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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우 Jul 30. 2020

우울에 체념하는 사람들

감정이 무기가 될 때

'우울'은 단어 그 자체 만으로도 우울한 분위기를 연상케 한다. 우물우물 육성으로 발음해보면 더욱 그렇다. 우울, 우울, 우울. 끊임없이 젖게 되는 무기력한 감정을 어떤 한정적인 공간 안에 가둬두는 어감이라 나는 때때로 우울은 우물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한 번 빠지게 되면 헤어 나올 수 없는 잔인한 감정의 구렁텅이.




우울이 가장 치명적인 상황은 인간관계에 개입될 때다. 살다 보면 이따금씩 우울하다고 토로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본의 아니게, 또 다분히 의도적으로 같은 공간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슬픔을 전이한다. 이 상황이 심각해지면 사람을 대하는 데 있어 과하게 소모적인 사람이 되기도 한다. 우리가 흔히 '감정 쓰레기통'이라고 부르는 일방적인 분풀이 대상이 된 상대방들은 서서히 지쳐가고 이 관계는 어느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않는 치킨 게임으로 돌입한다. 실제로 우울증을 앓거나 자주 우울을 어필하는 사람들에게서 주변인들이 멀어지는 이유는 그들의 슬픔에 대한 동정과는 별개로 그들이 가진 특유의 암울한 분위기가 내 존엄성을 훼손하기 때문에 시작한다. 슬프지만 우울은 때때로 나보다 남을 더욱 파괴시키는 잔인한 무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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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긴대학


우울증은 어떤 사람이 걸릴까? 일단 우리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입에 담는 "나 우울해"는 대체로 우울증이 아닐 확률이 높다. 이는 대부분 연애의 실패, 학업 부진, 금전 부족, 상실 등에서 기인한 일시적인 낙담이다. 반면 우울증은 역사가 깊은 병이며 반드시 치유가 필요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의사의 치료와 약물 처방이 절실하다. 자연 치유의 가능성은 희박하다.


미국 정신의학회의 진단 기준에 따르면 다음의 9가지 증상 중 5가지 이상의 동일한 증상이 2주일 이상 나타나야 우울증을 의심해볼 수 있다. 이 또한 범위 내에 해당한다고 해서 우울증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으며 가장 정확도가 높은 방법은 숙련된 정신과 의사나 상담사와의 면담을 통한 임상적 진단이다.


1. 하루의 대부분, 그리고 거의 매일 지속되는 우울한 기분이 주관적인 보고(슬프거나 공허하다고 느낀다)나 객관적인 관찰(울 것처럼 보인다)에서 드러난다.

2. 모든 또는 거의 모든 일상 활동에 대한 흥미나 즐거움이 하루의 대부분 또는 거의 매일같이 뚜렷하게 저하되어 있을 경우(주관적인 설명이나 타인에 의한 관찰에서 드러난다)

3. 체중 조절을 하고 있지 않은 상태(예: 1개월 동안 체중 5% 이상의 변화)에서 의미 있는 체중 감소나 체중 증가, 거의 매일 나타나는 식욕 감소나 증가가 있을 때

4. 거의 매일 나타나는 불면이나 과다 수면

5. 거의 매일 나타나는 정신 운동성 초조나 지체(주관적인 좌불안석 또는 처진 느낌이 타인에 의해서도 관찰 가능하다)

6. 거의 매일의 피로나 활력 상실

7. 거의 매일 무가치감 또는 과도하거나 부적절한 죄책감을 느낌(망상적일 수도 있는, 단순히 병이 있다는데 대한 자책이나 죄책감이 아님)

8. 거의 매일 나타나는 사고력이나 집중력의 감소, 또는 우유부단함(주관적인 호소나 관찰에서)

9. 반복되는 죽음에 대한 생각(단지 죽음에 대한 두려움뿐만 아니라), 특정한 계획 없이 반복되는 자살 생각 또는 자살 기도나 자살 수행에 대한 특정 계획  




