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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우 Jul 12. 2020

<ASMR>

액체 괴물을 만지다


백색소음



 유튜브를 보다 보면 내 기준에서는 왜 열광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콘텐츠들이 있다. 바로 '먹방'과 'ASMR'이다. 나는 남들이 무엇을, 얼마나 맛있게 먹는지에 대해선 별 관심이 없다. 단순히 음식을 '보고 듣는' 행위만으론 대리만족 하지 못 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괴기스럽다고 느낄 때가 자주 있었기 때문이다. 엄청난 양의 음식을 입으로 쑤셔 넣으며 한껏 맛있다는 표정을 짓는 비디오들을 가만히 보고 있자면 배가 고프다기보단 더부룩하다. 최대한 리얼한 사운드를 전달하겠다며 있는 힘껏 음식을 씹어대는 모습은 또 어떻고. 나에게 먹방은 그저 쩝쩝대는 소리로 가득 찬 소음에 불과하다. 물론 먹방이 '혼술, 혼밥, 혼영'의 시대 분위기와 '소확행, 혜자, 가심비'의 소비문화 풍토에 맞춰 합리적으로 등장한 미디어 콘텐츠라는 의견에는 일견 동의한다.


 ASMR은 더욱 이해가 되지 않는 콘텐츠다. 내 기억에 ASMR이 입소문을 탄 이유는 고질적인 '불면증'을 겪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그들은 졸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나 지저귀는 새소리 따위를 들으며 잠을 청하곤 했는데 이 소음들이 실제로 수면에 꽤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나는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도 아닐뿐더러 무언가에 더 잘 집중하기 위해 '소리'를 찾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기에 ASMR을 소비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마음의 안정을 위해 '귀 파는 소리'를 찾고, 숙면하기 위해 '누군가의 속삭임'을 들어야 하며, 성적 흥분을 위해 '야한 소리'를 내는 영상을 청취한다는 행위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다. 물론 때로는 청각이 그 어떤 감각보다 더 사람을 상상하게, 만족하게 한다는 것에는 동의하나 그것이 하나의 문화적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 아직은 탐탁지 않다.


 먹방과 ASMR, 이 두 가지 콘텐츠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조금 서글프다. 다들 외롭기 때문인 것 같다.


https://www.youtube.com/watch?v=k9PMV3kieJ4




내가 뭘 하고 사는지는 너만 알지


[Verse 1]


너만 알고 있는 내 모습들이 몇 개 있어

사람들은 내가 mic에다

하는 말만 듣고

넌 stage 뒤에 있어

너가 얘기 좀 해주라



화자는 아마도 '연설가' 혹은 '가수'일 것이다. 사람들은 그가 마이크에다 하는 말을 듣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스테이지 뒤에 있는 '너'는 누굴까. 누구길래 '너만 알고 있는 몇 개의 내 모습들'을 나를 대신해서 얘기해주라고 하는 걸까.



내가 그때도 말을 더듬니

아니지 딴 걸 더듬었지



 너만 알고 있는 내 모습 중 하나는 '딴 걸 더듬는 행동'이다. 그가 '마이크에다 하는 말만 듣는 사람들'은 화자가 '말을 더듬는다'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는 딴 걸 더듬는다.


 본 곡을 만든 '오르내림'의 캐릭터 성을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라인에는 재밌는 해석이 더해진다. 오르내림은 현재 대한민국 힙합 씬에 소속된 여타 아티스트들과는 다르게 '동심'을 표방한다. 일반적으로 강인하거나 섹시한 이미지를 어필하는 장르 음악 속에서 그는 '순수한 아이의 시선을 담은 것 같은 음악'을 하고 있다. 필연적으로 그의 팬들도 그의 '하얀 마음'을 지지하는데 본 곡에서는 그 캐릭터를 오롯이 가져와 하나의 힙합적 클리셰와 결합하면서 새로운 쾌감을 만들어낸다.


 사람들은 오르내림이 방송에서 보여준 어리숙한 이미지 때문에 '평소에도 말을 더듬고 다니나?'라고 생각한다. 어딘가 조금 모자라 보이는 언행과 더불어 음악 내적인 행보에서도 그는 '어린아이'와 같은 캐릭터를 가졌기 때문에 때로는 대놓고, 때로는 은근하게 무시를 당해왔다. 하지만 오르내림은 이 라인을 통해 본인에 대한 고정관념을 완곡하게 반박한다. 나는 말을 더듬지 않고 딴 걸 더듬는다. 무엇을? 힙합적 클리셰가 맞다면 당연하게도 이성의 '가슴'이다. 



우린 할 말이 별로 없었는데

말보다 행동은 어렵지

근데 너가 잘 알려줬어요 내게

오늘은 하고 잘래 팔베개

침대가 좁아서 다행이네

내 어깨는 좁지만 I got a fame



 화자가 '딴 걸 더듬는' 이유는 할 말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듬는 '행동'은 '말'보다 어렵다. 이 라인 또한 아티스트의 캐릭터 성을 잘 살린 가사라고 볼 수 있겠다. 만지는 것에 어리숙한 사람. 그런 화자에게 '더듬는 행위'와 같은 '행동'을 잘 가르쳐준 사람은 '너'다.


