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 발레 하는 쿠크다씨

피케(piqué)

by 쿠크다

일상 같던 저녁 발레의 끝이 보이는 가을이었다. 뭐든 두 번째는 처음보다 수월한 것 같다. 처음으로 수업이 없어졌을 때처럼 통곡의 벽을 타는 절망도 덜 했다.

하루 종일 종종거리며 가족들 서포트하고 밤에 스트레스를 불태우듯 발레를 한 것이 아무래도 몸에 무리를 줬던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 바 수업에서 센터로 넘어가면 눈이 잘 안 떠졌다. 끝까지 버티느라 막바지엔 늘 짙은 쌍꺼풀이 생겼었다. 이게 전조증상이었는데… 이걸 간과하고 이겨내야 된다며 발레학원 가는 날엔 커피를 두 잔씩 때려마셨다.


끝을 마주하는 준비를 도와준 건 의외로 갑자기 발병한 돌발성난청이었다. 어느 날 아침을 준비하는데 물속에 잠겨있는 느낌이 들었다. 모든 소리가 웅웅 거리며 머리를 맴돌았다. 그날 운이 좋았던 건지.. 딸아이 안과 검진하러 가다 늘 북적이는 이비인후과가 텅 비어있는 것을 보고 아이가 가서 진료를 보라고 권유했다. 평소 같으면 지나쳤을 텐데 사람도 없길래 진료를 봤다. 몇 가지 검사를 하고 의사는 주사처방과 함께 지금 당장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혼내듯이 권유했다.


사실 의사의 “안정을 취하세요.”라는 말을 잘 귀담아듣지 않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의사는 아이를 집에 데려가려고 찾아온 남편을 진료실로 불러서 다시 한번 절대안정을 강조했다. 이렇게 갑자기 발레가 사라져 버렸다. 일단 꼬박꼬박 병원도 다니고 잘 먹고 잘 자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엄마가 멈춰버린 집이 눈에 거슬리게 삐꺽 댔지만 굳이 애쓰지 않았다. 그래도 어떻게든 돌아가더라. 발레 없는 삶도 나름 괜찮았던걸 보면 몸을 혹사하고 살던 게 맞았다.


피케(piqué)라는 동작이 있다. ‘찌르다’라는 뜻으로 한쪽 발을 꼿꼿이 세워 원하는 방향에 찌르듯 꽂아 서는 이동 동작이다. 피케 파세 피케 업 피케 아라베스크 등등 뒤로 다양한 동작들이 붙는데 내 레벨에선 보통 턴 돌기전에 피케를 많이 하는 것 같다. 선생님의 시범을 보면서 ‘저렇게 꼬챙이 찌르듯이~ 오케이 접수!’하고 따라 해 봤다. 선생님 꼬챙이는 새 꼬챙이고 나는 한번 꺾었다 다시 쓰려고 편 꼬챙이 같았다. 겸손하게 접수를 취소한다..


내가 느끼는 피케는 민속놀이 투호 같았다. 근데 널뛰기와 그네 타기 사이에 끼워 넣은 난이도 있는 투호놀이랄까. 널도 뛰어야 되고 그네도 타야 되는데 그 사이투호도 완벽하게 넣고 싶은… 그 성급함과 욕심은 피케를 엉망으로 만드는데 한 몫했다. 꼿꼿해보려고 코어 단련과 무릎 펴는 연습도 많이 했지만 영 제자리걸음이었다.

덜거덕 거리는 나의 피케를 보고 선생님은 쁠리에가 없다고 하셨다. 안정적인 쁠리에를 먼저 하고 찌를 곳을 잘 조준할 줄 알아야 하는데 마냥 찌르려고 애써서 안 되는 거라며 다시 가르쳐주셨다. 그 얘기를 듣고 시범을 보니 피케 하기 전 깊은 쁠리에가 보였다. 안정적으로 몸을 눌렀다 정확히 찌르는 게 포인트였다. (이렇게 또 쁠리에의 중요성을 만난다.) 투호도 성공하려면 정확히 조준하고 집중하는 시간을 가진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자세를 잘 잡을 생각은 뒤로한 채 마냥 꽂으려고 바둥대는 피케처럼 일상을 살다 결국 돌발성난청이 온 거 같다. 쉬는 동안 근육이 빠지고 실력이 뒤쳐지면 어쩌나 초조함이 몰려오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이 시간이 피케 하기 전 준비하는 깊은 쁠리에라고 여기며 불안과 초조를 덜어냈다. 그 덕분인지 후유증이 좀 남았지만 청력도 돌아오고 컨디션도 회복했다.


돌발성 난청과 함께 쉬는 사이 마지막 수업도 찾아왔다. 사람들 발레 하는 거 눈에라도 담고 싶어 멀리서 참관만 했다. 코앞에 내 발레 하느라 다른 사람 볼 겨를이 없었는데, 같이 수업 듣는 회원들이 이렇게나 아름답게 발레 하는지 마지막 수업날 알게 되었다. 연습실 안에 울려 퍼지는 발레 음악이 마지막이라 그런지 더 뭉클하게 다가왔다.

학원과의 이별도 건강을 다시 다지는 시간도 다 깊은 쁠리에였다고 생각한다. 이제 피케를 할 때가 왔다. 잘 조준해서 다시 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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