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고

by 컨트리쇼퍼


오 평짜리 원룸의 벽지는 습기로 부풀어 있었다.

그 안에 사는 남자는 벽지 뒤에 무엇이 자라고 있는지 알았다.

돈이었다. 곰팡이처럼 번식하고, 이끼처럼 벽을 타고 오르는 지폐들.

그는 매일 밤 그 소리를 들었다. 돈이 숨 쉬는 소리를.

띠링-


월급날은 언제나 5일이었다. 사장은 봉투를 건네며 한숨을 쉬었다.


"계좌이체 하면 서로가 편할 텐데."

"싫습니다."

"왜? 대체 왜? 말 좀 해봐!"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사장이 그의 손을 붙잡고 은행까지 끌고갔다.


"내 소원이야. 제발 체크카드만 만들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은행 창구에 앉았을 때 느꼈던 그 공포를.

번호표를 뽑고, 차례를 기다리고, 창구 직원의 손가락이 키보드를 두드릴 때마다 자신의 존재가 조금씩 디지털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계좌번호로 환원되는 자기 자신을. 0과 1 사이 어딘가로 증발해버릴 것 같은 불안을.


"김상구님. 체크카드 발급되었습니다."

"필요 없습니다."


사장은 그의 가방에 체크카드를 욱여넣었다.


"갖고만 있어. 요즘 세상이 얼마나 흉흉한데. 그러다 집에 도둑이라도 맞으면 어떡하려고."


남자는 웃었다. 서른 해를 이렇게 살았다. 한 번도 잃어본 적 없었다.


"집까지 너무 위험하지 않나? 그 많은 돈을? 은행 온 김에 넣어두고 가."

"싫습니다."


그날 버스는 유난히 붐볐다. 연말이라 그런가.

사람들은 서로의 체온을 나누며 밀착되어 있었다.

뒤에서 껌을 씹는 소리가 들렸다. 찍찍, 질겅질겅. 누군가 큰 소리로 전화를 했다.


"아, 카드요? 네, 잃어버렸어요. 어디 사냐고요? 오 평짜리 원룸이요. 네, 오 평. 맞아요. 거기 곰팡이 핀 거. 네네."


남자는 고개를 휙 돌렸다. 통화하는 사람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월급날만 되면, 유독 모든 감각이 예민해졌다.

사람들 너머로 희미한 윤곽만 보였다.

도로는 공사 중이었다. 버스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연말이면 늘 이렇다.

멀쩡한 아스팔트를 뜯어내고, 새로 깔고, 다시 뜯어낸다.

예산을 소진하기 위해.

남자는 생각했다. 저 세금으로 진짜 가난한 사람을 도우면 얼마나 좋을까.


숨이 막혔다. 내렸다.

손이 가벼웠다.

가방이 없었다.

월급이 든 가방이.


차고지까지 뛰어갔다. 헛수고였다. 경찰서에 신고했다. CCTV를 확인했다.

그가 내리던 순간, 정확히 그 순간, 카메라에 사람들이 몰려들어 화면을 가렸다.

마치 누군가 의도한 것처럼.


"현금이면 찾기 힘듭니다."


경찰의 말이 메아리쳤다.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문을 열자 냄새가 났다.

돈 냄새. 젖은 지폐가 발효되는 냄새. 비가 온다는 신호였다.

그는 서둘러 공기청정기를 켰다. 에어컨을 가동했다. 제습기를 돌렸다.

돈을 지키기 위해서는 매일 이런 의식이 필요했다.

금고 앞에 서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금고 위에는 사진이 붙어있었다.

‘유토니아’ 그가 꿈꾸는 곳. 3억만 모으면 갈 수 있는 곳.

죽을 때까지 아무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곳.

지금 2억 7천이었다. 아니, 이제는 2억 4천이었다.


핸드폰이 울렸다.

문자였다.


[Web 발신]

[신종체크전액신용승인] 김*구(4147)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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