가시적인 우울증의 증상이 보이지 않더라도 현시대의 사람들은 누구나 일정 수준의 우울감을 가지고 살아간다. 이는 어쩔 수 없는 부분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대부분의 이유는 아마도 사람과 사람 간의 연결 문제 때문일 것이다. 앞서 '그저 바라만 보는 사람들'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쿨해지기 힘들어 사회연결망을 조금씩 포기하고 있다. 누군가의 환희가 나의 슬픔과 질투를 더욱 적나라하게 대비하는 것을 원천 차단하는 '디지털 디톡스' 현상이 이를 방증한다. 반대로 우울을 전시하는 현상도 존재한다. 저열한 단어이지만 소셜 미디어를 등지로 우울을 일종의 콘텐츠로 소비하는 '패션 우울증'이 대표적인 예다.


예지그림, <패션 우울증>


하지만 이 '어쩔 수 없는 부분들'이 극단적으로 치닫게 되면 병리학적 우울증이 되기도 한다. 요즘 들어서는 그중 두 가지가 특히 주목을 받는다. 바로 '조울증'과 '공황장애'다.


조울증은 우리가 흔히 '기분이 왔다 갔다 하는 병'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표현이다. 기본적으로 조울증은 2주 간격으로 조증 삽화의 시기와 우울증 삽화의 시기가 번갈아 일어난다. 조증에는 'euphoric mania'라는 쾌감형 조증도 분명 존재하나 조증이라고 해서 무조건 기분이 좋은 것은 아니며 오히려 'irritable mania'라고 하는 예민 증상이 더 자주 일어난다. 이 때는 오히려 우울증보다 더욱 불안정한 상태다. 그러니 때로는 이미 감정적 소모가 끝난 상황에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우울의 시기가 찾아오기 때문에 감정의 진폭이 평범한 우울증에 비해 더욱 클 가능성이 있다.


헬스조선


공황장애는 일반적인 우울증과 달리 비교적 즉각적인 신체 반응을 보인다. 병의 역사가 짧기 때문에 정확한 발병 원인은 아직도 연구 중에 있으나 주요 특징은 불안장애와 유사하다. 하지만 공황장애가 더욱 무서운 이유는 사소한 행동 조차 트리거가 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공황장애는 예기치 않은 불특정한 상황에서 발병하는 경우가 흔하다. 운전을 할 때만 유독 공황발작 증상이 나타나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때의 운전자는 언제 어디서든 타인을 망가트리는 도로 위의 폭탄이 될 수 있다. 누군가의 감정은 물론 신체까지도 망가트릴 수 있는 재해가 되는 것이다.


SBS, <미운우리새끼>




나는 살면서 딱 두 번 정신과 상담을 받았다. 한 번은 19살 때였고 다른 한 번은 22살 때였다. 처음 나타난 증상은 18살 때였다. 이유모를 불안함과 우울함을 1년 내도록 느꼈고 그때는 그저 학업 스트레스가 그 원인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하지만 성적이 상승해도 차도가 없다는 것을 깨닫자 정신과를 찾았고 극도로 우울한 상태임을 진단받았다. 같이 정신과를 찾아간 엄마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돌아온 집에서 겪은 아빠의 반응은 명확하게 기억한다. "네가 무슨 우울증이야. 그거 사회 부적응자들이나 걸리는 거야."


그 이후로 나는 내 우울을 숨기기 시작했다. 아빠의 말에 따르면 우울증은 '사회 부적응자'가 되는 지름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숨겨지지 않았다. 가장 가까운 친구들이 그 변화를 가장 먼저 알아챘고 나를 건너 건너 알던 친구들은 그런 나를 두고 수군댔다는 것을 전해 들었다.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피하고자 야간 자율학습을 빼고 독서실을 다녔다. 내 고등학교 3학년은 학업과 싸우는 일보다 내 우울과 싸우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명확한 치료를 거치지 못하고 대학에 입학했다. 그렇게 우울은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것처럼 보였다.


