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등반기 (2)
산행 날 새벽 다섯 시. 짐을 챙겨 성판악으로 가는 택시를 탔다. 모두가 그랬듯 택시기사님도 나에게 한껏 겁을 주었다. 하산하고 울면서 택시 타는 사람도 봤다는 둥 부축받고 내려오는 사람도 있다 뭐 등등.... 그러다 기사님은 "성판악으로 올라갈 거면 관음사로 내려오시지 그래요? 이왕 간 김에 두 코스 다 돌면 좋잖아요." 하셨다. 관음사는 성판악보다 훨씬 힘들다고 하던데 기사님은 한껏 나에게 겁을 줘 놓고 두 코스 다 돌아보라니... 기사님도 그냥 날 놀리고 싶은 것 같았다.
깜깜한 어둠 속 성판악은 산행을 시작하려는 등산객들로 북적였다. 예약한 큐알코드를 들고 입구에서 스캔하고 올라가면 산행은 시작된다. 5시 30분부터 입구가 열리기 때문에 먼저 도착한 사람들은 줄을 서 있고 산림 공무원으로 보이는 분이 주의사항이 적힌 종이를 읽어보라고 주셨다. 받아서 카메라고 찰칵 찍고 드리니 내게 "하나하나 꼼꼼히 읽어보세요! 재작년에 다섯 명이 사망했어요!" 했다. 나에게 사망 픽쳐가 보이는 건가.... 아무한테도 안 그러더니 나한테만 그러셨다. 다시 받아서 꼼꼼히 읽고 드렸다. 입구가 열리고 드디어 한라산에 첫 발을 내디뎠다.
친구말대로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무서웠다. 칠흑 같은 어둠이 바로 이런 걸 말하는 거였구나. 한 손에 휴대폰 플래시를 들고 한 손에 스틱을 쥐고 걷는데 길이 돌길이라 까닥하면 넘어지기 쉬워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했다. 내 앞 뒤로 가는 사람들의 불빛 또한 큰 의지가 되었다. 잠깐 숨을 고르려고 멈추면 그 불빛들이 다 사라져 버렸다. 나도 모르게 "어... 어 가지 마세요..." 하며 후다닥 그 불빛들을 따라갔다. 그다음부터는 무서워서 쉬지 못하고 계속 걸었다. 끝도 없는 길을 내디디니 생각이라는 게 사라졌다. 걷고 또 걸었다. 걷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어둠이 사라지고 저 멀리서 해가 야금야금 나오고 있었다. 빼꼼히 올라는 해와 손을 잡고 올라가는 기분이었다. 그제야 한라산이 내 눈에 들어왔다. 어둠 속에서 공포에 떨며 걸었던 길이 이렇게 예쁜 숲 길이었다는데 너무 신기했다.
일행들과 함께 온 사람들은 중간중간 이야기를 나누며 쉬었지만 난 쉬려고 멈추면 딱히 할 게 없었다. 그래서 쉬지 않고 그냥 계~속 올라갔다. 겉에 입고 있던 경량 패딩이 쭉 짜면 땀이 나올 것처럼 흠뻑 젖어 있었다. 감기 걸릴 것 같아 가방에 넣고 또 걸었다. 몇 시간을 걸었을까. 올라가다 보니 서리가 가득한 진달래 대피소가 나왔다. 아직 가을이라 서리가 쌓인 풍경이 너무나 신기했다. 표지판을 보니 정상까지 한 시간 반이 더 남았다. 이렇게 걸었는데 아직도 정상이 아니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잠깐 풍경을 눈으로 즐기고 또 걸었다. 걷다 보니 어마 무시한 돌길이 나왔다. 돌길은 트롤들이 잠자고 있는 느낌이었다. 도저히 올라갈 힘도 없고, 다리의 감각은 사라졌다. 등산 스틱에 온몸을 의지해서 걸었다. 한 발 내딛을 때마다 끙끙 거리는 앓는 소리가 나왔다. 망할 돌길을 걷다 뒤를 돌면 한눈에 보이는 제주와 넓은 바다가 있었다. 자린고비가 굴비를 바라보듯 고통스러울 때 높고 탁 트인 풍경을 보고 오르고 또 오르다 보니 백록담이 날 맞이하고 있었다.
백록담과 맞이한 첫 순간. 해냈다는 벅차오름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이렇게 높은 곳에 서 있을 수 있구나.' 하는 성취감이 나를 에워쌌다. 성취감은 잠시 뒤로 하고 정상에 오르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백록담 인증 사진을 찍어 인증서에 업로드를 하는 것이다. 업로드하고 결제하면 탐방 인증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얼른 인증샷 줄을 서야겠다 하는데, 친구가 말했던 기나긴 줄이 없었다. 분명 사람들이 어마무시하게 많다고 했는데... 하며 이상해하던 찰나에 남편에게 잘 올라가고 있냐는 전화가 왔다. 이제 정상에 막 도착했다고 하니 남편은 벌써 다 올라갔냐며 화들짝 놀랐다. 왜 놀라나 싶어 시계를 봤더니 아홉 시였다. 주변을 둘러보니 열 명 남짓한 사람들이 도착해 있었다. 쉬지 않고 계속 걸었더니 너무 일찍 정상에 도착해 버린 것이었다. 세 시간 반 만에 백록담에 도착했다.
