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발레 하는 쿠크다씨

빛과 소금 (1) 턴아웃(Turn-out)

by 쿠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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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장님에게 발레를 배우는 시기에 글을 쓰기 시작해 체득했던 것들을 적어내려갔다. 막연하게 수업만 듣다가 쓰고 그리면서 발레를 해보니 배운것을 어떻게 흡수하느냐는 전적으로 나의 몫이라는걸 절실히 느꼈다.(과거형인 이유는 적다 말았기 때문이다.) 옮긴 학원 이야기를 하기 전에 배웠던 것들을 쭉 정리해보고 싶었다. 선생님마다 철학도 다르고 배우는 사람 또한 몸이 천차만별이라 내가 배운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적용되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그래도 나와 비슷한 사람 한명쯤 있을테니 누군가에는 꼭 도움이 되길 바라며 글을 쓴다.


발레의 빛과 소금 꼽아보라면 턴 아웃(Turn out)과 풀 업(Pull up)이라고 말하고 싶다.

발레를 배우면 배울수록 자라는 나무가 된 기분이 든다. 성장 속도가 엄청나게 더디다는게 함정이지만! 턴 아웃으로 뿌리를 내린 새싹이 자라고, 풀 업으로 단단한 나무 기둥이 하늘로 가지를 뻗어내는 과정을 몸을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기둥과 뿌리의 내실이 있어야 자세의 완성도가 높아진다. 턴 아웃은 고관절을 몸의 바깥방향으로 돌려 다리 전체가 바깥을 향하는 것을 일컫는다. 이 턴 아웃은 모든 동작의 기본이다.


KakaoTalk_20250616_072418592_01.jpg 다리가 비슷해보이지만 오른쪽은 허벅지와 무릎이 바깥을 향해있다.

처음 배울 땐 무리하지말고 할 수 있을 만큼만 하라고 배웠다. 초보자가 단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억지로 몸을 쓰면 다칠 확률이 높아서 그런 것 같다. 그때를 떠올려보면, 항상 고급반 수강생들은 수업 전에 일자 스트레칭이나 개구리 자세를 하며 워밍업을 했다. 전혀 불가능한 자세라 "난 언제쯤 저렇게 유연해질까?'하는 생각에 신기할 뿐 저걸 왜 하는지 궁금증조차 없었다. 여러 학원들을 거쳐 지금 다니는 학원까지 지나온 시간 동안 턴 아웃에 대해 들어왔지만, '음… 굉장히 중요함. 별표 땡땡'하며 고개를 끄덕거렸을 뿐. 나는 근육도 없고, 일자 스트레칭도 안되는 뻣뻣한 수수깡이라 턴 아웃은 불가능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성장기가 끝나고 노화의 기차를 탄 몸이 다리를 일자로 찢고, 고관절을 바깥으로 돌려낸다니.. 유연성을 타고난 사람이 아니고서야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에 남일이라 생각했다.


KakaoTalk_20250616_072418592_01.jpg 개구리 자세


원장님은 정확한 발 포지션을 강조하셨다. 기억 속 첫 수업 날 원장님은 발 포지션이 정확하지 않은 자세로 동작을 시작하는 걸 참지 못하시는 듯했다. 되게 흉내라도 내라고 하셨다. 1번 발은 뭐 그럭저럭할 만했는데, 5번 발은 정말 힘들었다. 두 다리가 꽈배기처럼 엮이는 느낌이었다. 발을 마치 벽돌 틀에 구겨 넣은 느낌이었다. 원장님은 발 모양이 정확하지 않으면 쪼그려 앉아 내 발을 교정해 주셨다. 발바닥부터 정확함을 유지하느라 발을 타고 오르는 종아리, 허벅지 근육 엉덩이까지 아팠다. 연애를 글로 배운 사람처럼 발레영상을 자주 봐서 이론이 빠삭까진 아니지만 바삭(?) 정도라 자부하며 살았다. 내가 알고 있는 턴 아웃은 고관절부터 밖을 향하기 시작해 발끝으로 내려가야 정확한 발 포지션이 나온다는 것이었다. 턴 아웃의 시작점이 달라 이게 맞는 방법인지 의문이 들었다. 여태 배웠던 성인 발레 수업에서는 겪지 못한 일이라 그날의 근육통이 뇌리에 박혔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발레에 대한 새로운 씨앗이 심긴 것 같다.


