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착하지 못해서 미안해

by 컨트리쇼퍼


살면서 나는 항상 정착하지 못해서 죄책감을 가지면서 살았다.

참 이상한 일 아닌가? 정착하지 못해서 미안한 감정을 갖고 살고 있다니 말이다.

한국에서 사는 게 나와는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을 한 건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엄마한테 다짜고짜 외국으로 유학을 보내달라고 했다.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란 내가, 미국으로 유학을 보내달라고 하니 부탁을 들어주는 게 만무했다.

그렇게 오래도록 항상 한국을 떠날 기회만을 엿봤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저 한국이라는 나라가 나랑은 안 맞는다고 생각했다.

학교 선생님들도 '너는 외국에 나가서 살면 잘 될 것 같은데...'

그 말을 자주 종종 하셨다.

일종의 희망고문이었던 것이다.

차라리 '왜요?'라고 물어볼 걸 그랬다.

오랫동안 그 희망고문 속에서 나는 외국에 나가면 잘 될 거야 라는 마음을 안고 살았으니까.


그 시절, 내가 푹 빠져있었던 책들이 있었다.

자서전이었다.

책도 편식하지 말라고 했었는데, 오직 자서전만 팠었다.

지금 와서야 다양한 종류의 책들을 읽을 걸 후회가 되지만...

아무튼, 도서관에 있는 자서전은 다 읽었던 것 같다.

거의 대부분 공부로 성공해서 해외에 나간 사람들의 이야기에 푹 빠졌다.

그 책을 읽으면서, 마치 내가 그 책의 저자가 되어, 한국을 떠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자서전에서 얻은 교훈은 단 하나였다.

공부를 잘하는 것.

하지만, 공부를 열정적으로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예체능으로 빠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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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도 한국을 떠나고자 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고백도 못해고, 짝사랑만 하는 열병... 뭐 그런 비슷한 거였다.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던 나는, 스무 살에 또 한 번 이 나라를 뜰 기회를 찾는다.

재수를 했던 나에게, 엄마가 싱가포르에서 대학 진학을 권유했다.

하지만 아빠가 반대했고,

싱가포르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결국, 한국에서 대학을 진학하는 것을 택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서 대학을 휴학하고 유럽여행을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했다.

30일 동안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이렇게 세 나라를 여행했다.

정확히 10일씩 공평하게 다녀왔다. 그때도 나에게 맞는 나라가 이 세나라 중엔 있겠지,

뭐 이런 생각으로 떠났던 것 같다.

겁도 없이 어떻게 혼자서 해외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참 신기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젠 혼자서 여행을 못할 정도로 겁이 많아졌다.


경험이 너무 많아서 오는 부작용이다.

정보량이 너무 많으면, 무언가를 쉽게 도전하지 못한다.


어쨌든,
거기서 나는 꼭 해외에서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행이라서 좋은 것도 모르고.

해외살이가 나와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불어와 영어를 공부했다. 두 나라가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결국에는 내가 선택한 나라는 영국이었다.

불어가 너무 어려웠다. 그래서 빠른 포기, 빠른 결정을 했다.


스물네 살이 되던 해, 나는 또다시 학교를 휴학하고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처음 포부는 어학연수를 하고, 대학을 다시 진학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내가 살고 싶은 나라에서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다.

하지만, 정작 그곳에서 1년밖에 살지 못했다.

한국을 그렇게 떠나고 싶었던 소녀는 한국이 그리워 미칠 것 같아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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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또다시 흐르고,

한국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삶을 살면서 영국에서 힘들었던 기억이 점차 미화되기 시작했다.

또다시 한국을 떠나야겠다는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왜 그렇게 한국을 떠나고 싶은 걸까? 나를 자책하기도 했다.

그래서 어떻게든 정착하기 위해, 내가 태어난 나라에서 살기 위해 꾸역꾸역 살아갔다.

그것 말고는 할 수 없었다.


내가 그토록 원하는 일이 되었는데도, 또다시 떠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왜 이런 걸까?

정착하지 못해서 나에게도 미안하고, 부모님에게도 미안했다.

항상 부채감 가득한 마음뿐이었다.

이제 그 부채감에서 조금 벗어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냥 나를 인정하기로. 나는 이런 사람인 것을.

너무 탓하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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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르면서,

나도 점점 나이가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옛날에는'이라는 말을 잘 안 했는데,

요즘에는 왜 그렇게 '옛날에는 나는 안 그랬는데... '

'옛날에는 이렇게 몸을 사리지 않았는데, 이제는 왜 그렇게 되어버린 걸까?'

이런 말을 달고 산다.


무언가를 하는 데 있어서, 계속 겁이 나고 두려움이 자라나서, 유연한 사고를 하지 못하게 되었다.

건강한 사고를 갖고 '일단은 해보자' 하는데, 멈칫한다.

왜 그럴까 생각해 봤는데,

부채감이 다 사라진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아직도 부채감이 내 안에서 쌓이고 있나 보다.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그토록 자부하던 경험의 축적이 나를 가로막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나에게 맞는 땅을 찾기 위해 지금도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다.

내가 이렇게 태어난 걸 어떡하나.

너무 많이 나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살지 말아야지.


나를 달래고 어르고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분명, 또 똑같은 생각이 들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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