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찬우 Aug 24. 2021

힘내라는 말을 듣고 싶으면 돈 내!

그럼에도 힘내!

직장동료 J양과 술을 마시다 혼쭐이 났다. 그녀가 회사에서 느끼는 스트레스에 정서적 공감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스갯소리로 변장한 내 이성적 대안에 급격히 차가워지는 그녀의 표정이 너무나 낯설어 황급히 사과를 건넸다. 근데 구체적으로 내 말의 어떤 부분이 그녀를 화나게 한 거지?


돌이켜보면 난 항상 그랬다. 내게 공감이란 일회성의 감정이었다. 누군가 기쁠 때, 슬플 때마다 축하해, 힘내 한 마디를 건네고 나면 두 번 다시는 같은 답변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마음속 어딘가를 쿡 찌르는 콘텐츠에는 며칠을 허우적거리면서 나는 지인들에게만큼은 지나치게 냉담했던 것이다. 사실 나는 반복의 필요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한 번의 위로 뒤에 똑같은 푸념을 듣는 상황이 오면 나는 상대에게 더 적절한 충고가 무엇인지를 골똘히 고민한다. 동감은 했으니 이제 문제를 해결해야지, 하는 생각인 것이다.


어떤 점에서는 그들이 참 밉기도 하다. 힘내라고 해봐야 힘내지도 않을 거면서. 힘내란 말은 그 언어적 정의에 비해 너무나 무기력하다. 대개는 나이브하고 무심하게 꽂히는 말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 발화자가 내 힘을 죄다 빼버리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힘내란 말은 맞부딪히는 술잔보다 힘 없이 땅바닥에 떨어진다. 차라리 오늘은 내가 너를 감정 샌드백으로 사용할 테니 그냥 아무 말 없이 두들겨 맞아달라고 부탁하는 게 더 타당한 변명이 아닌가 싶다. 대신 그 값은 받아내야 하니 오늘 술자리는 네가 계산해!


또 어느 한편으로는 그들이 나를 잠시나마 기댈 수 있는 목발이라고 생각함에 감사함을 느낀다. 내 입에서 나온 힘내란 말이 그들을 북돋을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나를 적극 활용하는 그들의 이기심을 사랑한다. 다 카포가 없는 도돌이표를 반복하는 그들의 슬픔에 오늘 하루, 내게 할당된 감정의 일부를 나눠 줄 수 있다는 게 좋다. 나는 요즘 아무렇지 않게 힘내라는 말 뒤에 너를 힘들게 하는 사람의 이름을 말하라고 한다. 네가 지금 나를 두들겨 패고 있으니 나는 그 자식들을 두들겨 패줄게. 이 어이없는 자신감에 당신들은 픽- 웃음을 짓는다. 정말 그래 줄 거야? 당연하지. 내가 흠씬 두들겨 패줄게. 나 특수부대 출신이잖아.


하지만 나는 당신들에게 힘내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다. 애초에 내가 바라는 것은 나와 함께 화를 내는 것이지 위로하는 것이 아니다. 아, 그게 그건가? 어쨌든 중요한 건 나는 이 갈등의 원인과 결과, 해결책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저 내가 지금 이를 풀어내는 방식이 옳은지를 재차 확인하고 싶을 뿐이다. 특히 내가 사랑하는 당신들을 통해서 말이다. 영혼이 연결된 사람들과 함께 내 확신을 또 한 번 검토하는 것. 아마 당신들도 마찬가지를 원한 게 아니었을까? 내가 이렇게나 어리고 어리석다는 걸 늘 한발 늦게 깨닫는다.


그래서 애석하지만 힘내란 말은 소중한 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런 힘도 가지지 못했으나 때로는 건넬 줄 알아야 하는 말이 있다. 내가 정말로 누군가를 패줄 순 없어도, 고작 보내는 게 이런 작고 연약한 위안일지라도 반드시 전달해야 하는 이 있다. 내가 당신을 진심으로 걱정한다는 것을, 언젠가 당신의 그 모든 고민이 말끔히 해소되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것을 소망하는 말은 얼핏 쓸모없어 보이나 확실한 가치가 있는 것이니까. 짠- 하고 부딪힌 잔 밑에 깔린 말들은 액체가 아니니까. 언제든 주워서 쓸 수 있으니까. 우리,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반드시 힘을 내야 하니까. 함께 사랑하고, 살아가려면.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는 결국 만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