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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우 Jul 31. 2022

나쁜 세상을 만드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앞과 뒤를 뒤집어도 똑같은 우영우와 그렇지 않은 우리들

요즘은 어딜 가나 우영우 이야기가 한창이다. SNS 바이럴 광고가 지나치게 많이 보여 그저 그런 졸작 드라마일 줄 알고 건너뛰었더니 웬걸. 회차가 지날수록 더 뜨겁게 회자가 되는 작품이다. 넷플릭스를 켰다.


확실히 재미는 있다. 에피소드 중심의 법정극이 가질 수 있는 임팩트 있는 테마 사이 K드라마 특유의 평이한 플롯 전개와 보편의 감정을 빠르고 적절하게 섞는 방식이 한국인이라면 술술 읽힐 영상 문법이다. 얼핏 문과 버전의 <굿 닥터>가 떠오르긴 하나 독창적인 부분도 있다. 특히 자폐 스펙트럼이라는 어려운 주제를 가지고도 사랑스럽고 무해한(이후 아주 중요하게 다룰 특징이다.) 캐릭터를 잘 구축해낸 박은빈 배우가 빛을 발한다.


하지만 드라마를 보면 볼수록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결국 세상을 나쁘게 만드는 이야기라 느껴진다. 여기에 '자폐'라는 비장애인은 절대 오롯이 이해할 수 없는 장애라는 영역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찝찝한 고민은 장애를 차치한 (어쩌면 깊이 관여한) 이야기의 곁다리, 권모술수 권민우에게서 시작한다.





많은 매체에서 다룬 7화의 한 장면이다. 나는 이 장면을 보고 아주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권민우에 동조하는 감정을 아주 약간이라도 느끼지 않았다면 그건 명백한 거짓말일 테니까. 다만 이 에피소드가 끝나고 해당 역할을 맡았던 배우의 실제 SNS를 찾아가 댓글 테러를 서슴지 않고 한 발 더 나아가 '이대남' 프레임을 씌우며 지긋지긋한 남녀 갈라 치기 / 사이버 쉐도우 복싱을 가감 없이 가하는 (여성 자폐인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작품 외적 사회 현상을 아주 약간 첨가한 오만한 마음과 함께) 네티즌의 반응을 읽으며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이거, 정말 나쁜 드라마구나.


우리는 정확히 우영우의 사랑스러움에만 집중한 것이다. 어느 누구에게도 피해를 끼치지 않으며 어떤 방식으로라도 사회정의를 위해 힘쓰는 우영우를 아무런 위화감 없이 본인과 동일시한 것이다. 물론 그것이 드라마 속 주인공의 존재 이유이긴 하다. 그 모습을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이러한 반응이 특히 이 '시대'에는 더 뜨악하기만 하다. 정작 현실에서 우리와 가장 가까운 인물은 저 비열해 보이는 권민우니까. 우리는 작중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절대 덜하지 않다. 장애인에 대한 뿌리 깊은 차별과 선입견은 여전히 팽배하다.


전장연을 예로 들어보자. 지하철로 출근하지 않는 나는 이 분투와 부가적으로 생겨난 피해를 체감하지 못한다. 그래서 내 바운더리 안에서 전장연의 시위는 합당해 '보인'다. 적어도 나는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으니까.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의식적으로라도 제어하고 완곡어법 또한 조심해야 한다는 걸 체득했을 정도로 사회화된 인간이니까. '당신'의 통행권 보장을 위해 '우리'의 통행권을 일정 부분 제한하는 것은 아주 위험하고 부당한 방식이나 어쨌든 의견을 피력하고 집중시키는 것에 아주 효과적일 테니까. 나라도 그랬을 것 같다.



그러나 내가 복잡한 출근길, 사람들 사이에 파묻힌 상태로 몇 십분 째 지연되는 지하철에서도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절대 그러지 못하리라 장담한다. 여러분들은 그렇지 않은가? 어젯밤, 침대 위에서 아주 편안한 상태로 우영우의 좌충우돌을 지켜보며 장애인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희망찬(적어도 거부하지 않는) 미래에 대한 상상을 하지 않았는가? 그런 선한 마음의 우리가(우영우)가 아침 7-8시만 되면 권민우가 된다. 과연 우리는 우영우를 정말 동등한 인격체로 인지하고 있었나 싶다. 동정한 건 아니고?




하지만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그보다 더 세상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우영우 그 자체 때문이다. 앞서 나는 이 캐릭터가 '무해하다'라고 말했다. 드라마의 특성 때문이겠으나 우영우는 지나치게 착하다. 자폐 캐릭터가 가질 수 있는 장점만 부각한다. 그의 천재성은 두드러지며 어떤 상황에서도 타개점을 찾아낸다. 패소나 생각지 못한 판결을 통해 이를 보완하는 듯싶어도 본질은 다르지 않다. 우영우는 무해하다.