정상 표지석 옆에서 사진 찍으려 서있는 분에게 사진을 부탁하고 나도 찍어드렸다. 사람이 없어서 마음껏 사진을 찍었다. 찍어 주시는 아저씨가 줄 서서 사진을 찍으면 많이 찍으려다 싸움이 나기도 한다고 했다. 일찍 온 자의 특혜를 톡톡히 누렸다. 사진을 찍고 나니 정말 백록담에 올랐다는데 실감이 났다. 날씨 운이 좋아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한 백록담을 만날 수 있었다. 백록담에서 바라본 바다는 정말 찬란하고 눈이 부셨다. 용기를 내 묵묵히 걸었던 시간들이 더욱 귀하게 여겨졌다. 넓고 고요한 백록담을 마음껏 즐기고 발열도시락을 꺼냈다. 점심으로 먹으려고 싸 온 도시락을 아침으로 먹게 되었다. 펄펄 끓어 익은 라면밥은 정말.. 평생 먹은 라면 중 제일 맛있었다. 너무 맛있어서 게걸스럽게 먹었더니 사진 찍어 주신 아저씨가 그렇게 맛있냐고 물어보셨다. 왕초처럼 "허허허 네네"하며 국물까지 다 마셨다. 밥 먹고 백록담을 눈에 오래 담으려고 한참을 바라봤다. 값진 경험 몸에 새겨야지 하는 마음이었다. 혼자 살아 본 적도 없고, 혼자 여행을 해 본 적도 없다. 흘러가는 시간에 몸을 맡긴 채 상황에 닥치는 대로 살아와서 그런지, 이렇게 혼자 무언가 성취해 낸 느낌이 새롭고 반가웠다.
겪어보지 못한 감정과 고통을 배우는 귀한 시간. 백록담에서 아름답게 마무리하면 좋으련만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었다. 산행은 내려가야 끝난다. 문득 택시 기사님의 제안이 떠올라 관음사로 내려가기로 마음을 바꿨다. 언제 다시 올라올지 모르는데 관음사는 어떤 길일지 궁금했다. 방향을 틀어 관음사 방향으로 내려가기 시작하자마자 무릎에게 미안함이 몰려왔다. 경사가 심한 계단이 정말 많아서 무릎보호대와 스틱이 없었으면 내 무릎은 저 세상으로 갔을지도 모른다. 단풍이 절정이었을 시기라 보이는 곳곳이 너무 멋졌다. 이런 풍경을 볼 수 있어 감사했지만 다리는 죽어나가고 있었다. 몸에 다리가 달려 있어서 어쩔 수 없이 걷는 느낌이랄까… 몸뚱이를 산에다 버리고 갈 수 있다면 그러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
관음사 탐방로의 경치를 진통제 삼아 걷고 또 걸었다. 할 수 있는 게 걷는 것 밖에 없는 상황을 울어야 하나 웃어야 하나 싶었지만 뭐 어쩌겠나 집에 가려면 또 걸어야지. 걷고 걷다 탐방로 표지판에 관음사 입구까지 소요시간 30분이라 쓰여 있는 것을 보고 ‘드디어 다 왔구나.’ 안도했다. 거의 일곱 시간을 걸어서 그런지 아무리 걸어도 입구가 나오지 않았다. 표지판이 신기루였나 싶을 때 입구와 주차장이 보였다. 드디어 아스팔트를 밟는다는 기쁨에 영혼이 탈출한 몸으로 뛰어내려 갔다. 그리고 정상에서 신청한 인증서를 뽑았다. 인증서를 손에 쥔 순간 진짜 끝났다는 생각에 눈물이 왈칵 나올 뻔했다. 내려왔을 때 시간은 오후 한 시 반이었다. 그렇게 일곱 시간 만에 한라산 등정을 마쳤다.
관음사 주차장으로 내려가니 아이와 남편이 기다리고 있었다. 남편은 저녁이 다 되어서 울면서 내려올 줄 알았는데 벌써 내려와 점심을 함께 먹어 신기하다고 했다. 그땐 숨겨진 산악인 재능을 발견한 줄 알았다. 잠깐의 착각이었다.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일어나는데 다리가 풀려 걷지 못했다. 반쯤 기어나가는 나를 보며 식당 사장님은 혹시 무슨 수술했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집에 돌아와 하루를 앓았고, 인류의 기원처럼 이틀을 기어 다니고 일주일을 어기적거리며 걸었다. 엄지발톱엔 훈장처럼 시커먼 피멍이 들어 한참 동안 빠지지 않았다.
한라산 등반을 얼떨결에 혼자 해내고 나니 힘든 순간이 와도 전보다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힘이 생겼다. 발레를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다. 다른 일들도 마찬가지지만, 발레 할 때 힘들고 어려운 동작은 '이건 아직 내가 할 수 없는 거야.' 하고 버릇처럼 혼자 단정 짓고 쓰윽 물러났다. 못한다 못 박았던 동작들도 무작정 걷던 한라산처럼 하다 보면 내 것이 되어있을 거라는 강한 믿음이 생겼다. 더 이상 스스로 판단해 물러서지 않는다. 그리고 묵묵히 걷는다. 오 뭔가 멋있는 사람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은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