 화자의 어깨는 좁지만(어린아이 같지만) 부와 명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너'에게 팔베개를 해주는 것에는 무리가 없다. 이 또한 보편적인 힙합의 작법(스웨깅)을 그만의 캐릭터 성과 결부한 재미있는 가사라고 볼 수 있겠다.




ASMR, 액체 괴물


[Verse 2]


내가 될래 너의 ASMR

너의 구독 버튼을 덧셈 뺄셈 하지

조회수는 셀 수가 없지만

눈으로 본 적은 없었어 아마도

그래서 이 노랜 없을 것 같아

Music video가

넌 말해 oh ya



 짧은 훅을 지나 화자는 곡의 정체성을 상기시킨다. 내가 '너'의 ASMR이 되겠다. 어떻게? 후술 하겠지만 화자는 두 가지 방식의 ASMR을 '너'에게 들려준다.


 'ASMR 유튜버'처럼 화자는 너의 구독 버튼을 누르게 하거나 떼게 만든다. 조회수는 셀 수도 없이 많다고 하니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이 ASMR을 청취했나 보다. '눈으로 본 적은 없었다', '그래서 이 음악은 뮤직 비디오가 없다'는 비교적 직설적인 표현을 통해 이 'ASMR'은 청각적 쾌감에 더욱 힘을 싣는다. 가수로써 본인의 음악을 이보다 더 자신감 넘치는 방식으로 비유할 수 있는 방법이 어디 있을까. '너'는 이 ASMR을 들으며 감탄사를 내뱉는다. 이 라인을 통해 '너'의 의미가 확장된다. 이 또한 후술 하겠지만 네가 뱉는 감탄사에는 단순한 감탄(좋은 노래를 들었을 때 나오는)뿐만 아니라 '신음'의 의미도 포함되어있다.



너의 liquid monster

내 두 손에 꽉 쥐었어

어디에도 못 가 넌

귓속말하고 놀죠

너의 liquid monster

내 두 손에 꽉 쥐었어

어디에도 못 가 넌

귓속말하고 놀죠



 청자는 이 'ASMR'의 의미를 당연하게 알고 있다. 음악을 듣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ASMR이기 때문이다. 다음 라인에서 화자가 정의하는 ASMR의 두 번째 의미가 드러난다. 너의 liquid monster(액체 괴물)를 내 두 손에 꽉 쥐면서 또 다른 소리를 만드는 것이다.


 여러분은 액체 괴물을 아는가? 우리는 보통 이것을 '슬라임'이라고 부르는데 하이드로겔 형태의 장난감의 일종이다. 특유의 촉감과 그 속에서 나는 찰그락 거리는 소리가 좋아 주로 성인 여성들에게 인기 있던 '키덜트' 장난감이다. 현재 유행하는 유튜브 속의 ASMR 콘텐츠처럼 이 액체 괴물도 한 때 반짝하고 유행했던 유튜브 콘텐츠 중 하나였다. 액체 괴물을 만지작 거릴 때 생기는 소리를 녹음한 ASMR도 무궁무진하다. 곡 속의 화자는 그런 액체 괴물로 '너'의 가슴을 묘사했다.


 이 표현은 참신한 동시에 일종의 '불쾌한 골짜기'를 만들어낸다. 일견 액체 괴물을 가지고 노는 어린아이의 이미지인 것 같으면서도 그 속엔 끊임없이 '성적인 의도'를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화자이자 아티스트인 오르내림은 본인만의 캐릭터를 십분 활용하면서도 일반적인 힙합의 작법을 거부하지 않은 가사를 통해 독특한 감상을 자아낸다. 동시에 청각에만 머무르던 ASMR의 명사적 의미에 '액체 괴물'이라는 '촉각' 위주의 오브제를 삽입하면서 좀 더 입체적인 표현을 만들어냈다.


 화자가 가슴을 꽉 움켜쥐고 있기 때문에 '너'는 어디에도 못 간다. 그런 '너'에게 화자는 팔베개를 해주면서 귓속말을 건넨다. 일반적인 연인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가? 실제로 연인의 가슴을 만지기에 '팔베개'만큼 편안한 자세는 없다. 가슴을 만지고 나면? 어느 쪽이든 신음이 흘러나온다.




야한 말


[Hook & Outro]


바로 옆에서 말할게 ASMR

너 자기 전에 꼽는 earphone을 내놔

내가 될래 너의 ASMR

내가 될래 너의 ASMR


내가 될래 너의 ASMR
너가 자기 전에 꼽는
Earphone을 이리로 내놔
Earphone을 이리로 내놔
내가 될래 너의 ASMR
너가 자기 전에 꼽는
Earphone을 이리로 내놔
Earphone을 이리로 내놔


자기 전에 꼽는 earphone을 내놔
자기 전에 꼽는 earphone을 내놔
내가 될래 너의 ASMR



 아티스트로써 본인의 음악을 '듣기 좋은 음악'이라고 어필하는 데 있어 ASMR의 요소를 차용하기도 했지만 본 곡인 <ASMR>의 주요 테마는 결국 '베드룸 팝(Bedroom Pop)'이다. 섹스 송인 것이다. 가슴을 만지며 귀에 대고 야한 말을 하고 너의 신음 소리를 듣겠다는 것을 ASMR에 비유한 것이다. 유튜브를 등지로 야한 소설을 읽어주거나 신음소리를 내는 ASMR이 요 근래 뜨거운 인기를 얻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참으로 오묘한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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