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관조인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찬우 Jul 24. 2020

떡볶이에 환장하는 사람들

떡볶이는 어떻게 그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는가

엄마는 저녁 6시 이후로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 사람이다. 살이 찌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엄마는 그 이전의 시간대에도 밥에는 그리 큰 관심이 없어 보인다. 하루 한 끼 이상을 먹긴 하나 싶을 정도로 말이다. 그러니 못난 아들의 입장에서 변명하자면 나는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는 모른다.


하지만 엄마가 가장 즐겨먹는 음식이 무엇인지는 안다. 바로 '떡볶이'다. 내가 더듬더듬 기억하는 유년시절부터 엄마는 떡볶이를 좋아했다. 스읍! 하- 하며 누가 봐도 아주 위험해 보이는 빨간색 떡을 서슴없이 집어먹던 젊은 엄마가 떠오른다. 엄마를 따라 호기심에 몇 조각을 입에 넣던 나는 부리나케 순대로 그 맛을 중화하곤 했다. 지금으로 치면 캡사이신을 세 바퀴는 두른 떡볶이였다. 구체적으로 어떤 상호의 가게에서 엄마가 떡볶이를 사 오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항상 '범일동 매떡'이라고 했으니 부산 범일동 어딘가에 있는 가게일 것이다.


부산광역시, 원조 범일동 매떡


신기한 것은 내 대부분의 여자 친구들도 떡볶이를 좋아했다는 것이다. 아니 '환장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그녀들은 '신전 떡볶이'와 '엽기 떡볶이'에 환장했고, 매번 저녁 메뉴를 고르기 힘들어 고민하던 내게 종종 떡볶이를 먹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그 제안은 대부분 묵살됐다. 내 기준에서 떡볶이는 전혀 맛있는 음식이 아닐뿐더러 가장 중요한 것은 '밥'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양껏 먹은 떡볶이가 주는 포만감에는 도저히 익숙해지지 못했다. 매번 더부룩한 배를 부여잡고 "다시는 너랑 떡볶이 안 먹어"라고 주절거렸으니 말이다.




여자들은 떡볶이를 좋아한다. 과장을 조금 보태 대한민국의 모든 여자들은 떡볶이를 좋아한다. 물론 남자들도 떡볶이를 좋아한다. 하지만 두 성별이 느끼는 이 '親 떡볶이' 개념은 때로는 미묘하게, 때로는 극명하게 다르다. '주식으로 먹을 수 있는가'에 대한 정의가 서로 다른 게 가장 큰 원인이 아닐까 싶다.


인스티즈, 왜 여자들은 떡볶이를 좋아할까


이에 대한 구체적인 통계 자료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내 경험적 근거로만 보면 여성들은 일반적으로 떡볶이를 밥 대신으로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눈치다. 반면에 남성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러니까 남성들의 경우 "아, 배고프다"가 "오늘 떡볶이 먹을래?"로 연결되지 않았지만, 여성들의 경우엔 그 도식이 충분히 성립 가능했다는 것이다. 과학적인 이유는 모르겠으나 대체로 남성들은 떡볶이를 '밥'의 범주안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굳이 따지자면 떡볶이는 간식 정도일 뿐이고 잘 쳐줘봐야 술안주 정도로만 소비됐다.


둘째로 '떡볶이는 맛있는 음식인가?'에 대한 논의가 깊게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 때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이 "떡볶이는 맛없는 음식이다!"라고 발언해서 소소한 논란이 일었던 적이 있다. 그는 떡볶이가 '관능적으로 맛있는 음식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세뇌한 맛있는 음식'이라고 평가했다. 나는 그 의견에 일정 부분 동의를 했으나 네티즌은 뒤집어졌다. "내가 떡볶이가 맛있다는 데 네가 왜 지랄이세요?"가 그들의 주요 반응이었다.


tvN, <수요미식회>


그러나 나는 황교익과 마찬가지로 떡볶이가 맛없는 음식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내 입맛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맵고 짜고 달며 쫀득쫀득한 식감까지 가진 떡볶이를 왜 싫어하냐고? 나도 모른다. 나는 떡볶이를 네 개 정도 집어먹고 나면 더는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반면 나는 돈가스와 제육볶음, 돼지국밥에 환장한다. 많은 남성들이 나와 비슷하리라 생각한다. 우리는 굳이 같은 돈을 주고 먹는다면 떡볶이가 아닌 이들을 택할 것이다. 매일 점심, 각각의 가게에서 보이는 풍경이 그를 증명하리라 믿는다. 심지어 현시대의 떡볶이는 앞서 말한 돈가스와 제육볶음, 돼지국밥과 비교하면 훨씬 비싼 메뉴이기도 하다.


