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ourbet Oct 11. 2015

홍콩의 전당포

홍콩의 거리에 옛 전당포가 여전히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홍콩별 여행자 04

홍콩의 전당포


홍콩의 거리에는 수많은 간판들이 정신없이 걸려 있다. 어느 간판 하나도 통일성 없이 제각각의 모습으로 산만하게 하늘을 뒤덮고 있지만, 그 전체가 또 하나의 장관을 이루어 홍콩만의 독특한 감성을 자아낸다. 


온통 간판으로 뒤덮인 홍콩의 골목길을 걷고 있으면, 마치 간판의 숲 속을 헤매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런데, 그 많은 간판들 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고 자주 발견하게 되는 간판이 하나 있다. 


빨간 바탕에 녹색의 네온사인 테두리, 그리고 그 안에 크게 적혀 있는 “押(누를 압)”이라는 한자. 이 간판은 바로 홍콩의 전당포를 상징하는 간판이다. 



전당포는 시계나 가방, 보석 등의 귀중품을 담보로 맡겨 두고, 일정 기간 동안 돈을 빌려주는 일종의 금융업이다. 채무자가 빌려 간 돈을 갚지 못하면, 전당포 주인은 담보로 맡아둔 귀중품을 처분하여 채권을 회수한다. 


금융의 도시, 홍콩의 전당포 사업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홍콩의 거리를 걷다 보면, 적어도 수십 년 이상은 되었을 것 같은 오래된 건물이 종종 눈에 띄는데, 현재까지도 그대로 사용되고 있는 이 낡은 건물들은 대부분 전당포들이다. 


홍콩을 포함한 중국 남부, 광둥 지방의 사람들은 예로부터 이재에 밝고 계산이 빨라 상업 및 무역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였고, 이를 통해 부를 축적해 왔다. 


그러한 전통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홍콩과 광둥 지방은 중국에서 여전히 가장 부유한 지방 중 하나로 발전하고 있다. 아주  오래전부터 이재에 밝았던 그들은 어쩌면 태생적으로 금융업에 적합한 사람들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까닭에 오늘날 홍콩이 금융산업의 메카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거대한 금융산업의 시발점은 어쩌면 옛 전당포 사업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오늘날까지도 홍콩의 완차이나 코즈웨이베이의 번화한 거리를 걷다 보면, 매 블럭마다 전당포 하나 정도는 쉽게 발견하게 된다. 



세계 어느 도시보다도 최첨단 금융이 발달한 이 홍콩이라는 도시에 여전히 옛날 모습 그대로의 전당포가 도처에 남아 있는 까닭은 도대체 무엇일까? 


머릿 속에 이런 궁금증이 떠오르는 순간, 문득 홍콩에 처음 도착해서 은행에 계좌를 만들러 갔던 때가 생각이 났다. 아직 홍콩이 낯설고, 아무것도 몰랐던 그때, 회사에서 보내 준 가이드와 함께 은행 점포를 방문했는데, 홍콩에서 은행 계좌를 개설하는 일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복잡한 서류의 작성은 기본이고, 은행 직원과의 인터뷰, 그리고 질문에 대한 답변과 녹음까지... 

무슨 절차가 그리도 복잡하고 까다로운지, 계좌 하나 열기가 이렇게 까다로워서야 어찌 은행 영업을 할 수 있는 것인지 의아할 정도였다. 


말도 잘 안 통하는데, 까다롭게 굴기까지 하니, 정말 홍콩에서 살아야 하는 것만 아니라면, 계좌고 뭐고, 그냥 포기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게다가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일정 금액 이상의 예금 잔고를 유지하지 않으면, 매달 은행에 수수료를 내야 한다는 것. 한국적 사고 방식으로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나마 나는 홍콩에 어엿한 직장이 있으니, 어쨌든 큰 어려움 없이 계좌 개설에 성공한 편이다. 개인이나 직장의 신용 상태가 우량하지 않다면, 홍콩에서 은행 계좌를 만들거나 신용카드를 발급받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홍콩에는 HSBC를 비롯하여 스탠다드차터드, 뱅크오브아메리카, 제이피모건, 골드만삭스, 비앤피파리바 등 세계 유수의 금융기관들이 다 모여있다. 이 대단한 은행들의 이름만 들어도 나 같은 소시민들은 어쩔 수 없이 위축되는 마음을 숨길 수가 없는데, 거리와 골목에서 생계를 꾸려가는 홍콩의 서민들은 과연 어떠할까?


그들에게 있어 이 대형 은행들의 카운터는 그들이 넘기 힘든 대단한 장벽인지도 모른다. 


그들 중 대부분은 신용이 확실한 직장이 있는 것도 아닐 테니, 은행에서 돈을 빌리거나 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홍콩의 거리에는 여전히 옛 전당포들이 곳곳에 남아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그렇게 추측해 보기로 했다.


홍콩에서 전당포는 한국의 저축은행들처럼 일종의 서민 금융인 셈이다. 그런 까닭에 이 오래된 전당포들은 저 대단한 대형 은행들보다 더 많은 골목에 산재해 있고, 서민들의 삶의 현자에 더 가까운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일 게다. 


전당포의 내부를 잠깐 들여다보면,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사람 키 높이 정도의 가림막이 세워져 있다. 그리고, 그 너머로 사람 키보다 더 높은 위치의 카운터에서 전당포 주인이 가림막을 내려다 보는 구조로 되어 있다. 



전당포 입구의 가림막은 예로부터 남에게 돈을 빌리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로 여겨왔기 때문에 채무자의 체면을 보호하기 위해 세운 것이라고 한다. 채무자는 이 가림막 뒤에 숨어서 전당포 주인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리고, 전당포의 카운터를 사람키보다 높게 세운 까닭은 강도로부터 전당포 주인과 내부에 보관된 귀중품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재물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강도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침사추이 이스트에 있는 홍콩 역사박물관에 가보면, 옛 전당포를 구성해 놓은 전시관에 들러 가이드의 상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는데, 이 곳에 가면 또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옛 전당포의 외벽은 대부분 벽돌로 지어졌는데, 그 벽돌 안쪽에는 대나무를 겹겹이 대각선으로 겹쳐 놓은 벽이 하나 더 있다. 


벽 안쪽에 이렇게 대나무를 겹쳐 놓은 까닭은 전당포의 귀중품을 노란 강도들이 벽돌을 안쪽으로 밀어서 구멍을 만들고, 내부로 침입하는 경우가 있어 이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홍콩의 전당포. 처음엔 무심코 지나쳤는데, 어느 순간 자주 눈에 띄고, 자주 눈에 띄니 익숙해지고, 익숙해지니, 도대체 뭐하는 곳일까 궁금해졌다. 그리고, 그 역사를 알고 나니, 정말 흥미로운 곳이었다. 


그 독특한 내부구조와 특유의 네온사인 간판,  홍콩에서 그 커다란 간판을 만나게 된다면, 그냥 지나치지 말고, 전당포 내부를 한 번 살짝 들여다보자. 


조금 어색하겠지만, 너무 어색할 필요는 없겠다.

어차피 전당포의 문턱을 넘보는 사람들은 누구나 처음부터 어색한 마음이었을게다. 


(글/사진) Trippers

매거진의 이전글 여왕의 시대가 남기고 간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