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준비

by 컨트리쇼퍼


서른이 된 후 나는 무게를 재는 일에 익숙해졌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어깨의 무게가 무거워졌다.

언젠가 내가 그 무게에 깔려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상상이지만, 몇 가지는 진짜였다.

이를테면, 취업 포털 사이트에 등록된 공고의 수, 같은 해에 졸업한 동기들의 링크드인 업데이트 빈도, 자격증 다섯 개가 환산되는 시장가치의 추정치. 모든 것을 숫자로 환원했다. 더 정확한 계산을 위해 확률까지 따졌다. 사소한 것까지 확인해야 했다. 우리는 흔히 큰 차이로 선택이 갈린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오산이다.

모든 차이는 아주 사소한 곳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매번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아직 아니다. 준비가 안 됐다. 나에게는 그 사소한 차이가 채워지지 않았다. 그것이 채워지지 않으면, 무엇을 해도 안 될 것이었다.


부모님은 "제발"이라는 말을 자주 쓰기 시작했다.

제발 뭐라도 해봐라. 하지만 그 "뭐라도"가 얼마나 무책임한 제안인지 그들은 몰랐다.

준비 없이 던져진 세계에서 산산조각 나는 것과, 완벽하게 준비된 상태로 진입하는 것 사이에는 우주만큼의 거리가 있었다. 나는 후자를 선택했을 뿐이다.

이력서를 넣었던 그해를 나는 '참혹한 해'라고 부른다. 탈락 메일을 받은 후 일 년 동안 나는 식음을 전폐했다. 정확히 말하면 식음을 전폐한 게 아니라, 먹고 마시는 행위가 불필요해진 것처럼 느껴졌다. 몸은 계속 움직였지만 그것이 내 몸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동기부여 영상은 매일 아침 나를 깨웠다. "당신은 할 수 있습니다." 화면 속 사람들은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준비하면.

사람들이 나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었다.


"넌 캥거루족이야."


이제는 텔레비전에서도 그 말이 반복되었다. 마치 나를 어떻게든 까내리려고 하는 것 같았다.

내가 망가지는 것을 보고 싶은 걸까? 하지만 아직 난 망가질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아직은 준비 단계이기 때문이다. 뭘 하지도 않았는데.

하지만 그 말이 계속 걸리적거렸다.

캥거루족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웃었다. 캥거루는 제 새끼를 주머니에 품고 다닌다.

그 새끼가 클 때까지 아낌없이 보호한다. 그게 뭐가 잘못됐는가.

유리 멘털이라는 자기 진단도 정확했다. 한 번 깨지면 다시 붙일 수 없다. 결국, 제대로 된 준비를 위해 나는 마음을 먹었다. 깨지지 않도록 아예 세상에 내놓지 않는 게 합리적이었다.

그해 겨울, 나는 지리산에 가기로 결심했다.




"몸까지 단련하면 완성이에요. 신체가 건강해야, 마음도 건강해진다잖아요?"


부모님 앞에서 나는 처음으로 호언장담했다. 내년엔 꼭. 꼭 취업하겠다고.

두 분의 얼굴에 주름 사이로 미소가 스며들었다. 오랜만에 보는 표정이었다.

나는 효도했다는 기쁨을 느꼈고, 동시에 지리산 등반 장비를 요구했다.

그것도 풀세팅으로. 가장 비싼 브랜드로. 실패하면 안 되니까.

실패의 기억이 각인되면 내년의 취업도 물 건너가니까.

그들은 흔쾌히 사주었다.

작별인사를 할 때 아버지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조심해서 다녀와."


어머니는 배낭 지퍼를 한 번 더 확인했다.


"연락 자주 하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으로 무언가를 해내는 사람처럼.

지리산은 생각보다 험준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나는 그 당연함을 몰랐다. 평소에 운동을 하지 않았다.

산을 타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그들은 내가 준비했을 거라고, 계획이 있을 거라고 믿었다.

첫날 나는 세 번 넘어졌다. 무릎이 쓸렸고 손바닥에서 피가 났다. 눈물이 났다. 하지만 포기하면 안 됐다. 포기하면 내년의 취업도 없다. 나는 3일 동안 기어올랐다.

정상에 도착했을 때 나는 기뻐하지 않았다.


'어떻게 내려가지?'


그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일주일 치 식량을 챙겨 온 게 다행이었다. 기다려보기로 했다. 마음이 준비되면 그때 내려가면 된다.




오일째 되던 날 핸드폰이 꺼졌다.

배터리가 바닥났다. 부모님과 연락할 방법이 사라졌다. 가끔 지나가는 등산객들에게 핸드폰을 빌릴까 생각했지만, 그들의 눈빛이 두려웠다. '이상한 사람'으로 찍힐까 봐. 나는 입을 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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