하니까 여기 온 거 아냐..."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체념이 스며들고 있었다.


"그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결국 승부는 정해져 있었다.

약 한 시간 후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직원이 내 신분증을 확인하고 안으로 들여보내주었다.


건물 안에는 여러 부서가 있었다.

채무, 사소한 다툼, 가족 갈등, 연인 갈등, 직장 내 갈등... 세상의 모든 미안함이 분류되어 있었다.

한동안 어느 부서로 가야 할지 망설였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딱히 해당하는 곳이 없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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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곳에 나를 가두고 싶지 않습니다. 세계 곳곳을 거닐며, 나에게 가장 잘 맞는 땅을 찾고, 그곳에서 글을 쓰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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