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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과 산불감시원, 법원이라는 틀

법원이 다뤄온 사건의 흔적은 판결로 남아 있습니다.

by 코트워치

법원은 기본적으로 과거를 다룹니다. 그뿐만 아니라, 누군가 나서서 소송을 시작하거나 검찰이 범죄 혐의를 인정해야 법원이 사건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이런 한계 때문에 지금 이 순간 일어나는 모든 일을 법원이라는 틀로 살펴보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법원이 다뤄온 사건의 흔적은 판결로 남아 있습니다.


산불과 관련해서도 여러 흔적이 있었습니다. 그중 가장 눈에 띈 건 산불감시원의 존재였습니다. 산불감시원산불전문예방대원 등은 주로 단기 계약직 인력으로, 산불 예방과 초동 대처, 잔불 정리 등 업무를 맡습니다.



오토바이·자동차 필요한 업무


2004년 2월, 강원 영월군청 산불감시원은 오토바이를 타고 출근하다 교통사고로 사망했습니다.


2015년 3월, 경남 양산국유림관리소 산불전문예방대원은 승용차를 타고 퇴근하다 교통사고로 사망했습니다.


근로복지공단은 유가족에게 유족 급여와 장례비를 지급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의 사망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습니다. 오토바이와 승용차가 두 사람의 소유이고 '사업주가 제공한 교통수단'이 아니라는 점을 이유로 들었습니다.


법원은 판단을 뒤집었습니다.


법원이 판결문에 밝힌 이유를 보면, 산불감시 업무의 특성이 드러납니다. 산불감시 지역이 매우 넓기 때문에 "도보나 자전거 같은 교통수단으로 적절한 업무 수행이 곤란해" 이런 교통수단 이용이 불가피했다는 겁니다. 더 나아가 이들은 오토바이와 승용차가 있었기 때문에 채용될 수 있었습니다.


(산림청 운영규정에 따르면, 본인 소유 오토바이나 자동차가 있으면 가산점을 받습니다)



춥고 좁은 산불감시 초소


2020년 12월, 경북 영덕군청 산불감시요원은 초소에서 구급차로 이송돼 뇌경색 진단을 받았습니다.


근로복지공단은 요양 급여를 지급하지 않았습니다. '산불감시 업무 때문에 질병이 생긴 것으로 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이 사건에서도 법원은 판단을 뒤집었습니다.


법원은 "고령인 원고(소송을 건 사람, 산불감시요원)는 추운 날씨 등 열악한 근무 여건에 노출되어 근무하였고, 이로 인하여 발병했거나 자연적인 속도 이상으로 급속히 악화됐다고 봄이 타당하다"라고 판단했습니다.


산 위에서 산불을 감시하는 초소는 조립이 불량해 바람이 들어왔고, 좁았으며, 화장실도 따로 없었습니다. 군청에서 받는 난방비(1주에 8000원 상당)에 돈을 보태 구입한 LPG 난로가 있었지만, 재판부는 이 난로를 손만 쪼이는 식으로만 사용한 것으로 봤습니다.



지원자 평균 연령 60대


2022년 10월, 대구 수성구청 산불감시원 시험의 60대 응시자가 쓰러졌습니다. 약 12분 뒤 도착한 구급차로 이송됐지만, 병원에서 사망했습니다. 산불 진화용 등짐펌프(15kg)를 메고 1km 거리를 걸어서 20분 내로 들어오는 체력 시험을 마친 직후였습니다.


유가족은 수성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했고, 법원은 금액 일부를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수성구는 체력 시험 이전에 연령이나 건강 상태를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응시자들의 평균 연령이 60대이고, 기저질환이 있으면 갑자기 운동량이 증가할 경우 심장마비 등 사고가 발생할 수 있지만, 응급의료 인력이나 장비를 현장에 배치하지 않았습니다.


판결문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1년까지 산불감시원 체력 시험 중 응시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4건이나 발생했다고 합니다.




지난달 22일, 경남 창녕군 소속 예방진화대원 3명과 인솔 공무원 1명이 산불 현장에서 고립돼 숨지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고용노동부는 창녕군·경상남도에 대해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이 있는지 조사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27일에는 경북 영덕군 소속 산불감시원이 집으로 돌아가다 차 안에서 숨지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번 산불로 인해 생명을 잃은 모든 이를 깊이 추모하면서 저희도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겠습니다.


(이미지 출처: 산림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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