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삶에 호러 한 스푼

by 컨트리쇼퍼


삶의 무게가 갑자기 내려앉은 것은 2월의 어느 회색빛 오후였다. 졸업식장은 텅 비어있었고, 나는 홀로 그 공허함을 견디고 있었다. 친구들은 이미 저마다의 궤도에 안착했고, 나만이 여전히 중력을 잃은 채 우주를 떠돌고 있었다.

영문학과 출신의 글쓰기 능력자. 그것이 내가 가진 유일한 무기였지만, 세상은 그런 무기를 쓸모없다고 여겼다. 영어영문학과라는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 선택이 가져온 현실의 무게가 예상보다 훨씬 무거웠을 뿐이다. 위대한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은 여전히 가슴 깊은 곳에서 맥박 쳤지만, 당장의 생존이 그 꿈을 조금씩 잠식해가고 있었다.


부모님의 마지막 통보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졸업과 동시에 모든 지원 중단. 그들의 목소리에서 느껴진 것은 실망이 아니라 체념이었다.


"취직했니?"

"아니오."

"그럼 연락하지 말거라."


전화기 너머의 그 말들은 내 존재 자체를 지우려는 지우개 같았다.

통장 잔고는 수분을 잃은 식물처럼 점점 말라가고 있었다.

한 번은 '그래도 뭐든 해봐야지' 하는 절망적인 희망으로 조그만 '가족 기업'에 발을 들여놓았다.

남편이 대표, 아내가 실장, 나머지는 혈연으로 단단히 얽힌 사람들.

내가 처음 만난 '진짜 회사'는 생선가게보다 비린내 나는 회의실과, 야근 수당은 없는 대신 가족애는 넘치는 사무실이 전부였다.

그 철옹성 같은 유대 속에서 나는 영원한 이방인이었고, 모든 실수는 내 무능함의 증거가 되었다.


여섯 달이 지날 무렵, 내 몸이 백기를 들기 시작했다. 어느 날 거울을 보니 얼굴에 두드러기가 만개해 있었고, 눈은 반쯤 감겨 있었다. 그건 몸이 아니라 영혼이 앓고 있다는 신호였다. 피부는 마치 내 내면의 고통을 바깥세상에 번역해 주는 통역사 같았다.

하지만 병원 기록 없는 결근은 용납되지 않았다. 가족 같은 회사라면서도 가족에게조차 보이지 않을 냉혹함이었다.


주말, 모든 병원이 철문을 내린 시간에 나는 거리를 망령처럼 헤맸다.

그때 눈에 띈 간판: 호러병원.

병원과 호러. 이 기묘한 조합에서 나는 묘한 기대감을 느꼈다.

단조로운 일상에 지친 나에게는 어떤 변화라도—설령 그것이 공포라 할지라도—달콤한 유혹이었다.

건물은 시간이 정지된 박물관 같았다. 50년 전의 물건들이 마치 화석화된 추억처럼 자리하고 있었고, 지하로 내려갈수록 짙어지는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오히려 현실에서 벗어난 듯한 안도감을 주었다. 간호사는 예상과 달리 햇살처럼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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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곳에 나를 가두고 싶지 않습니다. 세계 곳곳을 거닐며, 나에게 가장 잘 맞는 땅을 찾고, 그곳에서 글을 쓰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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