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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우 May 29. 2020

<삐삐>

자발적 거리두기


무례함에 맞서는 법



현생을 살다 보면 가끔 그런 사람들을 만나곤 한다. 친절을 가장한 무례를 건네는 사람들. 대개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그랬다. 내가 살아보니 그래. 이 한 마디로 그들은 이기적인 만족감을 얻는다. 내가 또 한 명의 인생 후배를 구제했구나 하는 그런 이기적임.


나는 이런 이기적임을 곧이곧대로 수용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언제나 '싸가지'없는 사람이었고, 웃어른을 공경하지 않고 공격하는 사람이었다. 너는 대체 애가 왜 그러니. 제발 좀 신경 끄세요. 내가 그런 사람인 걸요. 나는 언제나 무례를 맞서는 방법으로 더한 무례함을 택했다.


아이유는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의 팝스타다. 사실 '팝스타'라는 단어가 오히려 그녀의 가능성과 가치를 평가 절하할까 싶어 쓸까 말까 고민될 정도로 위대한 엔터테이너다. 남녀노소, 대중과 평단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그녀를 싫어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하지만 그녀에게도 불분명하지만 분명한 안티 팬들이 존재한다. 꽤 여러 사건을 통해 그녀의 이름이 오르락내리락했고 한바탕 시원하게 고소의 폭풍이 몰아쳤다. 하지만 그녀는 이 또한 하나의 예술로 재창작했다. 그렇게 익명성의 가면 뒤에 숨은 사람들과 대적하기 위해 '삐삐'가 탄생했다.


가사를 뜯어보기 전 우리 스스로를 한 번 돌이켜보자. 과연 우리는 타인과 나의 사회적 책임을 두고 비교했을 때 유독 본인 스스로에게만 관대하진 않았는지 말이다. 우리는 정말 무례함을 맞서기 위해 무례를 꺼내들었는가. 가끔은 그저 혐오뿐인 무례함이 방향성을 잃고 애꿎은 사람들을 찔러댄 건 아니었을까.


https://www.youtube.com/watch?v=nM0xDI5R50E



그들의 걱정


[Verse 1]


Hi there 인사해 호들갑 없이
시작해요 서론 없이
스킨십은 사양할게요 back off back off
이대로 좋아요 balance balance



인사로 시작한다. 'there'이라는 불분명한 위치의 대상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호들갑 떨지 않고 서론 없이 바론 본론으로 들어간다. 스킨십은 싫으니 뒤로 물러나길 바란다. 지금 이 정도의 균형있는 거리가 좋다.


'삐삐'는 곡을 시작하는 첫 포문부터 경고의 의미를 담는다. 이것저것 헛소리할 일 없이 바로 본론을 말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나, 터치하는 거 싫으니까. 이 선을 넘지 말라고.



It's me 나예요 다를 거 없이
요즘엔 뭔가요 내 Gossip
탐색하는 불빛 scanner scanner
오늘은 몇 점인가요? jealous jealous



앞서 첫 번째 벌스에서 'Hi, there'이라고 상대방들을 칭한 것과 대조되는 라인이다. 이게 나다. 당신들의 눈에 보이는 것과 다를 거하나 없이 이 자체로 나다. there로 지칭 된 불특정 다수는 오늘도 내 가십거리를 찾기 위해 번쩍번쩍 불빛을 낸다. 이를 스캐너로 비유한 점이 재밌다. 알다시피 스캐너는 스캔을 통해 복사물을 만들어낸다. 팝스타인 아이유를 깎아내리려 탐색하는 동시에 그녀의 라이프 스타일을 카피하는 사람들을 스캐너로 묘사하다니. 아이유가 아니고서야 누가 감히 이런 가사를 쓸 수 있을까.


오늘은 몇 점이냐고 묻는 질문에는 '비꼼'이 있다. 일종의 카메라 플래시처럼 나를 탐색하는 불빛들 사이에서 그녀는 불특정한 there들의 질투(jealous)를 읽는다.



쟤는 대체 왜 저런 옷을 좋아한담?
기분을 알 수 없는 저 표정은 뭐람?
태가 달라진 건 아마 스트레스 때문인가?
걱정이야 쟤도 참



재밌게도 다음 가사에는 there들의 걱정이 따라 붙는다. "쟤는 왜 저런 옷을 입는데?", "저 표정은 뭐야?", "살 좀 찐거 같지 않아?" 아무렇지 않게 상대방을 품평하는 그들의 가치판단은 "쟤도 참 걱정이야"라는 거짓말로 증폭한다. 아티스트를 망치는 말들이 '걱정'으로 둔갑한다. 은근슬쩍 그녀를 질투하는 행동은 어쩌면 화자가, 아이유가 겪었던 실화에서 바탕한 이야기는 아닐까?


