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낱말이 사라진 날, 나는 그것이 시작이라는 걸 몰랐다.
'사과'였던가, '의자'였던가. 평범한 명사 하나가 혀끝에서 증발했다.
입술은 그 형태를 기억했고, 폐는 그 무게를 알았지만, 목구멍 어딘가에서 소리는 안개처럼 흩어졌다.
괜찮아. 사람이 그럴 수도 있지.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설득했다.
마치 머릿속 도서관에서 책 한 권쯤 잃어버린 것처럼, 대수롭지 않게.
그러나 언어는 조용히 무너지는 법이다.
한 달쯤 지났을까. 카페에서 친구를 만났을 때였다.
"어제 그... 그게... 뭐였더라..."
내 입에서 튀어나온 건 문장이 아니라 파편이었다.
친구는 웃으며 기다려주었지만, 그 웃음 뒤에서 나는 다른 것을 보았다.
의아함. 불편함. 그리고 아주 작은 공포.
문장 하나를 완성하지 못하는 사람 앞에서 느끼는, 이름 붙일 수 없는 두려움.
한국에서 태어나 평생 한국어로 생각하고 꿈꾸던 내가, 문득 모국어가 낯설어지고 있었다.
단어들은 밤마다 몰래 빠져나가는 듯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어제보다 조금 더 텅 빈 입 안을 확인했다.
요즘 스트레스가 심해서 그런가 보다. 나는 덤덤하게, 혹은 덤덤한 척 생각했다.
어느 날부터 사람들을 만나는 게 두려워졌다.
회의실에 들어서면 모든 시선이 나를 향했다.
숨 쉬는 것만으로도 소음이 되는 고요 속에서, 나는 첫마디를 고르느라 온몸이 얼어붙었다.
"그... 저기... 역시..."
입 밖으로 나오는 건 언제나 이 낱말들뿐이었다. 문장은 태어나기도 전에 분해되었다.
주어와 술어가 제각기 방향을 잃고 흩어지는 느낌. 나는 더 이상 한국 사람이 아니게 되어가고 있었다.
그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서, 나는 스피치 학원 문을 두드렸다.
"죄송하지만, 저희는 국어를 가르치는 곳이 아닙니다."
상담사는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스피치 학원은 말하는 기술을 다루는 곳이에요. 발표 불안, 목소리 떨림, 그런 것들이요. 단어를 모르시는 분은..."
그녀는 말끝을 흐렸다. 자격이 없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한 채.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는데요."
내가 말했다. 내 목소리는 낯설게 들렸다.
"초중고를 전부 한국에서 다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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