두 번째 우울은 군 복무를 하던 22살에 예고 없이 찾아왔다. 내외적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었던 시기였고 진지하게 하루에도 십 수 번씩 자살을 생각했다. 막상 실천할 용기는 없었지만. 때마침 상병 신체검사를 받아야 했던 즈음이었기에 정신과 상담을 추가로 요청했다. 방에 들어선 군의관은 무표정하고 귀찮다는 얼굴로 뭐 때문에 힘드냐고 물었고 나는 모르겠다고 답했다. 그러자 군의관은 또다시 무표정하고 귀찮다는 투로 그럼 내가 어떻게 아냐고 답했고 나는 그 자리에서 이유모를 눈물이 났다. 두서없는 푸념 몇 개를 터덜터덜 내려놨고 가만히 듣고만 있던 군의관은 수면제를 처방했다. 나는 그날 밤 생전 처음으로 수면제를 먹고 잠에 들었다.


당시 나는 평소 세 시간도 자지 못했으나 그 날은 여덟 시간 가까이 꿈 없이 잘 수 있었다. 확실히 약효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깨고 난 이후의 기분은 더러웠다. 피로감은 전혀 풀리지 않았고 무언가 채워지지 않은 듯한 공허함만이 진하게 남았다. 이 곳이 혹시 연옥(獄)은 아닐까? 하는 정신착란도 잠시 있었다. 무서웠다. 이 약을 계속 먹다 보면 언젠가 아빠가 말했던 사회 부적응자가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오들오들 몸을 떨며 처방받은 약 전부를 변기통에 버렸다. 물을 내리면서 한참을 울었다. 나는 왜 이럴까.


그 우울 또한 명확한 치료 없이 그저 시간을 흘려보내자 어느 정도 괜찮아졌다. 적어도 물리적으로는 그랬다. 하지만 처음 증상을 겪었던 18살 이후의 나는 어느 순간마다 그런 '감정적 시기'를 겪어야 했다.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우울을 꽤 여러 번 겪고 나자 나름의 극복 노하우도 생겼다. 반대로 이 우울을 창작에 활용하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우울에 체념하기 시작했다.




20살 때부터 알고 지내던 Y 누나는 같은 커뮤니티 안의 누가 봐도 우울을 이겨내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어느샌가 사람들 사이에서 피곤한 사람이라는 인식이 박혔고 특히 동성 친구들에게는 기피 대상 1호였다. 예쁘장했기에 위로를 핑계로 접근하는 불순한 남자들이 많았고 그녀는 그들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가 여러 번 피를 봤다. 그런 Y 누나는 인간적으로 나를 신뢰했다. 그 누구보다 그녀가 겪는 감정을 잘 알고 어느 정도 해소해왔던 비슷한 결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새벽 늦게까지 자주 그녀와 대화를 나눴다.


어느 날엔가 그녀는 평소처럼 뜬금없는 시간에 연락이 왔다. 인형 뽑기를 하다 어떤 40대로 보이는 아저씨가 친구 하자고 추근덕댔다는 것이다. 팔을 뿌리치고 본인의 자취방으로 부리나케 도망가면서 아까 그 사람이 혹시나 자기를 쫓아올까 봐 걱정된다는 말을 내게 전송했고 당시 나는 여자 친구가 있는 입장이었기에 늦은 밤에 이런 고민을 토로하는 것에 약간 짜증이 났다. Y 누나는 처음 사귄 남자 친구의 섹스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아 이별을 당했고 이 점까지 캐치하지 못한 나는 누나에게 남자 친구를 사귀라는 어리석은 충고를 건넸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그리 선을 넘는 발언을 하지는 않았음에도 그녀는 발칵 화를 냈다. 그렇게 우리는 순식간에 남이 됐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녀를 쉽사리 이해할 수 없었기에 그녀의 요청으로 우리는 몇 번 더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자리를 가졌고 그때 내가 들었던 그녀의 우울의 원인은 생각보다 평범했다. 왕따를 당했고 재수에 실패했으며 남자 친구에게 배신당했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들. 누군가에게는 어쩌면 사소할 수 있는 사건들이 그녀를 폐허로 만들었다. 지나치게 의존적으로 사람에게 기댔고 분리 불안 증세도 보였다. 피터팬 콤플렉스와 같은 애착 증세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우울에 오랜 시간 동안 잠식되어 있었다. 이미 체념해버린 것이었다.