이 말도 안되는 '변명' 때문에 화자의 거리두기는 당위성을 얻는다. 차라리 내가 싫으면 싫다. 합당한 근거와 이유를 댄다면 모르겠지만 그녀를 향한 악담은 대부분의 there들과 마찬가지로 불분명하다. '걱정해서 한 말'이면 안티 팬에서 팬으로 변장이 가능한 이 익명성의 세상에서 그녀는 과연 어떤 선택을 내릴까?




인생은 실전이야


[Hook]


Yellow C A R D
이 선 넘으면 침범이야 beep
매너는 여기까지 it's ma ma ma mine
Please keep the la la la line



그녀의 선택은 '옐로우 카드'다. 보통 스포츠 경기에서 '경고'를 의미한다. 이 옐로우 카드가 누적되면 레드 카드를 받게되며 이는 '퇴장'을 의미한다.


곡의 제목이 '삐삐'인 이유가 여기서 드러난다. 알다시피 '삐삐'는 말괄량이 삐삐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으로 보여진다. 이전부터 동화의 메타포를 즐겨 차용한 아이유의 정체성을 잘 보여주는 네이밍이다. 삐삐는 매력있고 주체적인 캐릭터다. 더불어 삐삐와 발음이 유사한 beep-beep을 의도했다. 내 영역으로 침범하지 못하게 경적을 울리는 소리를 통해 일정한 거리를 둘것을 '경고'하는 것이다.


여기 한 가지 의미를 더 추가할 수 있겠다. 바로 과거 386세대의 이동 통신 수단이었던 '삐삐'다. 무선호출기인 삐삐의 특성은 '일방적'이라는 것이다. 그녀는 이러한 메타포를 통해 아무리 말해줘도 이해하지 못하는 there들에게 일종의 벽을 느낀 것은 아닐까? 대화는 양방향이어야 하는데. 대화가 통하지 않으니 그녀는 경고하는 것이다. 이 선을 넘으면, 내 매너도 한계를 보일거야. 그러니까 선을 지켜.



Hello stu P I D
그 선 넘으면 정색이야 beep
Stop it 거리 유지해 cause we don't know know know know
Comma we don't owe owe owe owe

(Anything)



그녀는 앞선 'Yellow C A R D'와 라임을 맞추기 위해 쓴게 명백한 'stu P I D'에서 또 다른 워드플레이를 숨겨놓았다. 아이유가 본격적으로 힙합을 다루진 않았지만 '삐삐'가 많은 힙합 리스너들에게 사랑을 받은 이유는 이러한 워딩 때문이다. 'stupid'는 멍청하다는 뜻이지만 이를 P I D로 구분지으면서 발음을 놓치지 않은 채 의미를 확장했다. 그녀는 단어 하나를 가지고 'stupid한 ID'를 디스한다. 그러니 그녀는 익명성이라는 인터넷 공간에 숨은 ID들에게도 경고를 전하는 것이다.


그녀와 거리를 유지해야 할 이유는 단순하다. 우리는 모르는 사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실생활에서 모르는 사람들에게 괜한 트집을 잡지 않는다. 우리는 모르기 때문에 서로에게 빚진게 없다. 그래서 그녀는 쉼표를 찍고 한 번 더 설득한다. 어쨌든 우리는 빚을 진 사이가 아니니까. 거리를 좀 유지해.




어쩌라고



[Verse 2]


I don't care 당신의 비밀이 뭔지
저마다의 사정 역시
정중히 사양할게요 not my business
이대로 좋아요 talk talkless



두 번째 벌스 또한 첫 번째 벌스와 똑같은 구성으로 시작한다. 다른 점이라면 그녀는 첫 벌스에서 본인의 영역이 '침범'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면 두 번째 벌스에서는 반대로 상대방의 영역을 '침범'하길 원치 않음을 표방한다.


그러니 그녀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당신의 비밀이 뭔지, 당신의 사정이 뭔지 모르겠으나 그에 관한 모든 이야기들을 정중히 사양하겠다. 각자의 에피소드가 있겠지만, 어쨌든 내 일은 아니니까. 나는 이대로가 좋다. talk talkless.


