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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현섭 Oct 19. 2023

균형

파이브툴 플레이어

 귀멸의 칼날이라는 니를 보면, 키부츠지 무잔이라는 캐릭터가 나온다. 그는 인간을 혈귀로 만들고, 그들 위에서 군림하는 일종의 파이널 보스 역할을 맡고 있다. 영생을 얻은 완벽한 그도 딱 하나 겁내는 게 있으니, 그건 바로 햇빛이다. 최정예 부하들(상현)에게 제대로 하라고 갈구면서,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내가 싫어하는 건 노화와 같은 변화고, 추구하는 건 완벽한 상태로 영원히 불변하는 것이다." 햇빛만 빼고 무서울 게 없는 혈귀로써 충분히 할만한 대사지만, 평범한 사람들은 좀처럼 공감하기 힘든 발언이기도 하다.

  살아간다는 것은 바꿔 얘기하면 죽어간다는 말과 같다. 보통 죽어간다는 말을 들으면 큰 거부감을 느끼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간다에 방점을 두는 것뿐이다. 신체적으로 정점을 찍는 20대가 넘어가면, 그다음은 죽는 날까지 유지 또는 쇠락이 이어진다. 이는 정점을 지나면, 애써 찾아 두었던 신체적 균형점을 옮길 수밖에 없다는 걸 의미한다. 물론 신체적 변화는 오랜 기간에 걸쳐 시나브로 일어난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인간은 자신의 신체가 버틸 수 있는 자극만을 수용할 수 있고, 그 강도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슬프지만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신체적인 노화는 누구한테나 공평하게 찾아온다.

 하지만 정신적인 균형은 좀 다르다. 각각 수용할 수 있는 범위가 천차만별이고, 균형점을 이동하는 것 또한 반드시 부정적인 걸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바뀌는 우선순위를 감안하지 않으면, 엉뚱한 곳으로 물줄기를 보내는 실수를 하게 된다. 물론 인간은 心身을 완벽하게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心이 정확한 결정을 했다 하더라도, 身이 완벽하게 이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身이 지금과 비슷한 상태로 장기간 유지된다는 가정 하에 추구하게 되는 心의 균형은 과연 어떨까?

 올드보이의 오대수처럼 '오늘만 대충 수습'하는 입장에서 보면, 먹고살기도 바빠 죽겠는데 무슨 헛소리냐고 할 수도 있다. 이해한다. 나도 첫 직장에선 일과 가정이라는 2차원(직선)에서만 균형점을 찾았다. 당시 난 일에 극단적으로 치우친 균형점을 갖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매일 회사에서 12시간 넘게 일하고 회식까지 불려 다니다 퇴근했기 때문이다. 주중 주말의 구분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으며, 어쩌다 생기는 여가시간은 부족한 잠을 보충하기에도 모자랐다. 냉정하게 보자면, 그건 균형이 아니라 비자발적 올인이었다. 지금도 많은 직장인들이 과거의 나와 비슷한 균형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가정적인 사람이 되고 싶어 하고, 먼 훗날 자녀들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길 원한다. 다만 당장은 밥벌이가 훨씬 더 시급한 문제일 뿐이다.

 하지만 지금의 직장으로 넘어오면서, 난 더 이상 '회사가 인생의 전부'라는 연기를 할 필요가 없어졌다. 이곳의 사람들은 워라밸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고, 특히 근무시간 이외에 연락하는 건 금기시되었다. 약 2주 동안의 적응 과정을 끝내고, 난 갑자기 다양한 방면에서 정신적인 균형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시간은 그동안 챙기지 못했던 관계의 개선 쪽으로 대부분 흘러 들어갔다. 가족, 친구, 동호회 등을 챙기면서 난 그동안 소홀했던 걸 만회하고 싶었다. 약간의 시행착오는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자 자연스럽게 나만의 균형점이 생겨났다. 난 너무 행복했다. 일, 가정, 동료, 친구, 취미 등 어느 것 하나 만족스럽지 않은 게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영역에서 특출 나게 앞서 나가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지만, 고르게 형성된 균형이 주는 안정감은 나를 매우 편안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난 몰랐다. 신체적인 균형만큼이나 정신적인 균형도 쉽게 깨질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야구에서 5가지 능력(타격능력, 장타력, 주력, 수비력, 송구능력)을 골고루 갖춘 선수를 가리켜 파이브툴 플레이어라고 한다. 파이브툴 플레이어는 시장에서 매우 희소한 존재고, 따라서 보통 높은 연봉을 받는다. 파이브툴 플레이어는 한 두 가지 영역에서 특출 난 능력을 가진 선수보다는 떨어질 수 있지만, 다양한 영역에서 팀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 나이가 들어 주력이나 장타력이 하락해도 타격능력이나 수비력으로 장기간에 걸쳐 큰 보탬이 되기 때문이다.

 모든 게 안정적인 시기에, 난 스스로를 정신계의 파이브툴 플레이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오만한 생각이었다. 야구와는 다르게, 한 영역에서 무너진 정신은 다른 모든 영역에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아무리 이쪽과 저쪽을 분리해서 생각하려 해도, 그게 참 어려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정신을 뒤흔든 부정적인 사건은 트로이의 목마처럼 착실하게 나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 물고 있던 사탕을 빼앗긴 아이와 같이, 난 모든 게 허무하게 느껴졌다. 사실 우선순위로 보자면, 동료는 가족에 비하면 한참 뒤에 위치하는 존재다. 하지만 정신의 영역에서는 아랫물이 윗물을 흐리는 기현상도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었다.

 정신의 물질이 뒤죽박죽인 상태로 길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자, 어느새 나도 모르게 새로운 균형점이 형성되어 있었다. 원인도 모른 채 괴로워했던 한 인간을 망각이라는 신이 구원해 준 덕분이었다. 이제는 그 이유를 궁금해야 할 이유도 별로 없고, 궁금해하고 싶지도 않다. 그리고 새로운 균형점에는 죽을 때까지 반드시 지켜야 할 소중한 것들만 올려두었다. 앞으로 어두운 내면을 들여다볼 때마다, 과거의 기억이 떠올라 날 괴롭힐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세상에 지나가지(변하지) 않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그것도 별 상관없다. 다만 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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