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라는 단어는 때로 거짓말이다. 특히 그것이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세워졌을 때는.
한국전쟁이 끝난 지 75년. 하지만 우리 집은 여전히 전쟁 한복판에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단지 형태가 바뀌었을 뿐이다.
우리 집 뒤뜰에는 미군 공군기지가 있다.
담장 너머로는 활주로가, 격납고가, 그리고 끝없이 뜨고 내리는 철의 새들이 있다.
할머니가 들려준 이야기가 있다. 이 땅은 원래 우리 조상들의 것이었다고. 대대로 농사를 짓던 땅이었다고.
그런데 어느 날 사람들이 와서 오백 원을 던져주고는 땅을 가져갔다. 항의할 틈도 없었다.
총을 든 사람들 앞에서 조상들은 그저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담장이 올라갔다.
어릴 적 기억이 난다. 밭 뒤편에는 송송 뚫린 철장이 있었다. 그 구멍 사이로 활주로가 보였다.
마음만 먹으면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철장 앞에는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무단침입 시 미국법에 따라 처벌됨※
한국 땅인데 미국 법이라니. 그때는 그 모순이 이상하다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십여 년이 흘렀다. 철장은 이제 높은 콘크리트 담으로 바뀌었다. 더 이상 안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소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심해졌다.
하루에도 몇 번씩 전투기가, 수송기가, 헬리콥터가 내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간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큰 소리로 말한다. 귀가 멀어서가 아니다.
소음에 익숙해져서 자신의 목소리조차 제대로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 보는 사람은 우리가 화가 난 줄 안다. 사실 화가 난 게 맞는지도 모른다.
다만 누구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을 뿐.
밤낮이 없다. 새벽 세 시에도 전투기는 뜬다. 천둥 같은 굉음이 어둠을 찢는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뛴다.
잠에서 깨면 가슴이 터질 것처럼 요동친다. 나는 여전히 적응이 안 되는데, 가족들은 괜찮다고 한다.
"엄마, 이러다 집 무너지는 거 아니야?"
헬리콥터 한 대가 지붕을 스치듯 지나갔다. 기왓장이 덜컹거린다.
"안 무너져. 여기서 산 지가 몇십 년인데. 네 할머니도, 증조할머니도 다 여기서 사셨어."
하지만 증조할머니 때는 이렇게 머리 위로 철의 괴물들이 날아다니지 않았다.
왜 아무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걸까? 어쩌면 이것이 가장 무서운 일인지도 모른다.
사람은 무엇이든 익숙해진다. 심지어 공포에도.
국가는 보상하지 않는다.
내가 몇 번이나 민원을 넣어서 겨우 얻어낸 게 일 년에 한 번 벽지를 바꿔주는 것뿐이었다.
벽지를 바꿔준다고 소음이 사라지는가? 방음창이나 방화벽을 설치해 주는 게 맞지 않나?
하지만 아무도 내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같은 말을 입에 달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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