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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우 Jul 25. 2021

우리는 결국 만난다

작은 잔 안에는 운명이 가득 들어있다.

요즘은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는다. 알코올 중독이 의심될 정도다. 5년 전 큰 배신을 당한 이후로 오랜만의 일이다. 그때의 나는 매일 소주 두 병과 맥주 피처 하나를 사 와 물을 안주로 무식하게 소맥을 마셔댔다. 또, 걱정하는 친구들의 마음은 이해하나 밤이 되면 휴대전화를 꺼놨다. 그러지 않으면 현실을 잊기 힘겨웠다. 모든 커뮤니티를 끊어내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믿었다.


이번에는 시시콜콜한 배신 따위가 아닌 여러 개의 환경 변화가 나를 어지럽게 했다. 자아실현은 밖에서 하라는 선배의 개똥철학에 보란 듯이 나가 돌았고 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와 실수가 반복됐다. 나는 술만 마시면 악마가 됐다. 빌어먹을 사랑이 가장 큰 문제였다. 조금씩 내 일상에 스며들던 사람들을 오판했다. 사람을 잘 믿지 않는 본래 성격을 바꿔보려 지나치게 사람을 신뢰했나 보다. 내가 싫어했던 사내들의 행동을 똑같이 따라 했다. 그 역학이 역겨웠으나 사랑은 비례하게 늘었다. 하지만 그보다 진한 공허감이 뒤따랐다. 대략 열 개의 소개팅을 걷어찼다. 나를 좋아했다면 왜 소개팅을 했냐는 말이 가장 결정적인 이유였다.


나는 이제 20대 초반 때와 달리 그녀들의 잔악무도한 연기에 무감각해질 수 있었다. 아무렇지 않게 술 한 잔 더 하자는 추파를 던질 수 있었고 굳이 내가 연상이고 남성이라는 이유 때문에 모든 계산서를 지불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알았다. 내 왼손을 도발하듯 톡톡 건드리는 그녀들의 의식적인 플러팅에도 눈을 피하지 않을 수 있었고 한 발 더 나가 그 손바닥을 뒤집어 잡을 줄도 알았다. 무표정한 얼굴로 보고 싶다는 말을 대화창 안에 입력했고 아낌없는 마음이란 실은 총량이 제한되어 있다는 것을 묘파해냈다.


어장관리와 인간관계 그 어딘가를 아슬아슬하게 왕복했다. 어떻게든 본인 마음이 가는 대로, 최대한 이기적으로 행동하라 했던 나의 연애 상담은 정확히 내게 들어맞았다. 그래도 세계는 잘만 돌아갔으니까. 난 적당히 친밀했고 적당히 사랑스러웠다. 내가 전달하는 애정은 수신자의 의사와는 별개로 끊임없이, 자연스럽게 발산되고 있었다. 언젠가 누군가 그랬다. 찬우는 참 장난꾸러기야. 그만 좀 흘리고 다녀. 난 속으로만 말했다. 응, 넌 내 상태를 죽어도 몰라. 그냥 받기만 해.


여기 어른들의 사랑은 세 번이면 결판이 난다던데 나는 세 번이면 모든 게 질려버렸다. 영원이란 말은 애초에 믿지도 않았으나 유의어인 평생이란 말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이걸 어떻게 평생을 해? 결혼이 화두에 오를 때마다 속이 답답했다. 아싸리 빨리할 거 아니면 아예 늦게 하고 싶다고 말했지만 내가 결혼이 가능할까라는 물음표에는 여전히 확신이 서지 않았다. 나, 결혼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할 거 같은데. 연애도 제대로 못하는 데 결혼은 무슨. 또, 걔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나 같은 놈을 만나.




요즘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에 빠져있다. 드라마는 쳐다도 보지 않던 무비 키드인 내가 드라마에 이렇게 푹 빠질 줄이야. 역시 환경이 변하면 사람도 변한다. 나는 그렇게 좋아 죽던 영화를 요새 일절 보지 않는다.


유명한 로코 드라마를 하나씩 정주행 할 때마다 발견할 수 있는 재밌는 점은 내가 마지막 화만을 손꼽아 기다린다는 것이다. 얼른 다른 걸 보고 싶어서가 아니다. 보통 16부작 구성의 미니시리즈 드라마의 마지막 화는 1시간 내내 행복하기 때문이다. 특히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작품일수록 그렇다. 그들은 앞선 15화 동안 지지고 볶은 사랑싸움의 종착지에선 마냥 행복하기만 하다. 저걸 어떻게 회복하지? 하는 순간조차 마지막 화 앞에서는 무력해진다. 시청자들도 이를 용인한다.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 쌓아 올린 불행의 기승전결을 그들도 오롯이 지켜봤으니까. 캐릭터도, 우리도 보상을 받을 때가 됐으니까. 그렇게 나는 마지막 화처럼 마냥 웃고, 기쁘고만 싶다. 드라마가 주는 감동이란 갈등을 딛고 일어서는 서사에서 나온다는 것을 애써 무시하며 말이다.


그렇다. 그들은 결국 만났다. 어떤 식으로든 회복이 불가능해 보였던 갈등도 드라마의 문법 안에선 주인공을 해피엔딩으로 인도했다. 그리고 그것을 사랑이라고 피력했다. 수많은 장애물을 헤쳐 끝끝내 만나고야 말았기 때문에 그들을 천생연분이라고 부르는 걸까. 예전 같았으면 그것은 절대 운명이 아닐 것이라는 근거를 적어도 열일곱 개는 댔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드라마가 끝나고 캐릭터에서 벗어났음에도 열연을 보인 주연 배우들에게 현실의 열애설이 이어지는 이유 또한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눈으로 판단이 안 될 때는 눈으로 판단하지 마세요."


드라마 속 대사 하나가 마음을 찌르르 울렸다. 언젠가 만나게 될 사랑도 결국 당장에는 눈에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일까. 나는 사랑에도 계절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중 으뜸은 한여름의 썸, 가을 초입의 사랑 고백이다. 마음이 쉽게 열리는 시즌에 우리는 사랑을 만들고 어딘가 공허해질 때쯤 짝을 짓는다. 계절의 변화란 눈으로 쉽게 알아차릴 수 없으며 그냥 어느 순간 훅- 우리 곁으로 다가온다.


그렇게

우리는 결국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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