유튜브


셋째로 성별마다 떡볶이를 소비하는 태도의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펜실베니아 주 출신의 연구자들은 성별과 사회적 기대가 매운 음식을 선호하는 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니까 여성들은 매운맛 자체의 '감각'을 즐기는데 비해 남성들은 매운 음식을 하나의 '도전 과제'라고 여긴다는 것이다.


당장 앞서 예로 들었던 우리 엄마만 해도 그렇다. 한 번은 장난 삼아 "엄마는 떡볶이를 왜 그렇게 좋아해?"라고 물은 적이 있다. 엄마의 대답은 간단명료했고 나는 단박에 이해했다. "너네들 남자는 섹스로 스트레스 풀잖아. 우리 여자들은 떡볶이로 스트레스 풀어."


또한 감각 그 자체로 떡볶이를 소비하기 때문에 대체로 여성들은 매운맛에 호기를 부리지 않는 듯해 보였다. 그녀들은 본인의 입맛에 맞는 매운맛의 강도를 정확하게 알았고 사이드 메뉴로 주먹밥과 튀김을 선택할 뿐 매운맛 자체에서 새로운 경험을 시도하진 않았다. 물론 내 경우에 대개의 여성들은 매운 음식을 매우 즐겼기 때문에 어느 가게를 가든 주저 없이 가장 매운맛을 주문했다. 나는 어떻게든 매운맛을 이겨내려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열심히 떡과 어묵을 집어먹었지만 곧장 얼굴이 새빨개진데 반해 그녀들은 미동 하나 없이 떡볶이를 흡입했다.


음양오행의 관점에서도 떡볶이는 여성들이 필연적으로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음식으로 보인다. 신체 발달의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양기(陽氣)의 성장이 빠른 젊은 여성들은 청소년기를 지나 내적 성숙을 이끄는 음기(陰氣)의 성장을 완성시키는 단계에서 음기 중의 음기인 금기(金氣)를 매우 필요로 한다.


여성으로서 완성되는 단계를 위해선 이 금기가 본능적으로 요구된다. 이러한 이치에서 쌀로 빚은 금기가 강한 떡을 매콤한 고추장에 버무려 만든 떡볶이라는 음식은 알게 모르게 여성들의 금기를 보강하는 보양식으로써 불가항력의 매력을 가진 음식일지도 모른다. 여성으로서 완벽한 아름다움을 갖추기 위해 떡볶이는 선택이 아닌 필수인 것이다. '떡볶이를 좋아하는 사람은 예쁘다'는 말이 어쩌면 그저 우스갯소리가 아닐 수도 있겠다.


익스트림무비, 떡볶이를 좋아하는 사람 중 99.7%는 예쁘다




그렇게 공복과 스트레스를 해소할 겸 자극적인 감각을 찾을 겸 아름다워지고픈 여성들에게 떡볶이는 가장 완벽한 음식이 되었다. 2019년 20대 여성들에게 큰 인기를 끈 베스트셀러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가 책의 내용과는 별개로 제목 하나로 구매 욕구를 자극했다는 점을 미루어 보면 떡볶이는 여성들에게 그 존재 자체로 조건 반사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는 음식으로 보인다. 엄마의 '매떡'을 어설프게 따라먹던 아이는 스물일곱이 되고서도 떡볶이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지만 오늘만큼은 여자 친구를 따라 매콤한 떡볶이를 먹어볼까 싶다. 물론 딱 네 점 이후의 나는 고소한 새우튀김만을 고집하고 있겠지만 말이다.


백세희,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매거진의 이전글 그저 바라만 보는 사람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