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문화는 일상의 주변에 있어야 한다
홍콩별 여행자 06.
홍콩섬 센트럴의 퀸즈 로드(Queen’sRoad)에서 윈드햄 스트리트(Wyndham Street)를 따라 언덕길을 오르다 보면, 붉은색의 줄무늬가 인상적인 벽돌 건물이 하나 눈에 띈다.
이 건물의 건너편에는 내가 즐겨 찾던 울루물루 스테이크 하우스(WooloomoolooSteak House)가 있는데, 이 레스토랑에 갈 때마다 나는 항상 길 건너편의 붉은색 줄무늬 벽돌 건물의 정체가 궁금했다.
이 붉은색 줄무늬 벽돌 건물의 정체는 나중에 한참이 지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는데, 바로 “프린지 클럽(Fringe Club)”이라는 곳이었다.
1890년대에 지어진 이 오래된 벽돌 건물은 원래 우유 회사인 데어리팜컴퍼니(Dairy Farm Company)의 냉동 창고였다고 한다.
홍콩의 편의점이나 슈퍼마켓에 가보면 빨간색 십자가 문양이 그려진 우유팩을 볼 수 있는데, 바로 이 회사에서 나오는 우유다. 홍콩에서는 가장 많은 사람들이 마시는 우유라고 한다.
오랫동안 냉동창고로 쓰였던 이 건물은 수 차례의 보수 공사를 거쳐 현재는 문화예술 공간으로 탈바꿈하였다. 1970년대에는 데어리팜 컴퍼니의 본사 건물로 사용되기도 하였는데, 이 회사가 다른 곳으로 이전하면서 버려진 건물을 1984년에 현재의 프린지 클럽이 인수하였다고 한다.
그 이후 몇 차례의 개보수 공사와 혁신적인 탈바꿈으로 프린지클럽은 완전히 새로운 문화 예술 공간으로 재탄생하였다. 이러한 노력을 인정받아 2001년에는 홍콩 정부가 선정하는 헤리티지 어워드(HeritageAward)를 수상했다고 한다.
이 역사적인 벽돌 건물의 한쪽 벽면에는 인상적인 문구가 하나 적혀있다.
“Arts + Peopole = FringeClub”
말 그대로 예술과 사람이 만나는 곳은 프린지클럽이라는 문구다.
비영리 단체인 프린지클럽은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만나 예술과 문화를 교류하고, 이러한 교류를 통해 사회 각 분야와 다양한 문화권으로 예술과 문화의 전파 및 교류가 활발해지도록 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사명 아래 프린지 클럽은 홍콩 로컬 및 전 세계 각지로부터 온 젊은 예술인들에게 무료 또는 아주 저렴한 비용으로 전시나 공연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관람객들 역시 무료 또는 저렴한 비용으로 부담 없이 다양한 문화 예술 이벤트를 즐길 수 있다.
프린지 클럽의 1층에는 각종 전시회가 열리는 갤러리가 있고, 1층의 다른 입구로 통하는 공간에는 외국인들이 모여 사교 모임을 가지는 프라이빗 클럽이 있다.
그리고, 또 다른 입구로 통하는 2층에는 늘 다양한 공연이 열리는 소극장이 있으며, 옥상에는 탁 트인 공간의 루프탑 카페가 하나 있다. 각 공간들의 목적과 형태는 다르지만, 모두 다양한 문화와 예술을 교류하기 위한 만남의 공간들이다.
프린지 클럽의 여러 공간들 중에서 나는 특히 이 클럽의 소극장을 좋아한다.
소극장 공연에서는 공연자의 숨소리부터 표정 하나 하나까지 놓치지 않고, 눈 앞에서 생생하게 펼쳐지는 공연을 감상할 수 있다. 작은 공간이기에 공연에 더욱 몰입할 수 있고, 공연자와 더욱 밀접하게 교감할 수 있는 곳이다.
이 소극장에서는 일주일에 2~3 차례씩 무명의 인디밴드나 록밴드, 팝가수, 기타 연주자, 바이올린 연주자 등 그때 그때마다 다양한 라이브 공연이 열리는데, 입장료는 대개 홍콩달러 150불 내외이고, 이 입장료 가격에는 음료 1잔의 서비스가 포함되어 있다.