'talk talkless'에 대한 해석이 모호하다. 의도한 부분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아이유는 확실히 작사적 천재임에는 틀림없다. 일반적으로 '말하다'의 의미를 가진 'talk'과 '말이 없다'는 의미를 가진 'talkless'를 나열하면서 그저 당신과 이야기 하고 싶지 않다는 의미적 뉘앙스를 만드는 동시에 '말이 없는 이야기'라는 명사적 의미를 생각하게끔 한다. '이대로 좋다'는 가사가 선행하면서 전자가 '할 말이 없는 지금이 좋다'로 해석된다면 후자는 '당신의 비밀과 저마다의 사정'을 일종의 말이 없는 이야기로 치부한다는 점에서 이전에 보여준 '경고'의 이미지가 왠지 모르게 구체적으로 연상된다.


변명은 됐구요. 나머지는 법적으로 해결하세요. 라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Still me 또예요 놀랄 거 없이

I'm sure you're gonna say "my gosh"
바빠지는 눈빛 checki cheking
매일 틀린 그림 찾기 hash tagging



이 가사 또한 첫 번째 벌스와 동일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앞서 그녀는 'It's me'라고 본인의 존재감을 과감없이 드러냈다면 지금은 'Still me'라고 말하며 여전히 본인에 대한 주체성을 강조한다. 화자이자 아티스트로써 아이유는 익명의 there들의 공작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살아돌아왔다.


또 나야. 놀랄 거 없어. 아마도 너는 "이럴 수가"라고 말했겠지? 그녀를 훑던 스캐너 같은 눈빛들이 다시 바쁘게 그녀를 체킹하기 시작한다. 화장이 어떻니, 옷이 어떻니, 어떤 말을 했는지 등등 오늘도 한 명의 엔터테이너로써 몇 점인지를 평가하는 그들은 그녀의 '다름'이 아닌 '틀림'을 찾기 위해 오늘도 해시태그를 단다.



꼿꼿하게 걷다가 삐끗 넘어질라
다들 수군대는 걸 자긴 아나 몰라
요새 말이 많은 걔랑 어울린다나?
문제야 쟤도 참



이 가사 또한 첫 번째 벌스의 마지막과 동일하게 there들의 말을 빌린다. 다른 점이라면 이전에는 '걱정'을 전했던 그들이 지금은 '문제'를 말한다. 너, 너 그거 문제야. 알고있어? 그들은 이제 숨기지 않고 혐오를 방출하는 중이다. "꼿꼿하게 걷다가 삐끗 넘어질라"는 걱정이 아닌 바람이 되었고 "다들 수군대는 걸 자긴 아나 몰라"는 정작 수군대는 본인들을 애써 무시하는 화자에 대한 열등감이 되었으며 "요새 말이 많은 걔랑 어울린다나?"는 그녀가 아닌 타인을 통해 그녀의 이미지를 선별적으로 소모하는 이기심이 되었다.




모르면 외우세요


[Outro]


편하게 하지 뭐
어 거기 너 내 말 알아 들어? 어?
I don't believe it


에이 아직 모를 걸
내 말 틀려? 또 나만 나뻐? 어?
I don't believe it


깜빡이 켜 교양이 없어 너 knock knock knock
Enough 더 상대 안 해 block block block block block
잘 모르겠으면 이젠 좀 외워 babe
Repeat repeat
참 쉽지 right



그녀는 이제 there들을 향해 편하게 이야기 하겠다고 말한다. 불특정의 대상들을 여전히 특정짓진 않았지만 어느정도 명확한 구분선이 있는 '거기'쯤은 되었다. 어이 거기 너, 지금까지 내가 한 말 알아듣니? 음, 이렇게 까지 말했는데도 아직 모르는 거 같은데. 내 말이 틀렸어? 이런 말을 하는 또 나만 나쁜거니? 어떤 대답이 돌아왔을까. I don't believe it. 누가 누구에게 하는 말일까.


깜빡이를 켤 줄 모르고, 노크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면 이제 더는 상대해주지 않겠다. 당신은 이제부터 차단이다. 사람 사이의 매너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면 적어도 외우기라도 해라. 선을 지키기, 선을 지키기!! 반복 또 반복. 쉽지? 모르면 외우라고, 공부하라고 외쳐대던 어떤 집단이 불현듯 떠오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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