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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우 Jun 28. 2021

손절의 미학

잘라내도 결국 잃은 것인데

사회생활 6개월 차, 내 투자 현황은 형편없다. '존버'하지 못해 얕은 수익에 만족했고 '손절'하지 못해 큰 손해를 지속하고 있다. '무릎에 사고 어깨에 팔라'는 지극히 당연한 투자 논리는 나와 같은 개미 투자자는 영원히 이해할 수 없는 선문답이며 투자계의 명언인 '매수는 기술, 매도는 예술' 또한 다를 바 없었다. 나는 목젖에서 구매해 발목에서 하염없이 버티는 중이다.



가장 큰 문제는 손절이었다. 나만의 로스 값을 설정해 그보다 더한 값어치를 잃기 전에 약간의 손해를 보더라도 빠져나올 줄 아는 대담한 용기가 내게는 없었다. 그렇게 가능성이 없는 항목에서만 어쩔 수 없는 존버를 이어가는 나는 인간관계에서도 이와 같은 역설을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다. 손절. 손해를 보고 끊어내는 것. 그것은 내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돈도, 인간도 나는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손해 보기가 싫었다.


얼마 전 회사 선배가 점심 식사 자리에서 본인은 자녀들 앞에서 '때문에'보다는 '덕분에'를 더 많이 사용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부정적인 말은 사람을 부정적으로 만든다고. 솔직히 조금 놀랐다. 내가 늘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던 그 차이를 입 밖으로 내뱉는 사람을 처음 만났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그런 기대가 없었던 사람에게 들으니 더욱 새로웠다. 암. 나는 너 '때문에'가 아닌 너 '덕분에' 이런 사람이 되었는 걸.



이 차이는 정말 중요하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두 어절을 혼동해서 사용한다. 대부분은 '때문에'에 더 힘을 싣는다. 좋은 일이 있어도 너 때문에, 나쁜 일이 있어도 너 때문에. 뉘앙스가 완전히 다름에도 통용해서 쓰는 이 놈의 '때문에' 때문에 나는 인간관계에서 종종 기분이 나빠지곤 했다. 내 덕분에 당신에게 이런 좋은 일이 일어난 건데. 당신 덕분에 내게 이런 좋은 일이 일어난 건데.




우리는 주식이나 암호화폐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손절을 이야기한다. 손절했다. 손절할 거야. 손절할 예정이야. 대체 뭐가 우리를 그리 힘들게 만들었는지. 좋은 관계를 유지하던 사람들도 한순간, 아주 사소한 이유로 서로의 관계를 '손해'라고 확언하며 잘라내려 한다. 우리가 쌓아온 유대감이 정말로 손해였을까. 잠시간 씁쓸한 기분을 느끼다가도 나 또한 다를 바 없었다는 생각에 아찔한 좌절감을 느끼게 된다. 나도 그랬으니까. 문득 서로가 그 가치를 얼마나 열심히 재봤는지가 궁금해진다. 손절을 앞두고 있는 나와 당신은, 얼마나 서로를 이해하고 있었을까.


어쩌면 단지 두려워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겉으로는 세상에 재밌는 게 너무나 많기에, 마주쳐야 할 사람이 너무나 많기에 내게 도움이 되지 않는 관계를 주저 없이 잘라낼 수 있다고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건 아닐까. 마음은 썩어 문드러지는데 다들 그렇게 사니까, 나 또한 그러려니 한다고. 그게 무엇이든 간에 '잘라낸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우리 모두가 공감하기에 이런 기만에 속아 넘어가는 건 아닐까? 아니, 속고자 하는 게 아닐까? 관계 안에 한없이 무력해진 사람들. 내면이 심약하기에 오히려 손절이라는 나만의 방패를 미리 세워놓는 사람들. 그만큼 손해란 애써 인정하기 싫을 만큼 감수하기 어려운 것이다.



또 어쩌면 더는 기다릴 수 없다는 조바심이 한 몫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너무나 애정 했기에 당신의 단점이 더는 버티기 힘든 것이다. -20%의 하한가를 찍은 서로의 감정은 10분, 사흘, 한 달 혹은 1년이 지나면 제 가치를 되찾을 수 있음에도 존버 하며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나 괴로워 손절을 택하는 것이다. 그게 언제 돌아올지를 우리는 모르니까. 내 형편없는 투자 현황처럼 마냥의 기다림이 언제나 정답은 아니니까. 약간의 아쉬움을 느끼지만 어쩔 수 없는 패배를 인정하는 것. 그것이 우리를 손절하게 만든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그럼에도 손절을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차선의 방법은 역시나 존버다. 둥글게 살아야 한다는 말은 분하지만 애처로운 정답에 가깝다. 나 또한 현재 아주 막역한 사이의 친구 중 하나가 과거 서로 죽이지 못해 안달 난 사이었던 것을 떠올려보면 특히 그렇다. 우리는 별다른 화해 없이 시간이 지나 아무렇지 않게 다시 가까워졌고 지금은 서로의 든든한 목발이 되어주고 있다. 끝끝내 손절을 택하지 않았기에 생긴 이익이었다.



하지만 가장 좋은 방법은 추매(추가 매수)다. 그 값어치가 언제 돌아올지 모르겠다면, 내 매수 평단가와 너무나 달라진 그대들과의 갭을 줄이기에 더 많은 호감의 감정을 투입하는 것이다. 그만큼 내게 아쉬운 사람이기에 선택할 수 있는 물타기다. 어찌 보면 내 입장에서는 그대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일 수도 있다. 혹은 더 빨리 익절 하기 위한 방법이 되기도 한다. 어쨌든 우리, 관계에서 만큼은 이기적일 만큼 내 이득에 집중할 줄도 알아야 한다. 마냥의 손절을 택하기엔 미래는 시시각각 변한다.


최근 내게도 여러 사건들이 일어났다. 몇 개의 손절을 고민해야 하는 시기가 찾아왔고 특히 애정 했던 한 친구와의 관계는 아직도 손절을 인정하기 싫다. 그래서 메시지를 보냈다. 그/그녀는 에둘러 답변을 회피했지만 마찬가지의 감정이었나 보다. 나는 시간의 힘을 믿어보기로 했다. 그/그녀와의 관계 개선을 위한 물타기용 시드를 준비해야 할 시즌이다. 나는 더 많은 이득을 위해 한 발짝 물러서기로 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잘라낸다는 것은 결국 일어나야만 할 일이다.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 종목을 쳐다보다 내 가치마저 낮아지는 것을 지켜볼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똑같은 파란불이 될 수는 없으니까. 적어도 나는 남들이 "가즈아!"를 외칠 수 있는 인간 폭등주가 되어야 하니까. 하락의 커플링이 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체호프의 총처럼, 도끼를 들었다면 언젠가는 확실하게 휘두를 줄 아는 용기도 가져야 한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그저 '손절'만은 아니었으면 한다. 나는 당신 '덕분에' 많은 추억을 만들었다. 어쨌든 우리는 멀어지겠지만 나는 당신 덕분에 많은 이득을 봤다. 당신이라는 종목을 '익절'했다. 그러니 멀리서나마 당신의 행복을 기원하겠다. 우리 언젠가 반드시 서로의 디커플링을 끊어내는 상호보완의 우량주가 되어 진정한 커플링으로 다시 만나길 고대하겠다. 나는 이것이 손절의 미학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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