한 번은 프린지클럽에서 <플라멩코> 공연이 열린 적이 있었다. 나는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을 여행하면서 인상 깊게 보았던 <플라멩코> 공연을 떠올리며, 이 공연을 보러 갔다.
홍콩에서의 <플라멩코>는 또 어떤 느낌일까 궁금해하며……
공연장 입구에 들어서니,100여 명 남짓 수용될 만한 아담한 객석이 먼저 눈에 띈다. 그리고, 객석에 앉기 전에 와인이나 맥주 또는 콜라나 주스 등 원하는 음료 1잔씩을 선택하여 들고 갈 수 있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화이트 와인 한 잔을 들고, 객석으로 올라가 자리에 앉았다.
무대라고 하여 별도로 구분된 경계가 없고, 객석 앞의 빈 공간이 바로 공연이 펼쳐지는 무대다. 맨 앞 자리에 앉으면 바로 코 앞에서 공연자의 숨소리까지 느낄 수 있는 거리다.
잠시 후 극장의 조명이 꺼지자, 어둠 속에서 무대 한 가운데에만 조명이 비치며, 플라멩코 공연자들이 등장한다. 알 수 없는 언어로 뭐라 뭐라 이야기하는데,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다. 하지만, 경쾌한 손뼉 치기와 함께 공연이 시작되자 그 이후로는 말이 필요 없었다.
스페인에서 보았던 플라멩코 공연의 그 느낌 그대로 때로는 흥겹게 때로는 구슬프게 플라멩코 특유의 리듬과 선율에 맞춰 무희들의 손뼉 치기와 발구르기가 이어진다. 그리고, 공연의 종반부로 갈수록 점점 더 현란해지는 그들의 몸동작에 어느 순간 나는 완전히 몰입되어 그들과 하나가 되어 간다.
소극장 특유의 현장감과 생생함이 플라멩코 공연과 특히 잘 어울려 더욱 그랬다. 그리고, 공연의 여운은 한 동안 오래 지속되었다.
그 이후로 바쁜 일상생활 때문에 프린지 클럽의 공연을 자주 보지는 못했지만, 일상생활의 공간과 아주 가까운 곳에 언제든 부담 없이 들려 전시와 공연을 즐길 수 있는 프린지 클럽이라는 공간이 있다는 사실이 홍콩의 바쁜 직장 생활 속에서도 언제나 마음의 위안이 되었다.
예술과 문화는 우리 일상에서 먼 곳이 아닌 가까운 곳에 있어야 하며, 누구나 쉽게 그리고 부담 없이 찾아와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프린지 클럽은 몸소 증명하며, 센트럴의 가까운 이 곳에 계속 자리 잡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공연은 자주 보지 못했지만, 내가 홍콩에 있는 동안 한 달에 2~3 차례는 이 프린지 클럽을 찾았던 것 같다.
대부분은 이 클럽의 옥상에 있는 프린지 루프가든 카페(Fringe Roof Garden Café)에서 헬씨 베지테리언 라이트 런치(Healthy Vegetarian Light Lunch)를 즐기기 위해서였다.
베트남, 타이, 아세안, 이태리 등 세계 각국의 유기농 채식 요리들을 요일마다 테마를 바꾸어 가며 다양하게 제공하는 이 카페 레스토랑의 헬씨 베지테리안 라이트런치 역시 다양한 음식 문화를 공유하기 위한 문화 이벤트의 일종이다.
1인당 홍콩달러 100 불 정도를 지불하면, 음료 1잔과 셀프 뷔페 형식의 점심식사를 즐길 수 있는데, 나는 특히 매주 화요일의 이탈리안 테마 뷔페를 좋아했다. 헬씨 베지테리안 라이트 런치라고 해서 채소만 있는 것도 아니고, 맛 또한 일품이었다.
다양한 음식 문화를 체험해보고 싶다면, 그리고 복잡한 홍콩의 거리에서 점심 먹을 거리가 없어 고민이라면, 프린지 클럽을 한 번 찾아가 보는 것도 좋겠다.
음악과 공연, 전시 그리고 다양한 음식까지 다양한 문화 예술 이벤트를 즐길 수 있는 프린지 클럽이야 말로 온 종일 '돈' 벌 궁리만 하는 홍콩의 금융가, 센트럴의 완전 소중한 공간이다.
(글/사진) Tripp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