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찬우 Jan 25. 2021

내가 여행을 싫어하는 이유

돌아옴의 쓸쓸함보다 못한 떠남의 기쁨

주변에 여행을 싫어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나는 딱히 없다. 그러나 나는 여행을 싫어한다. 해외여행을 가기 위해 차곡차곡 여행 경비를 모으는 사람들을 보면 '저 돈으로 차라리 다른 걸 하는 게 더 생산적이지 않나?'라고 생각하는 편이라는 것이다. 물론 나에게도 몇 번의 여행 경험은 있다. 제주도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여행지이며 순천과 전주, 고성은 여전히 감명 깊은 기억이 남아있는 장소들이다.


하지만 내게 여행이 주는 행복은 그리 크지 못하다. 멋진 풍경을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에 딱히 큰 기쁨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일까? 나는 오히려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체크해야 할 수많은 동선과 준비물, 경비 등을 계산하며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네이버 지도와 휴대전화 메모장을 번갈아 보며 비행기를 타기 전부터 그곳에 질려버린 것이다. 내게 여행은 휴식보다는 본전을 따져봐야 하는 기회비용의 오락일 뿐이었다.


특히 거의 대부분 누군가와 함께해야 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예민하고 독단적인 나는 여행만 가면 동행들에게 시시콜콜한 이유로 짜증을 느끼게 되었다. 못난 이기심 때문이다. 무엇을 먹을지, 어디로 갈지, 왜 내 사진은 못나게 찍어주는지 등을 매번 속으로만 꿍해있다 표정과 분위기에서 티가 나곤 하던 나는 여행만 가면 별 것도 아닌 일들에 쉽게 피로해졌고 괜한 히스테리를 부리며 여행을 최악의 추억으로 만드는 주동자가 되곤 했다. 나는 여행 계획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컨트롤하지 못하게 되면 나빠지는 병에 걸렸다.


계획이 없는 것을 싫어한다는 점도 여행을 싫어하는 이유에 큰 한몫을 했다. 앞서 말한 기회비용의 연장선에 있는 이유일 것이다. 나는 소위 말하는 '호캉스'에 부정적인 사람이다. 수영장과 고급 바가 딸려있기에 숙박비가 비싸고 그러한 이유로 여행의 목적인 '떠남'을 부정한 채 한 곳에 정박하는 이 기이한 구조의 여행은 현실을 잠시 잊고자 호텔로 떠남을 '휴가'라고 여기는 현대인들의 아이러니다. 나는 여기에 큰 의문점을 느낀다. 그렇다면 굳이 제주도로, 여수로, 가평으로 떠나야 할 이유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해외여행은 또 어떤가. 날짜변경선을 넘는다는 것은 돈의 단위 수가 달라짐을 의미했다. 대학 시절, 방학 시즌이 다가오면 캠퍼스에는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교내에서 보내주는 해외 봉사 프로그램과 교환 학생 신청서를 작성하느라 분주한 학생들을 자주 발견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떠나는 배낭여행객의 수도 많았다. 그들은 최소 몇 백 단위의 돈이 소모되는 것에 크게 개의치 않으며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빠, 여행은 지금 안 하면 오히려 손해예요. 이 나이 아니면 언제 또 해외여행 가보겠어요?" 내 생각에 그녀들은 인스타그램에 포스팅할 사진 몇 십장 빼고는 딱히 건진 게 없어 보였는데.


하지만 내가 여행을 싫어하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느끼는 이유모를 헛헛함 때문이었다. 수많은 준비과정을 억지로 참고 참아 여행을 떠나게 되면 나는 여행에 대한 뿌리 깊은 증오감은 잊고 여행지의 정취를 즐기곤 했다. 낮에는 열심히 관광을 다니다 좋은 사람들과 밤늦도록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는 것까지 싫어하긴 힘드니까.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 다가올수록 마음 한 편은 초조해졌고 감정 변화의 폭도 커졌다. 언젠가 그런 우스갯소리를 들은 기억이 난다. 여행이 행복한 이유는 많은 돈을 써서라고. 나 또한 돈을 아껴야 하는 현실로 돌아가는 것에 두려움을 느껴서 그런 것일까.


아니다. 내 이유는 좀 더 원초적인 무언가에 있다. 대다수의 여행 동반자들은 나의 이러한 낙차에 공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과 이곳에 더 남고 싶은 마음이 아슬아슬하게 외줄을 타는 그 어떤 무형의 감정 정도로만 설명하기에는 약 80% 정도 부족한 연옥 같은 괴로움을 느끼며 여행 마지막 날을 맞이한다. 내 뇌 속의 이 감정을 말로, 글로 잘 표현하지 못하는 게 한탄스럽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어쨌든 나는 여행을 싫어한다. 여행은 담배 같은 것이었다. 한 번 경험하게 된다면 자꾸만 생각이 난다. 하지만 조금만 버티면 없어도 괜찮은 삶으로 다시 돌아갈 수도 있다. 그러다 문득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두더지 잡기 게임처럼 솟아난다. 한편으로는 여행을 좋아하고 즐기며 자주 떠나는 사람에게 경외심이 들기도 한다. 대체 여행의 무엇이 저들의 삶을 이리도 생동감 넘치게 만드는 것일까. 무기력한 나는 그 힘을 오롯이 이해하면서도 오늘도 여행을 계획하지 않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다음 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