턴아웃의 원리를 질문을 하고 해답을 듣는 방식을 선택하지 않았다. 머릿속에 박혀있는 [턴 아웃은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이다.]이라는 전제를 버리고, 발레에 관한 얕은 지식을 다 지운 백지상태로 다시 발레를 시작했다. 어차피 해답을 머리로 이해해도 몸이 따라주지 않는 걸 알고있다. 이제 근육과 관절들이 움직여 배우는 주입식 교육(?)을 시작했다. 우선 정확한 발 포지션으로 동작을 하니 유지했던 자세를 흐트러지지 않으려고 본능적으로 내전근에 힘이 들어갔다. 땅을 디딘 발 전체에 힘이 들어가고 그 힘이 허벅지 안쪽으로 타고 올라가 엉덩이까지 힘이 들어가는 게 조금씩 느껴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동작을 할 때 내가 다리 근육을 정확하게 쓰고 있는지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오 좀 알겠는데? 싶으니 뒤꿈치를 들고 업을 서는 동작이 더해지기 시작했다. 발 전체에 온 힘을 주며 간신히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이젠 발바닥 앞꿈치로만 버티라니.. 설상가상이 따로 없었다. 그때부터 제대로 서지 못하고 사방으로 휘청거렸다. 이제 문제는 풀 업이었다.


뿌리가 두 갈래인 나무가 땅에 자리를 잡고 위로 자라려면, 뿌리를 바깥 방향을 향해 뻗어나갈 수 밖에 없다. 뿌리가 아래로 곧게 자라거나, 안으로 꼬여버리면 나무의 기둥은 곧게 자라기 어렵고 가지 또한 원하는 방향으로 뻗어 자라지 못하지 않을까. 마찬가지로 내 두 다리가 바깥 방향을 향해야 몸의 균형을 보다 잘 잡을 수 있다. 실제로 두 발을 모으고 까치발을 서면 몸이 앞으로 기울고, 두 발을 양옆으로 돌리고 업을 서면 엉덩이(고관절)에 힘이 들어가면서 앞으로 기울어지지 않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동작의 난이도가 높아질수록 발레는 중심잡기 싸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턴 아웃이 안된 상태에서 고난도의 동작을 하게 되면 다칠 위험도 높아진다. 턴을 돌 때 또한 준비 자세에서 턴 아웃이 제대로 안된 채로 돌면 축이 휘청거리며 몸이 쓰러진다. 턴 아웃은 즉 발레의 근본적인 힘을 키우는 것이다. 다리 전체가 밖을 향하려면 고관절이 밖으로 열려야하니까 고관절의 유연성과 엉덩이 근육의 훈련이 필요한 것이었다.


원장님은 열띤 설명과 시범을 보이시다 이건 직접 근육을 써봐야지 백날 턴 아웃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만 듣고 느낄 수 없다고 말하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턴아웃 중요한건 알겠는데 남일이라 치부했던 내 마음에 정곡을 찔린 기분이었다. 매트 운동으로 코어 근육을 단련하고, 사이드 스트레칭을 하는 이유가 턴아웃 워밍업이라는걸 뒤늦게 깨달았다. 반성하는 마음으로 수업이 끝나고 남아 턴 아웃에 도움이 된다는 개구리 자세를 해봤지만 올챙이가 비웃을 정도로 진전 없이 뻣뻣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서 과식하고 소화가 안돼서 좀 움직여볼까 하고 유튜브를 틀었고, 알고리즘으로 접한 골반 스트레칭 영상을 따라 하게 되었다. 무심코 따라 하고 처음 느껴보는 통증에 정말 육두문자가 저절로 나왔다. 아마 턴 아웃이 안되는 사람들만 모아 주리를 튼다면 이런 느낌일 것이다. 너무 아파서 '아오!!! 다신 안 해야지.'하며 일어서는데 사타구니가 시원하면서 고관절의 개운함을 느꼈다. 시원함에 반해 2-3일 꾸준히 하다가 며칠을 안 했더니, 바로 골반이 뻐근하고 찌뿌둥했다. 그 때를 시작으로 그 골반 스트레칭을 자기 전에 꾸준히 해오고 있다. 주기적으로 하니 시간이 지날수록 고통은 줄어들고 개구리 자세할 때 골반 높이도 점점 낮아졌다.

그때 했던 스트레칭 링크다. https://youtu.be/yxgNF0-ORSw


그 이후 어느 순간부터 발레를 할 때 전보다 발 방향이 정확해지고, 휘청거리던 몸이 흔들리지 않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제서야 밤마다 하는 스트레칭이 턴 아웃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는 걸 눈치챘다. 알고리즘이 가져다준 선물인 걸까. 얼떨결에 굳게 닫혀있던 턴 아웃의 문이 열렸다. 열린 문이 자꾸 닫혔다 열렸다 하는게 문제이지만... 괜찮다. 열린게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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