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진지한 반성'의 의미

고 이예람 중사 사건의 피고인 두 명이 2심에서 감형됐습니다

by 코트워치

"누가 사죄를 했지? 그때부터 지금까지를 굉장히 많이 곱씹어볼 것 같아요. 누구였는지. 그런데 아마 없을 것 같아요. 아무도 없을 것 같아요."


고 이예람 중사 사건¹ 2심 선고 이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들은 말입니다.


성추행 사건 수사 지연, 허위보고 등 혐의로 기소된 전직 군검사 A 씨와, 이 중사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B 대위가 2심에서 감형받았습니다.


재판부는 감형 사유로 '진지한 반성'과 '(피고인의 행위가) 피해자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었다는 점'을 꼽았습니다.


이예람 중사의 유가족들은 재판부가 언급한 '진지한 반성'의 의미를 되물었습니다.




선고 내용은 비교적 간단했습니다.


구체적인 혐의와 관련해서는 1심과 다르게 판단한 부분이 없었습니다.


2심 재판부의 '관점'은 양형 이유를 설명하는 대목에서 드러났습니다.


"피해자의 직속상관으로서 새로운 부대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야 했던 피고인은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허위사실을 유포했다. 이는 성범죄 피해자의 처벌 요구를 어렵게 만들 뿐 아니라 피해자가 일상으로 복귀하는 것을 방해하는 행위였고, 가해자의 변명을 확산시키는 역할을 했다. 2차 가해에 해당하는 심각한 범죄다" (B 대위에 대한 양형 이유 중 일부)


"(이예람 중사 사망 이후) 수사와 관련해 허위 보고를 하여 공군본부가 사건 경위를 파악하는 데 혼선을 빚게 했다. 이후 피고인은 허위로 보고한 내용을 시정할 기회가 있었지만, 이를 정정하지도 않았다" (A 씨에 대한 양형 이유 중 일부)


재판부는 A 씨와 B 대위의 행위가 중대한 피해를 가져온 것은 사실이지만 위와 같은 점을 모두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원심의 형은 너무 무겁다'고 봤습니다.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은 두 사람은 2심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아 실형을 면하게 됐습니다.


부대 내 2차 가해를 방치한 혐의를 받는 C 중령은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형을 감경한다'는 내용의 선고가 나왔지만, 방청석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날 선고가 이어지는 내내 재판장의 목소리가 방청석에 거의 들리지 않아 모두가 숨죽인 채 귀를 기울였습니다.


판결 내용을 거의 듣지 못한 유가족이 재판부에 "선고의 요지를 한 번 더 읽어달라"고 요청했으나 재판장은 "시간이 없으니 판결문을 통해 확인해달라"며 퇴정을 명령했습니다.


법원 앞 계단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군인권센터 부설 군성폭력상담소 김숙경 소장은 2심 선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재판부가 성폭력 사건이 갖는 큰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것 같다. 이 중사는 성추행 사건 이후 2차 가해가 쌓이고, 그것이 방치된 끝에 사망했다. 재판부가 '(피고인의 행위가)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감형한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¹ 공군 제20전투비행단 소속 고 이예람 중사는 상관에게 성추행을 당한 뒤 수사가 진행되던 2021년 5월,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이 중사가 사망한 이후 군이 2차 가해를 방치하고 수사를 무마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2022년 4월, 국회에서 '고 이예람 중사 특검법'이 통과됐고, 관련자 8명이 재판에 넘겨졌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코트워치가 바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