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한 비영리 단체에서 이번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설문을 진행했습니다.
첫 문항이 인상적이었는데요, 현 상황을 접하며 느낀 감정을 적는 주관식 문항이었습니다.
예시는 '두렵다' 였습니다. 설문에 참여하면서 이번 계엄이 사람들에게 어떤 마음을 불러일으키게 됐을까 생각해 보게 됐습니다.
지금 여러 언론에서 소환하고 있는 전두환·노태우 등 신군부의 내란죄에 관한 대법원 판례를, 저와 최윤정 기자도 자세히 살펴봤습니다.
당시 재판에서 다뤄진 쟁점이 지금도 반복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평생 읽을 일이 없을 줄 알았던 <전두환 회고록 3: 황야에 서다>도 읽어봤습니다.
책에는 당시 수사 상황과, 재판에서 오간 검찰과 변호인의 발언 내용이 일부 담겨 있습니다.
저자 전두환은 1심 재판을 앞두고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국가의 안전을 지키고 민족 번영의 토대를 가꾸어온 5공화국의 역사가 전면 부정당한다면, 역사 파괴의 폭거를 막을 수 없다면 역사의 심판대 위에 내 한 목숨을 바칠 수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굳어져갔다."
"사람은 죽일 수 있어도 진실은 죽일 수 없다"
수사와 재판 과정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차가웠습니다.
신군부의 군사반란·내란 혐의에 대한 대법원 판결은 1997년에 나왔고, 그해 광주의 한 연구소는 설문¹을 진행했습니다.
국민 1000명에게 재판 결과에 대한, 5.18광주민주화운동 진상규명에 관한 생각을 물었습니다.
1980년 내란의 '우두머리'로 지목된 전두환은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는데요
(이후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습니다), 위 설문의 응답자 66.6%가 1심 재판부의 판결이 '적당하다'고 봤고, 5%는 '가벼운 편'이라고 응답했습니다.
차기 대선 후보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주장한다면 '지지를 철회하겠다'고 응답한 사람도 67% 정도 됐습니다.
당시 신군부에 대한 재수사가 이루어지기까지 전국적인 기소 촉구 운동, 5.18 특별법 제정 운동²이 이어졌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위 설문 결과는 당연해 보이기도 합니다.
연일 쏟아지는 뉴스를 통해 접하는 지금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90년대에 수사와 재판을 두고 나타난 전직 대통령과 국민들 간의 '온도 차'가 멀지 않게 느껴집니다.
¹ 1997년, 광주사회조사연구소는 한국사회과학자료원과 함께 '5.18 1심 선고공판에 대한 여론조사'를 진행했습니다.
² 1995년 9월, 서울·부산·광주 등 전국 15개 도시에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국민대회가 열렸고, 대학교수 6400명은 5.18 서명교수 모임을 결성했습니다. 그해 12월, 5.18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전두환은 구속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