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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컨트리 쇼퍼 Jun 26. 2023

옛날 옛적 24시간 동네

<여섯 번째 리스트: 서울 중구 신당동> 


코로나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시절,  

밑도 끝도 없이 우리는 같이 살 집을 구하자는 계획을 세웠다. 

부모님께 알리지도 않고 우리끼리 결정한 일이었다. 

"우리도 이제 어엿한 어른이라고!"  

최대한 서로 대출을 받을 수 있는 한도를 찾아보았다. 

나는 최대 1억 원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당시, 남자친구는 취준생이어서 대출은 불가능했다. 

그래도 나름 우리는 수중에 돈은 없지만, 대출이 된다는 가정하에 이것을 예산이라고 부르며, 

1억 원의 예산으로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약수동은 어때?"

그 당시에도 서울 금호동 주변으로 가고 싶었지만 그쪽은 매물이 없어,

바로 그 옆이었던 약수동으로 먼저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언제나 그때 하지 못하면 시간이 지나서라도 어떻게든 하는 성격이었던 것이다. 



약수동에 꽤 괜찮은 집이 나왔다. 

부동산에 연락을 해보았다. 그렇게 실제 집을 보러 갔었다. 

신혼부부가 살고 있는 집이었다. 

집주인이 직접 건축을 해서, 건물 자체가 다른 집들과는 달리 특색이 있었다. 

요즘 유행하는 인터스트리얼 한 느낌이 있어 차가운 느낌과 고요한 느낌이 동시에 존재했다. 그리고 동네 자체가 조용하기도 했어서 쏙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건물 내부로 들어가 보니, 특색이 있는 만큼, 구조가 꽤나 비좁았고, 엘리베이터가 없어 불편했다.  

방평수는 12평 정도였지만, 구조 문제 때문인지 집이 더 좁아 보였다. 

그래도 건축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집이라서 깔끔해 보였다.  


하지만 부동산에서 이 집은 관리비가 30만 원 가까이한다고 하였다. 

대출 이자까지 포함하면 한 달에 내야 할 돈이 생각보다 많았다. 

그렇게 우리는 약수동에서 살 꿈을 버렸다. 



그 꿈을 버리지 못하고, 나는 또 1년이 지나서 또 돌아왔다. 

그만큼 나는 이 동네가 좋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단기방이 있는지 알아보았다. 

역시나 인터넷으로 올라온 매물은 없었고, 그때처럼 부동산을 직접 찾아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나 매물은 없었다. 




금호터널을 멍하니 보았다. 이십 대의 내가 터널 반대편의 금호동에서 약수동으로 걸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금호터널만 건너면 바로 약수동이었다.

코로나 전까지만 해도 24시간 카페가 많아 틈만 나면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24시간 카페를 찾았다.

그때는 당연히 성공한 영화감독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꿈과 희망으로 부풀어 오르는 내가 있었다.  

졸린지도 모르고 글을 썼다. 쓰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무언가 되지 못하면 불안하고 불행한 내가 서있다. 

이 동네에 오니 문득 모든 것들이 불현듯 생각났다. 

참으로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이 그리워 내가 이 동네에 자꾸만 발길을 돌리는 건가 싶었다. 


 

그때는 새벽 네시까지 글을 쓰고, 무서운지도 모르고 터널을 건너 집으로 다시 돌아갔다. 

가끔은 터널을 공사하거나 청소하는 환경미화원 아저씨들에게 웃으며 인사하며 집으로 돌아갔던 기억이 있다. 이십대라서 그랬던 건지 이 동네가 안전해서 그랬던 건지 잘 모르겠다. 

지금은 그런 붙임성도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 

코로나와 함께 변한 내가 지금 여기 서있다. 

그때의 나를 찾고 싶은 건가? 

 



남자친구는 이 동네가 금돼지 식당으로 유명해서 알고 있다고 했다. 

우리 아빠가 자주 갔던 식당이었다. 나는 이름만 들어봤던 식당이었다.  

아빠는 동대문에서 야간 장사를 하고 새벽이 되면 그 집에 가서 밥을 먹었다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빠도 나처럼 이 터널을 오고 가고 했었을 것이다.  

역시나 코로나 전까지만 해도 이 식당도 24시간 하는 식당이었다. 

동대문도 24시간 하는 시장이었으니, 항상 이 동네 근처는 밤새도록 활기가 넘쳤다.  

문득 그 시절이 그립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동산에서 단기방을 찾지 못한 우리는 금돼지를 찾아갔다. 

오후 4시. 피크 타임에 오면 몇 시간을 기다려야 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2층으로 올라가 자리를 잡았다. 

난생처음 고기가 이렇게 부드러울 수 없다고 생각했다. 

역시나 한국인은 삼겹살이라고 했지만, 이 집은 목살이 정말 맛있었다. 

영국에서 온 소금에 목살을 찍어먹었다. 

아직 가지도 않은 호주에 내가 있었다. 이 맛이 무척 그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물밀듯 밀려왔다. 



"그래도 카페는 가야지?"

남자친구는 소셜미디어를 잘 활용한다. 

인스타그램에 #약수동카페를 쳐서 꽤 괜찮은 카페를 발견했다. 

직접 만든 도자기 컵에 스페셜티 커피를 내려주고, 

또 직접 만든 베이커리를 내어주는 곳. 

가는 카페 길까지 구불구불하고 쏙 마음에 들었다. 

"여기에 살았으면 이 카페에 엄청 자주 왔을 것 같아..."

"그러니까.. 아쉽다."



카페에 들어서니 아기자기한 카페까지 우리가 좋아하는 것 투성이었다. 

잠시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을 느껴본다. 

"한국을 떠나면 이 모든 게 그리울 것 같아..."




이제는 우리가 한국을 떠날 시간이 삼 개월밖에 안 남았다는 생각에 이 모든 것들이 그리워졌다. 

이제는 하나하나 모든 것을 느끼고 가려고 한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이 시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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