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컨트리 쇼퍼 Jun 20. 2023

서울의 노른자 땅이요?

<다섯 번째 리스트: 서울 성동구 금호동> 

"어디 살아요?"

"금호동이요..."

"서울의 노른자 땅에서 사시네요?"

"노른자 땅이요? 그런 말은 처음 듣는데요?"  

10년 전, 소개팅 자리에서 처음 들었던 소리였다. 

나는 그 사람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 

그때 당시에 내가 생각하는 노른자 땅이란, 이런 언덕배기 같은 곳이 아니었으니까.

우리 집은 가장 꼭대기에 있었다. 그래서 난 그 사람이 서울의 노른자 땅이라고 했을 때, 동의하지 않았다. 

금호동은 서울 한복판의 요새 같은 곳이었다.  




그렇게 10년을 금호동에서 살면서 어쩌면 이 땅이 그 사람이 한 말처럼 노른자 땅일 수도 있게구나 라고 생각했다. 

강남이나 강북이든 어딜 가나 20분이면 갈 수 있을 정도로 교통이 편리하고 좋았다. 

옥수동 쪽으로 걸어 나가면 한강이 나왔고, 밤마다 산책하기에도 제격이었다. 

그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정겨운 금남시장도 있어서 저렴한 가격에 질 좋은 과일과 야채를 살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집 뒤에는 뒷산이 있어 공기가 좋았고, 정말 조용한 동네였다.

가끔 밤마다 오토바이 경적을 요란하게 울려대는 비행청소년만 빼면 말이다.   



삼 개월간의 단기방을 찾으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생각해 봤던 곳이 금호동이었다. 

직방, 다방을 켜서 혹시나 있을 금호동의 단기방을 검색했다. 

아파트 단지로 이루어진 이곳에 단기방이 있을 리는 만무했다. 




나는 남자친구에게 금호동을 가보자고 제안했다.

내가 10년간 살았던 곳을 소개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솔직히 그 동네가 그리웠다.  

"내가 살 수 없는 집이라고 해도 그래도 다시 한번 그 동네를 둘러보고 싶어..."

서울대입구역에서 전철을 타고, 교대에서 3호선을 갈아탔다. 

2호선은 언제나 사람이 꽉 차있지만, 3호선은 어느 시간이든 여유롭였다. 그것마저 좋았다. 

살고 있을 때는 몰랐던 것들이 다른 동네에 사니 장점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는 이 아파트 꼭대기까지 올라오는 길이 너무도 힘들어서 항상 투정을 부리며 올라갔었다.

매일 집까지 올라갈 때마다 나중에 돈을 많이 벌면 꼭 평지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이 동네는 꼭 미로 같은데? 대체 언제까지 올라가야 해?"

"더 가야 해. 아직 멀었어."

나는 배시시 웃었다. 

나도 그랬었으니까. 

항상 우리 집에 오는 사람들마다 공통적으로 했던 말이 있었다. 

"여긴 왜 이렇게 높아? 언제까지 가야 해?" 

혹여나, 택시를 타면 택시기사에게 '금호동'이요. 하고 말하면 욕부터 얻어먹었다. 

그래서 택시 타는 게 두려워 항상 밤늦게 걸어 다니거나, 따릉이를 타고 집에 갔었던 기억이 남아있다. 

그 덕분에 밤늦게까지 땀을 뻘뻘 흘리며 산을 오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때부터였을까? 이 동네에 사는 것이 하나둘씩 싫어지기 시작했다. 


내 돈을 주고 택시를 타도 욕을 먹어야 할 만큼 이 동네는 구불구불하고 좁디좁았다. 

주변에는 주차가 되어 있어 주차난이 해소가 되지 않았고,

하물며 단지 안에는 마을버스도 다녀, 

만약, 마을버스까지 만나게 된다면, 실력 좋은 운전자 아니고서야 이 길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당시에는 모든 것이 싫기만 했던 것들이 이제는 다르게 느껴졌다. 

첫 자취를 하고 다시 이 동네에 와보니 모든 것이 그립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살았던 아파트에 도착한 순간, 불현듯 잊혔던 기억들이 선명할 정도로 되살아났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내가 이 아파트에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던 기억이 떠올랐어." 


이 아파트는 20년 이상 된 오래된 아파트여서 복도식 아파트의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더운 여름날이면 창문을 열고 자야지 뒷산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곤히 잠들 수가 있었다.

내 방 옆에도 복도와 연결된 창문 하나가 있었다. 

무더운 여름날, 그날도 문을 열고 잤다.   

그런데 잠을 자고 있는 새벽, 무언가 서늘한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가 날 쳐다보고 있다는 생각에 눈을 떴다. 

창문 밖으로 모르는 아저씨가 내가 자고 있는 것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는 너무 놀래 고레고레 소리를 질렀다. 우리 집 가족들이 순식간에 깨어났다. 

가족들은 그 아저씨를 잡으러 가기 위해 옷도 안 입고 복도로 뛰쳐나갔다. 하지만 그 아저씨를 잡지는 못했다. 


다음날 경찰에도 신고하고 CCTV를 확인하였지만 찾지 못했다. 

우리 가족들은 추측했다. 분명 이웃사람일 거라고. 그러지 않고서야 1층 현관출입문에서도 나간 사람이 찍히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가 소리를 지른 그 순간, 바로 자기 집으로 들어간 것이었다. 


그 일이 있은 후로 나는 두려움에 떨며, 더운 여름날에도 창문을 꽉 닫고 잤다. 

이 일이 있은 이후로 나와 같은 일을 당했다던 이웃주민이 있었다는 제보도 잇따랐다. 

 

그런데 그 사건이 있은 어느 날,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 순간 그 아저씨를 만났다. 

마른 체형의 남자... 그 눈빛... 정확했다. 

우리 집이 당시 13층이었는데, 그 아저씨는 14층을 눌렀다. 

가족이 있는 집안의 가장이었다. 


부모님에게 말했고, 경찰에 또다시 신고를 했지만, 아무런 증거가 없어 체포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한동안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도 불쾌했다. 

그 일이 있던 겨울날, 우리 집은 이사 갔다. 


불현듯 이 아파트에 오니 모든 것이 생각났다. 

나는 남자친구에게 말했다.

"여긴 아니다..."

"응?"

"나는 이제 아파트에 살고 싶지 않아. 우리의 사생활을 보호할 수 있는 그런 곳에 살고 싶어."

"그게 어딘데?"

"나도 몰라... 어딘가에 있겠지. 다른 동네도 더 둘러보자." 

매거진의 이전글 서른, 자취를 끝내기로 결정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