가만히 들어보면 우영우의 시청자들은 이 작품을 '힐링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우영우를 보고 있으면 세상이 마냥 정의대로만 순탄하게 흘러갈 것만 같다. 권선징악은 이 세계 안에서 당연한 것이며 우리의 실제와 거의 근접한 인물인 권민우는 동료지만 가장 큰 적처럼 느껴진다. 이 세계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우영우가 무너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나 견고한 세상은 있어도 무너지지 않아야 할 개인은 없다.



이상하게 요즘 들어 사람들은 다치지 않으려고만 한다. 상처받지 않는 삶은 절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일찍이 체감하지 못해서다. 온실 안의 새싹들이 먹구름을 만나는 시기는 언제나 갑작스럽다. 누구나 다치며 살아간다는 당연한 알고리즘을 거부하며 다시 비닐하우스의 문을 열고자 한다. 우리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은 열심히, 죽지 않을 만큼만 피를 흘리며 내성을 기르는 게 당연하다는 것을 온기 속에서 애써 무시한다.


그래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좋은 드라마가 아니다. 앞서 말한 전장연의 예시 속 장애인과 우영우가 우리에게 '다른' 이유는 간단하다. 지하철 속 기어 다니는 장애인이 내 발목을 잡을 것 같아서다. 나를 끌어내리는 것뿐만 아니라 내게 위협을 가하지 않을까 하는 본능적 두려움 때문이다. 드라마 속 사랑스러운 장애인 변호사는 현실에 없다. 언제 어디서든 나를 습격할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하는 무서운 장애인만이 옆에 있다.



이들은 어딘가 징그럽게 생겼고 말을 어눌하게 하며 사회성이 없으며 지능은 그것보다 더 없는 것 같다. 눈앞이 안 보여 내 마음의 크기를 구체적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말이 없어 노래하지 못하고 귀가 들리지 않아 사랑의 언어를 수신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기괴한 괴물로만 본다. '나는 아니다'라며 비난의 화살을 다시 나와 같은 사람에게 돌려버리는 눈, 귀, 입을 틀어막은 우리들. 우리는 우영우에 이입할 자격이 없다.


상처받는 타인 앞에 상처받지 않아야 할 내가 '먼저' 있다는 것은 그래서 위험한 생각이다. 개인적으로는 핵무기보다 빠르게 사회를 전복시킬 수 있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고 믿는 편이다. 드라마 속 우영우의 대사를 다르게 읽어본다. 고래는 알을 낳을 수 없다. 핵심을 봐야 한다. 상처를 주려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 때문에 내가 겪어야 할 성장의 핵심을 놓친 건 아닐까? 알을 깨는 아픔 뒤에 진짜 '사랑'이 나타난다.




하늘 아래 특별한 사람과 특이한 사람이란 없다는 걸 이제 우리는 안다. 장애가 있는 친구에게 "너 우영우냐?"라고 말하는 철없음과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에게 "쟤도 우영우처럼 될 수 있는 거 아닐까요?"라고 말하는 안일함이 쉽사리 섞이지 말아야 하는 것도 안다. 여기에 장애인이니 '뭐라도 하나 잘해야 된다'는 차별의 세금(지나친 능력 위주의 사회 때문이겠으나)을 당연하게 부가하지 않아야 하는 것도 알았으면 한다.


무해하며 비범한 사람 우영우. 그래서 나쁜 우영우. 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우영우! 작중 초반 장애가 있는 후배 변호사를 꺼려한 정명석에게 본인을 보통의 변호사가 아니라고 스스로 자조하듯 소개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제목과 다르게 가장 '보통의 사람'이어야만 한다. 기러기, 토마토, 스위스, 인도인, 별똥별, 역삼역처럼 특이한 것 같지만 사실 아무런 의미 없이 나열된 단어들과 마찬가지로.



지금까지의 드라마 속 주된 내용 전개는 우영우가 굳이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인물이 아니어도 무관하다는 점은 굳이 짚고 넘어가진 않겠다. 아직 남아 있는 화들이 많으니까. 모쪼록 우영우의 이야기를 좋게만 바라보지 못하는 시청자지만 한바다 속 고래의 해피엔딩을 기대하겠다. 드라마에서라도 그래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싶은 아주 위험한 시혜적 마음을 여전히 거두지 못하는 비장애인으로서의 얕은 진심을 최신화에서 가장 감명 깊게 소비한 대사 두 줄과 함께 남긴다.


"장애가 있으면, 좋아하는 마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내가 사랑이라고 해도 다른 사람이 아니라고 하면 아닌 게 되기도 하니깐요." - 우영우


"다른 사람이 아니라고 해도 내가 사랑이라면 사랑이에요." - 이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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