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넘어 산
파드카트르의 시작은 위 그림처럼 액자 속 그림 같은 모습으로 시작한다. 왼쪽이 카를로타 그리시, 중앙에 서있는 사람이 패니 체리토, 오른쪽 앞에 앉은 사람이 마리 타글리오니, 오른쪽 뒤에 서있는 사람이 루실 그란이다. 사실 네 명 다 처음 들어본 사람이고 지금도 누군지 모른다. 역할 선정에 선택권이 주어졌다면 오른쪽 뒤에서 은은하게 후광을 비추는 루실 그란의 자리를 선택했을 것 같다. 첫 연습은 포지션을 정하고 시작 안무를 배우는 시간이었지만 그날 결석한 죄로 내가 센터로 떠밀려 있었다. 아무거나 상관없다 말하던 과거의 내 입을 막아버리고 싶었다. 이렇게 막상 센터가 되니 심적 부담감이 바위만큼 커졌다. 저 자세(그림)로 1분 가까이 서있는 게 시작이었다. 처음엔 호기롭게 업(까치발)을 서보겠다 했지만 30초 넘어가면서 부들거리며 사지를 떨었더니 선생님이 내려오자고 하셨다. 아 플랭크 좀 많이 해둘걸.
음악에 문외한이지만 발레 클래스 음악은 계속 듣다 보면 박자가 느껴진다. 처음 듣는 음악이어도 한번 들어보면 어느 타이밍에 움직여야 할지 대충 감이 온다 자만했다. 날고 기던 사람들이 추던 춤이라 그런가 파트카트르는 달랐다. 작품반 음악이 1분 30초 정도라는 걸 감안하면 파드캬트르 음악은 5분 길이도 상당히 길었다. 중간에 음악 분위기가 바뀌어 난이도가 더 높았다. 아무리 연습해도 선생님이 “지금!”이라고 말해주시지 않으면 대체 어느 타이밍에 움직여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눈치 보느라 눈알만 데굴데굴 굴린 시간도 모아보면 제법 될 것 같다.
네 명이 소화하는 작품이라 틀리면 엄청 티가 났다. 나는 요령 피우는 맛에 발레 하는데 요령을 피울 수 없었다. 연습 초반엔 센터라 겁먹었지만 어려운 점프도 없고 맡은 안무가 쉬워 보였다. 다른 사람들 열심히 점프하고 나면 느즈막히 걸어 나와서 인사하는 역할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걸어 나오는 걸음걸이와 인사하는 모습이 너무 어색해 따로 붙잡혀 한 시간 동안 걷는 연습만 했다. 걸음마다 우아함을 곁들이는 것도 고도의 기술이었다. 답이 없던 인사도 무한 반복하니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발레에 걷기와 인사가 이렇게 힘든 일인 줄 처음 알았다. 연습 덕분인지 이제 걸어 나와 인사하는 건 자신 있는데… 써먹을 데가 없다.
인사와 걸음걸이로 내가 선생님과 일대일 잡도리를 당하는 동안 다른 분들도 각자의 기술을 터득하느라 고생길을 걸었다. 그 길의 방향이 달라 연습할 때는 서로를 챙길 수 없었지만 합을 맞추는 순간부터 얼마나 힘들었는지 느낄 수 있었다. 학원 하루 빠지고 싶고 농땡이치고 싶을 때마다 바쁘고 힘들어도 퀭한 얼굴로 연습하러 오는 멤버들 덕에 마음을 잡고 임했다. 서로 다독여도 모자랄 판에 초연에 오른 발레리나들은 대체 왜 사이가 안 좋았던 걸까... 다들 배가 많이 고파 예민했던 탓일까 추측해 본다.
같은 음악에 동작과 동선이 각자 다 달라서 마치 성질이 다른 흙뭉치로 하나의 도자기를 만드는 과정 같았다. 처음으로 다 같이 동작을 맞춘 날, 아무리 못해도 칭찬만 하던 선생님의 낯빛이 급격하게 어두워지며 ‘너무 이상해요.’를 툭 내뱉으셨다. 원작은 토슈즈를 신지만 우리는 천 슈즈를 신어서 마치 엄마 하이힐 신은 꼬마 같은 엉성함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슈즈 탓을 해보지만 정말 이상했다.) 이상한 동작에 박자도 안 맞고 중구난방 자체라 안무 수정에 들어갔다. 배우고 수정하고 다시 합을 맞춰보고 무한 반복이었다.
시간이 흘러 점점 그럴듯하게 모양이 잡혀갈 때쯤, 거울 보고 연습하던 우리에게 선생님은 뒤돌아서 연습을 시작하자 하셨다. 무대 앞엔 거울이 없고 관객이 있다는 사실을 그때 인지했다. 벽을 보고 연습하자마자 우리가 겨우 빚어내던 도자기가 흙덩이로 돌아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눈앞에 보이는 방향도 바뀌고 내 다리가 얼마큼 올라갔는지 보이지도 않고 정말 총체적 난국이었다. 이것저것 따지느라 허둥지둥 댔고 옆사람의 허우적거리는 숨소리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끝이 있다 소문만 들은 터널을 무작정 걷다 멈춘 기분이었다.
오르면 오를수록 이게 첩첩산중 태백산맥이었다는 걸 한 박자 늦게 깨닫는 시간들이었다. 시간은 흐르고 이걸 2월에 올릴 수 있을까 막막함이 들 때마다 선생님이 건넨 해결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작품의 시작부터 음악, 걸음걸이, 멤버들과 합 그리고 눈앞에 사라진 거울까지. 근심할 시간에 연습을 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이 해결책은 세상 걱정 다 짊어지고 저글링 하며 살던 내 삶에 강한 울림이 되었다. 안될 것 같던 동작들이 연습하며 아주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것을 눈으로 직접 봤기 때문인 것 같다. 해결할 수 없는 것은 과감히 머리에서 지우고 내 선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계속 부딪혀서 해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공연 연습 이후로 인생이 전보다 심플해졌다.
공연이 다가오는 2월까지 틈날 때마다 연습실에 가서 진심으로 뒤지게 연습했다. 자발적인 열정보다 원장님의 강제적 연습이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말이다. (이끌어 주셔서 감사하다.) 저녁에 90분 발레 수업을 마치고 연습 끝내고 집 가면 밤 11시, 12시가 되어있었다. 그런 날에는 발바닥에 감각이 없어서 무슨 정신으로 집에 도착했는지 몰랐다. 아무리 연습해도 고칠 게 너무 많은 내 모습에 화가 나서 집에 울면서 갔던 날도 부지기수다. 인생의 심플을 얻고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갔다. 분명 연습하기 전에는 멋지게 최고로 잘해야지 패기 넘쳤던 거 같은데 시간이 지날수록 개망신만 막아보자 다짐하게 되었다. 공연 전날 밤. 상위권 대학이었던 목표가 ‘재수만 면해보자’로 바뀐 고3 수능 전날 밤의 마음으로 잠들었다. 오랜만에 어려진 거 같고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