그렇게 몇 개의 충고를 건넸지만 아무것도 효력이 없었다. 그럴 의지조차 없었다. 내가 가장 강조한 것은 '운동을 하는 것'이었다. 내 경험상 대부분의 우울한 감정은 땀을 흘리고 나면 사라졌다. 그러나 가벼운 산책이라도 좋으니 한 번 해보라는 충고를 그녀는 단 한 번도 이행하지 않았다. 또 몇 번의 사건이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나면서 나는 그녀만의 오해로 매정한 사람이 되었고 그녀는 그런 나를 철저하게 무시하기 시작했다. 성심 성의껏 도와준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고 용서가 불가능했다. 나는 공개적인 자리에서 그녀의 정서적 결핍을 비난했다.


내가 의사가 아니기에 확언할 수 없지만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그녀는 '경계선 성격장애'를 앓는 것 같았다. 그 정도로 그녀는 심각했다. 학년이 오를수록 그녀에 대한 안 좋은 소문만이 들려왔고 대부분의 구성원들이 그녀를 의도적으로 기피했다. 나중에 몇 번 마주친 그녀의 몰골은 참담했다. 전해 들은 이야기로는 하루 종일 잠만 자는 사람이 되었다고 했다. 그녀는 그렇게 외로운 졸업을 맞이했다. 워낙 그런 에피소드가 많은 사람이었기에 구성원 중 어느 누구도 그녀에게 축하 인사 한마디를 건네지 않았다. 그녀는 졸업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지금의 소식은 모르겠다. 슬프지만 나는 그녀가 자살하지 않았을까 하는 우려가 든다.




사람은 누구나 헤쳐나가기 힘든 역경을 맞닥트리게 되면 세상에서 본인이 가장 불행하다고 여긴다. 부정적인 상태나 감정이란 이겨내기보단 위로받고 싶다는 충동을 강하게 일으키니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기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 정당화돼서는 안 된다. 감정은 무기로 사용될 때 가장 폭력적으로 돌변하기 때문이다. 하다 못해 무조건적인 사랑을 보내주는 가족들에게도 말이다. 내가 아니고서야 나를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절대로.


나 또한 우울에 체념했지만 어느 정도 순응하기도 했다. 사실 이 우울이라는 것이 내게는 꽤 쓸모가 있기도 하다. 끝없는 감정의 나락에 빠져 바닥에 도착하고 나면 알 수 있다. 더는 추락할 수 없는 감정의 맨 밑바닥이란 분명하게 존재하고 그 이후에 사람은 반등할 수밖에 없다. 더는 슬퍼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아마 평생토록 우울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어느 한편으로는 이 점이 마음에 걸리지만 나는 자신이 있다. 그 '우울의 시기'가 불현듯 찾아와 나를 저 아래에 있는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게 만들어도 적절한 완충재를 나 스스로에게서 찾아낼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 어쩌면 이 글을 읽고 있을지도 모를 나와 같은 '우울에 체념하는 사람들'에게 두 가지 조언을 전하고 싶다.


첫째, 운동을 하라. 우울의 90% 이상은 운동으로 해결이 된다. 속는 셈 치고 꾸준하게 조깅을 해보라. 오랜 시간이 걸리지도 않는다. 아주 금방 본인의 감정이 상쾌해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운동은 부작용도 없다.


tvN D VAVA, <괴릴라데이트>


둘째, 경청하라. 내 우울을 상담해줄 누군가를 찾지 말고 누군가의 우울을 역으로 경청하라. 우울을 비교하라는 뜻이 아니다. 누군가의 우울을 경청하다 보면 한 번쯤은 누군가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기 마련이다. 그때의 감정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내 우울에도 예의를 갖추라는 뜻이다. 우울의 끝을 뭉툭하게 만들자. 무기가 되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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