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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컨트리 쇼퍼 Jun 26. 2023

빈 상가와 팝업스토어의 만남

<일곱 번째 리스트: 서울 성동구 성수동> 

요즘 성수동이나 신사동에는 빈 상가 건물들을 자주 볼 수 있다. 

"하루 대관료 1000만 원"

일부러 상가를 비우는 건물주들이라는 타이틀을 내건 뉴스를 봤다. 

이른바 '팝업 핫플'로 꼽히는 거리에서는 '팝업' '대관' 같은 현수막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성수동에서만 월평균 100여 개의 팝업 스토어(임시매장)가 들고 나면서 생긴 현상이다. 


이런 뉴스를 보고, 나는 성수동을 찾았다. 



내가 생각하는 성수동은 수제화밖에 생각이 안 난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우리 가족과 친척들은 수제화 사업을 시작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큰 고모부가 성수동에서 수제화를 처음 시작하였고, 

그렇게 고모들부터 우리 아빠까지 수제화 사업에 뛰어들게 되었다.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성수동에 자주 왔었다. 

그때는 이 동네가 뭐랄까? 

그냥 공장단지처럼 보이기도 했고, 조금 더 걸어가면 정겨운 길거리 속에 맛집들이 속속 숨어있는 곳이기도 했다.  

어쨌든 지금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그때는 아빠의 나이가 삼십 대 후반쯤 됐었을 것 같다. 내 나이와 별로 차이가 나지 않았다. 

아빠는 주로 이런 거리의 음식점 한 곳을 골라, 소주 한잔에 곁들일 수 있는 안주를 먹는 것을 좋아하곤 하였다. 

그래서 내가 생각한 성수동은 수제화 공장을 제외하고는 정돈되지 않은 복잡한 상가들과 음식점이 즐비한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빈 상가의 유리창에 붙어있는, 곧 있을 팝업스토어를 만기 될 곳이라는 현수막을 지나쳐왔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뚝도시장 쪽으로 걸어오게 되었다. 

이곳은 양 많고 저렴한 식당들이 포진되어 있다. 



이십 대 때는 극단생활을 하느라고, 이 동네에서 3년 정도 지하 연습실에서 생활했었다. 

더럽고, 눅눅하고, 피부병을 달고 살았다. 

밖을 나오면 온 거리가 술집 천지여서 거리가 깨끗하지 않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 불쾌했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그때와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거리가 왜 이렇게 다르게 느껴지는 걸까?

나이 때문일까? 함께 했던 사람들의 차이 때문일까?

아니면 이제 세상이 많이 변한 걸까? 




걷다가, 해산물 집으로 들어가 해산물 한 접시와 술을 시켰다. 



화창한 날씨를 느끼고 싶어서, 밖에 자리를 잡았다. 

지나다니는 동네 사람들은 사장님과 잘 알고 지내는 사이인지 인사를 하고 가게로 들어선다. 

옛날에는 이런 것들을 모르고 지냈는데, 이제는 이런 모든 것들이 참으로 정겹다. 

해가 지는 하늘을 보며, 소주 한 병과 맥주 한 병을 다 비웠다. 

 


산책을 할 겸, 서울숲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때도 성수동에 오면, 서울숲이라는 공원이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옆에 하늘 높이 우뚝 서있는 주상복합 아파트를 보면, 

내가 차마 살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래서 항상 성수동은 살고 싶었던 동네는 아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남자친구를 만나면서 성수동을 재발견하게 되었다. 남자친구는 일찍이 스무 살부터 이곳에서 한국 처음으로 들어선 바버샵을 찾아왔었고, 자신이 좋아하는 빈티샵과 전시관, 미술관 등이 있어서 이곳이 예술적인 동네면서, 트렌드를 선두 하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집을 찾을 때, 성수동으로 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곤 했었다. 


하지만 성수동으로 이사 오면, 우리의 일터와 거리가 있어 통근이 힘들 것 같았다는 것을 서로 인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뭐랄까... 

나는 어릴 때부터 성수동의 이미지가 주거 단지보다는 수제화 공장이라는 이미지가 커서인지, 그리 썩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전시를 보러 갈 겸 해서, 우리는 성수동 한 바퀴를 싹 둘러보았다. 

위에 기사에서 본 것과 같이 성수동에는 빈 상가가 참 많았다. 얼마 전 가로수길을 다녀올 때와 비슷했다.

그때는 기사를 보기 전이어서, 가로수길이 옛날과 다르게 망했다고만 생각했었다.  


만약, 성수동도 기사를 보고 오지 않았더라면, '망해가는 건가?' 하고 생각했을 것 같다. 

이제 성수동은 핫플. 그리고 비싼 임대료를 받는 곳으로 전락해 버렸다. 

아빠는 말했다. 옛날 성수동은 이렇지 않았다고. 

작년에 마지막으로 아빠와 함께 수제화 공장에 왔을 때, 아빠가 했던 말씀이셨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모든 동네가 유명해지면 자연스럽게 돈으로 연결되는 것 같다. 

건물주들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 빈 상가여도 상관없다.

동네의 이미지가 어떻게 되든 말이다.  

이건 정말 주관적인 내 생각이지만, 내가 보기에는 빈 상가가 유령 동네 같은 이미지 마저 들게 한다. 

 



결국, 성수동은 부동산도 가보지 않고, 아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는 그냥 전시 보러 올 때나 오자."

남자친구도 동의했다. 

"그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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