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이 영업사원의 비밀 일기, 아홉 번째 이야기
하루 종일 걷다가 가장 많이 보는 간판은 학원 간판입니다. 그 빌딩 속에 있는 학원으로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들어가고, 나오는 모습을 보면 저의 어렸을 때 기억이 떠오릅니다. 저도 초등학교 때 어머니의 극성(?)으로 학원을 여러 개 다녔습니다.
하루는 학원을 가야 하는데 어머니가 밥을 먹고 가라고 해서 밥을 먹었습니다. 시계를 보니 학원에 지각할 것 같아서 밥을 급히 먹고 나와 체한 적이 있었습니다. 학원에 갔는데 갑자기 배가 꼬르륵 거리며 아파오기 시작했습니다. 수업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른 체 몇 시간 동안 아픈 배만 부여잡고 있다가 수업이 끝나고 힘들게 집에 돌아왔습니다. 어머니는 그 사실도 모른 체 '왜 늦었어?'라며 저만 다그치셨습니다. 저는 어머니한테 혼날까 봐 아파도 참고 앉아 있었는데, 되려 혼나니깐 서러워서 엉엉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갑자기 울음을 터트리는 저를 보더니 어머니는 놀래서 어쩔 줄 몰라하셨고 왜 우냐고 채근하셨습니다.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어머니께 배가 아파서 늦었다고 울며 설명했더니 미안하다며 안아주셨습니다. 배가 아프다니 손을 따면 괜찮아질 거라며 손도 따고 약도 먹었는데 저는 호전되지 않았습니다. 늦은 밤이 되어 갈수록 저는 열도 나고 온몸이 아파왔고 설사도 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는 부랴부랴 저를 응급실에 데리고 가서 검사를 받았습니다.
응급실에 계시던 의사 선생님께서는 '어린놈이 무슨 스트레스가 그렇게 많냐'면서 제 머리를 한대 콕 쥐어박으셨습니다. 제가 배가 아팠던 건 요즘 흔한 '스트레스성 장염'정도였나 봅니다.
응급실 병상에 누어 링겔주사를 맞고있는데 어머니는 무엇이 나를 괴롭히는지 이야기해보라고 하셨습니다. 철없는 저는 어머니께 '친구랑 놀고 싶은데 학원 가야 하고 숙제도 너무 많다'고 투정 부렸습니다.
그날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어머니는 제가 하고 싶은데로 학원을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어린 저는 학원을 안 다니니깐 금세 좋아진 것 같았습니다. 스트레스 때문에 많이 아플 때는 어떤 약보다도 가장하기 싫은 것을 안 하니까 금세 괜찮아졌습니다.
혹시 요새 머리가 지끈거리고 소화도 안된 적이 있으신가요?
그렇다면 '안 하면' 됩니다.
그런데 어렸을 때는 안 해도 되는 것에 대한 무게가 작았다면, 나이가 드니깐 쉽게 안 하기 힘든 일들이 많습니다. 직장상사가 시킨 프로젝트, 당장에 필요한 시험성적, 막연한 미래 때문에 하고 있는 일들. 이 것들 중 내가 당장 무엇을 그만두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차라리 어머니가 제 투정을 듣고 '그래, 내일부터 학원 가지마.'라고 결정해주듯이 누군가 나의 고민을 듣고 결정해줬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들 막연하고 자신을 힘들게 한다면 일을 안 하면 좋겠지만 우리는 그럴 수 없습니다. 일을 그만두는 대신,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에 대해 걱정하고, 고민하는 일을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어떠한 일이든 성과를 내야 하고 마무리를 지어야 하는 것처럼 영업사원도 '마감'이라는 시한을 지키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그 시한을 지키는 일들을 걱정하고 고민하는 일이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힘들게 하고, 아프게 하는 것 같습니다.
저도 '마감'을 맞추겠다고 고민하고 걱정하다 보니 정작 더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그 걱정들을 '안 하니', 다른 부분에 신경 쓰게 되고, 즐겁게 일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루중 많은 시간동안 일어나지도 않을 많은 사건들 때문에 고민하고, 걱정하며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런 고민과 걱정을 이제 그만 하세요.
대신 그 시간동안 내 옆에 동료에게, 가족에게, 그리고 나를 생각하는 시간을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더 행복하게 걸을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