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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urbet Mar 08. 2016

어느 멋진 날의 오후, 스탠리

매력 만점의 반나절 여행코스


스탠리는 리펄스베이와 더불어 홍콩의 서양인들이 즐겨 찾는 해변 중 하나다. 영국 식민지 초창기 당시 홍콩에서 몇 안 되는 정착지 중 하나였던 스탠리에는 현재까지도 부유한 서양인들이 여전히 많이 거주하고 있다. 


영국 군대는 홍콩 점령 후 한 동안 배가 드나들기 편리한 스탠리에 정착했다고 한다. 그런 까닭에 영국 식민지 초기 스탠리는 비공식적으로 홍콩의 수도로서 번영했다. 


그러나, 이곳은 예로부터 모기가 많고, 습도가 높아 서양인들이 적응하기에 쉬운 곳은 아니었다. 그리하여, 영국 군대는 홍콩섬 센트럴 지역에 빅토리아 시티를 건설하여 홍콩섬 북부로 본거지를 옮기게 되었다. 


그렇게 한 동안 홍콩 역사의 한 페이지에서 사라졌던 스탠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침략으로 다시 역사의 무대로 등장하게 되었다.  


영국은 일본 군대에 밀려 센트럴의 본거지를 포기하고, 스탠리로 밀려났다. 그리고, 이 곳에서 최후까지 항전하다가 1941년 결국 일본군에 항복하였다. 스탠리 해변을 지나 30분 정도 걸어가면, 당시 일본군에 결사 항전하다가 장렬히 전사했던 군인들의 묘지가 있다.



이처럼 홍콩의 역사에 중요하게 등장했던 스탠리는 그 유구한 역사성 대신 현재는 홍콩 여행의 인기 관광지로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저렴하면서도 다양한 물건들을 파는 스탠리 마켓과 스탠리 앞바다의 멋스러운 노천카페와 레스토랑들, 영국 식민지 시대의 우아한 석조 건물인 머레이 하우스와 조용한 분위기의 휴양 해변, 스탠리 비치 등…… 스탠리는 여행자들에게 매력 만점의 반나절 여행코스를 제공한다.


또한, 현지인들에게는 한가한 주말 오후, 차 한 잔 마시며, 바닷가를 산책할 수 있는 여유로운 장소를 제공한다. 그러니, 스탠리에는 언제나 사람들로 붐빌 수밖에 없다.


나는 홍콩에 있는 동안, 스탠리를 참 좋아했다. 스탠리까지 가는 동안의 차창 밖 풍경도 멋지지만, 스탠리에 도착하면, 그 보다 더 흥미로운 것들이 가득했다. 스탠리 마켓에는 언제나 눈길이 가는 다양한 물건들이 넘쳐나며, 근처에는 맛있는 음식들이 있고, 파란 하늘과 푸른 바다는 언제나 나의 마음을 들뜨게 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스탠리를 자주 찾게 되었던 이유 중 하나는 스탠리 마켓의 소규모 갤러리 구경 때문이었다. 스탠리 마켓 주변에는 소규모 갤러리들이 많이 있다. 


이들은 주로 홍콩 무명작가들의 작품들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곳들이다. 이 곳에 대단히 유명한 작품들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홍콩의 다양한 풍경을 강렬한 색채의 유화 기법으로 그려낸 그림들을 보고 있으면, 홍콩의 색다른 느낌들을 발견하고 놀라게 된다. 


그러다가 우연히 마음에 드는 작품이라도 하나 발견하게 되면, 가끔 하나씩 구입해 볼 만도 하다. 홍콩 화가의 오리지널 작품이지만, 의외로 가격이 생각만큼 비싸지 않으면서 마음에 드는 작품들이 종종 있다. 


한 친구는 혹시 오리지널이 아닌데, 속여서 파는 것이 아니냐고 의심하기도 했는데, 그렇더라도 상관없지 않은가? 마음에 드는 그림을 집에 걸어 놓고, 매일 보는 즐거움이라면, 이미 그 만한 값어치는 한 셈이니까 말이다. 나는 미술에 문외한이지만, 단지 마음에 드는 그림을 보고 있는 것이 즐거울 뿐이다. 



예전에 중국 여행을 갔을 때, 일 년의 절반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무명작가들의 그림을 수집하고 있다는 재일 교포 사업가를 만난 적이 있다. 그 아저씨가 해준 말이 기억난다.


“나는 일 년에 절반은 전 세계를 여행하면서, 무명작가들의 그림을 수집합니다. 그리고, 10년 정도 집에 걸어 놓고, 마음에 드는 그림을 매일 감상하며 즐기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운이 좋아서 한 작가라도 유명해지면, 그림 가격은 수백 배로 올라가지요. 좋아하는 그림을 10년이나 충분히 즐기고 나서 수백 배의 가치로 되팔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큰 장사는 없지요”


본인이 충분히 즐길 만큼 즐기고 나서 수백 배의 가격으로 되파는 장사. 세상의 어느 장사도 본인이 충분히 쓰고 남은 중고를 이렇게 비싼 가격에 되파는 경우는 없다.


그런 경우는 예술품만이 유일하다. 예술품 본연의 가치는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친다고 줄어들거나 없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말 마음에 드는 그림이 있다면, 그리고 그 값이 크게 부담스럽지 않다면, 하나쯤 구입하여 언제 생길지 모를 대박 행운을 기대해 보는 것도 인생에서 하나의 즐거움이 되지 않을까…… 


스탠리 마켓에서 그림 구경도 하고, 시장 구경도 하고, 근처의 멋진 카페에서 차 한 잔 마시고, 바닷가를 산책하는 일…… 스탠리가 내게 선물해 준 어느 멋진 날의 행복한 오후 시간이었다.


(글/사진) 꾸르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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