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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우 Jul 19. 2020

<Come Back to Earth>

현실로 돌아가야 할 시간


귀환



맥 밀러가 타계한 다음 날, 하루 종일 이 곡을 반복 재생하며 속으로 많이 울었다. SNS에는 그의 이른 죽음을 애도하는 추모 행렬이 이어졌고 다음 날, 내가 살던 도시에는 마른 비가 내렸다. 과제를 위해 오랜 시간 동안 학교에 머물러 있던 나는 평소와 달리 말수를 줄이고 조용히 이 곡을 들었다. 인종도 국적도 다르지만 맥의 음악으로 많은 위로를 받았기에, 마치 이 곡을 반복 재생하기만 한다면 안타까운 선택을 한 그가 이 지구로 다시 돌아오기라도 한다는 듯, <Come Back to Earth>를 하염없이 들었다. 그러나 그는 떠났다.


https://www.youtube.com/watch?v=W4ocPPhtglU



이제 좀 쉬게


[Intro]


My regrets look just like text I shouldn't send

(내 후회의 모양은 보내지 말았어야 할 문자처럼 생겼어)


And I get neighbors, they're more like strangers

(가까운 사람들마저 낯설게 느껴져)


We could be friends

(우리라도 친구가 되면 어떨까)


I just need a way out of my head

(복잡한 머리를 쉬게 할 쉼터가 필요해)


I'll do anything for a way out

(그런 곳이 있다면 어떻게 해서든 갈 텐데)


Of my head

(복잡한 머리를 쉬게)



'내 후회의 모양은 보내지 말았어야 할 문자(text)처럼 생겼다'라는 표현은 국적을 넘어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좋은 가사라고 생각한다. 특히, 미디어가 급속도로 발전하는 지금 시대의 사람들에게 말이다. 우리는 이제 'texting' 한다. 사랑을 말할 때도, 이별을 말할 때도 말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문자를 보내는 행위가 아닌 '글자' 그 자체다. 전송뿐만 아니라 쓰고 지우는 그 과정마저도 우리는 '후회'하기 때문이다.


이 후회 때문에 가까운 사람들도 낯설게 보인다. 그래서 화자는 우리라도 친구가 되면 어떻냐는 제안을 건넨다. 여기서 우리는 누굴까? 이 음악을 듣고 있는 청자들? 아니면 곡 속의 화자가 손을 내미는 어떤 사람? 그렇다면 복잡한 머리를 쉬게 할 쉼터는 어딜까? 지구(Earth)? 복잡한 머리를 쉴 수 있는 어딘 가가 있다면 어떻게 해서든 가겠다고 하는 그곳은 지구일까?



당신이 없는 곳


[Verse 1]


In my own way, I feel like living

(가끔 나만 그런지 모르겠는데)


Some alternate reality

(사람들이랑 다른 현실에 살아가는 것 같아)


And I was drowning, but now I'm swimming

(거기서 허우적대다 이제는 헤엄쳐 나올 수 있게 됐어)


Through stressful waters to relief

(날 숨 막히게 하던 물가에서 평안함으로)



가끔 나만 그런 진 모르겠지만 세상 사람들과 내가 다른 현실의 사람인가 싶을 때가 있다. 내가 이 지구라는 별에 불시착한 외계인이 아닌가 싶은 거다. 현실이 내 맘 같지 않고 또 내 삶 같지 않으니 말이다. SF 영화 비평의 관점에서 툭하면 외계인을 '현시대를 풍자하는 메타포'로 집어내는 이유 또한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음모론자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 적어도 한 번쯤은 자기 자신을 외계인으로 의심해 본 적이 있니까.


화자는 이 현실에서 벗어났다. 'drowning'에서 'swimming'으로 말이다. 나를 허우적거리게 만든 세상은 이제 평안함을 준다. 나는 헤엄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등장하는 물의 속성은 앞으로 이어지는 가사들과도 긴밀한 연관성을 가진다. 보통 물은 맑고 깨끗하다. 하지만 동시에 질척거린다.



Oh, the things I'd do

(무슨 짓이라도 할 텐데)


To spend a little time in hell

(지옥이 어떤지 조금 맛볼 수 있다면)


And what I won't tell you

(너한테 하지 않는 말은)


I prolly never even tell myself

(나 스스로에게도 하지 않을 말일 거야)



바로 다음, 화자는 지옥을 조금만 맛볼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하겠다고 한다. 우리는 이와 비슷한 가사를 바로 앞 코러스에서 이미 경험했다. 그렇다면 '복잡한 머리를 쉬게'할 장소는 바로 지옥인 걸까? 지구가 아니라?


'너한테 하지 않는 말은 나 스스로에게도 하지 않을 말일 것이다'는 뭔가 의미심장하다. 그 '말'이 부정적이어야 좀 더 설득력 있게 성립이 되는 문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별, 사별과 같은 '끝맺음'이 그 목적어에 가장 적합해 보인다. 바로 이전의 라인에서 지옥을 맛보고 싶다는 직접적인 언급을 했기 때문에 더그럴듯해 보인다. 아마도 화자의 '우리'는 부정적인 상황에 놓여있나 보다.



And don't you know that sunshine don't feel right

(너도 알잖아 햇볕도 얼마나 낯선지)


When you inside all day

(하루 종일 집 안에만 있다 보면)


I wish it was nice out, but it looked like rain

(날씨가 좋았으면 했는데, 비가 내리는 것 같네)


Grey skies and I'm drifting, not living forever

(흐린 하늘에 내가 떠다니는 느낌, 하루살이처럼)


They told me it only gets better

(근데 왜 다들 괜찮아질 거라는 걸까)



하루 종일 집 안에만 있다 보면, 커튼을 쳐놓고 있으면 특히, 급작스러운 햇볕에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어둠에 익숙한 눈은 햇볕에 적응하는 데 좀 시간이 걸린다. 그래도 햇볕은 사람을 활기차게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커튼을 걷기 전 맑은 날씨를 기대한다. 하지만 아마도 창 밖엔 비가 내리는 것 같다. 내 눈은 햇빛에 적응할 기회조차 없구나.


이전에 말한 물의 속성과 연결되는 마지막 두 라인이다. 비(물)가 내리는 듯한 '회색 세상'에서 나는 단 하루를 살며 떠도는 하루살이 같다. 분명 하늘을 이야기했지만 우리는 이 것이 물의 속성을 내포했음을 잘 안다. 왠지 모르게 우리의 머릿속에는 물 위를 둥둥 떠다니는 소금쟁이의 이미지가 그려지기도 한다. 'drowning'에서 'swimming', 그리고 'drifting'에 이어지기까지 이 물의 속성은 편안함을 주는 동시에 일종의 질척거림을 준다. 그리고 방점을 찍는 마지막 라인이 우리의 마음을 산산조각 낸다. 내가 괜찮지 않은데 왜 다들 괜찮아질 거라고 말하는 걸까? 어쩌면 나는 아직도 허우적거리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돌아와요 지구로



그가 말하는 '지구'는 어딜까. 그가 돌아오라는 '지구'는 또 어딜까. 문득 궁금해진다. 내가 지구로 돌아가고 싶은 것인지 당신이 지구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것인지. 귀환에 앞서 묻고 싶다. 지금 이 글을, 이 곡과 함께 읽고 있는 여러분에게 '지구'는 어떤 곳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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