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락치기
아주 어릴 때부터 언제든 벼락치기를 하기 위해서 주머니에 번개를 늘 품고 다녔다. 절대 세상에 폐 끼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미루는 나름의 철칙도 있었다. 할 수 있는 만큼 미루고 미루다 발등에 불똥이 떨어지고 나락이 감지되면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거 엄밀히 따지면 스스로에게 폐 끼치는 거다. 이상하게 기한이 넉넉하면 완벽히 해낼 것 같은 무모한 자신감이 나를 지배한다. 그 최면은 마음속 시계에 카운트다운이 시작되면 마법처럼 풀린다. 결말은 늘 같았다. '시간 있을 때 좀 할 걸…' 땅을 치며 후회하고 눈물 콧물을 쏟으며 끝내는 삶이었다.
시험, 취업, 결혼식, 출산 준비물까지도 벼락치기가 가능했는데.. 아이를 낳고 나니 더 이상 벼락치기가 먹히지 않았다. 적성에 맞지 않은 계획적인 삶에 마음대로 안 되는 육아는 참 혹독하고 힘들다. 잘 나간다는 육아용품 구하려면 세일가는 이미 품절이라 제 값 주고 사느라 뼈아팠다. 병원도 늦게 가도 일찍 가도 진료 대기, 어린이집도 대기, 유치원도 복불복 대기... 대기할 때마다 '내가 대기만성할 상인가.' 싶었다. 기다리지 않기 위해 계획하고 대비하고 살다 보니 주머니 속 번개는 세상 구경을 할 수 없었다.
발레도 육아와 마찬가지로 벼락치기가 먹히지 않는다. 탱자탱자 놀다가 복근 운동을 몰아서 한다고 복근이 생기지도 않고, 미루다가 스트레칭 하루 종일 한다고 다리가 머리에 닿지도 않는다. 배울수록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 것과 같은 인내의 길이라 느껴진다. 그 바위 냅다 드릴로 우다다다 뚫고 싶은 충동을 꾹 참고 발레를 하고 있다. 그러다 가끔 본능을 참지 못해 틈을 노려 벼락치기를 한다. 이 소소한 벼락치기가 본능을 위한 일탈이다.
내 삶에 발레가 없었다면 벌써 오스트랄로 피테쿠스가 되었을 것이다. 집안일을 하다가 문득 어깨를 쫙 펴고 있는 순간이 있던가 떠올려봤다. 누가 가슴팍을 누르고 있는 양 어깨와 등이 안쪽으로 굽었다. 혼자 당당하게 어깨 펼 에너지도 없고 살림 대부분이 다 바닥에 붙어 있다. 솔직히 굽은 몸이 훨씬 편하지 않나. 이렇게 편한 생활을 하다가 학원 가는 날이라는 사실을 인지하면 슬슬 자세를 고쳐 진화를 시작한다. 먼저 턱부터 집어넣고 귀 끝을 하늘로 끌어올려 경추를 곧게 세운다. 익숙해지면 굽었던 어깨를 바깥으로 돌려 내린 뒤 등에 힘을 줘서 몸을 곧게 편다. 학원을 향해 걸을 때에는 최대한 몸을 펴고 당당한 직립보행을 한다. 그 과정이 흡사 인류의 진화와 같다.
이렇게 속성 진화 과정을 거쳐 곧은 몸으로 수업이 시작되면 선생님이 쓱 다가와 목과 어깨를 교정해 주신다. 선생님이 어깨를 잡아 뒤로 돌리고 '이게 맞는 자세예요.' 하면, 아직도 펴야 할 어깨가 남아있었다는 사실에 소름 돋는다. 대체 난 얼마나 굽어 살고 있던 걸까..
위의 발레리나의 수많은 동작들 속에서 찾을 수 있는 공통점은 바로 흐트러짐 없는 상체이다. 앉으나 서나, 뛰거나 턴을 돌거나, 팔을 사방으로 움직여도 상체는 항상 같은 자세를 유지한다. 어깨나 가슴 등 부수적인 근육의 움직임도 있지만, 상체를 곧게 버티는 핵심 열쇠는 등 근육의 힘이다. 복근 운동처럼 등 근육도 단련해야 몸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 요즘 굽은 어깨 교정용으로 몸에 착용하는 밴드가 많이 나오는데 멀리서 밴드를 찾을 필요 없다. 이 밴드의 역할을 등 근육이 해주기 때문이다.
뒤에서 등 근육으로 꽉 잡아주면 어깨와 목에 들어가던 힘이 분산되어 승모근에 불필요한 부담이 줄어든다. 자연스럽게 곧은 자세가 나온다. 꾸준한 등 운동과 상체 스트레칭은 정렬을 바로잡고 잘못된 자세로 인한 근육통 감소에 효과적이다. 이거 저거 다 하기 귀찮을 땐 폼롤러만 등에 대고 굴리기만 해도 오스트랄로 피테쿠스를 호모 사피엔스까지 만들어준다. 긴 시간 동안 선생님의 "등!!" "등!!" 외침으로 등 근육을 벼락치기로 단련해 왔다. 이젠 선생님 입술이 '드'를 발음하는 타이밍부터 등에 힘을 준다. 이렇게 한 시간 반 남짓한 시간만큼은 있는 근육 없는 근육 끌어모아 몸을 곧게 세운다. 체력소진으로 상체에 힘이 점점 빠져 굽기 시작할 때는 이미지 트레이닝을 시작한다. 여배우가 된 내가 고가의 목걸이를 협찬받고 시상식 레드카펫을 걷는다고 상상한다. '이 목걸이를 최대한 많이 보여줘야 한다.'생각하면 의무감에 저절로 자세가 고쳐진다.
나의 자세 벼락치기는 수업의 끝을 알리는 선생님의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요.'와 함께 빠르게 끝난다. 너무 급하게 많이 힘을 줘서 그런지 날개뼈 안쪽이 욱신거릴 때도 있다. 거울에 비친 한 층 곧아진 자세를 보며 '평상시에 바른 자세로 살걸..' 하고 반성하게 된다. 곧은 자세를 잊지 않으려고 목에 부목을 댄 것처럼 어기적거리며 옷을 갈아입는다. 바른 자세와 마음가짐을 그대로 품고 다시 길을 나선다. 그리고 누구보다 빠르게 오스트랄로 피테쿠스가 되어 걸어간다. 늘 꾸준히 하는 게 이상적이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하련다. 소소하게 자주 벼락치기를 하다 보면 굽은 몸도 눈치 챙겨서 점점 펴지지 않을까. 꼿꼿한 몸을 벼락치기로 글을 쓰며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