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찬우 Jun 17. 2020

<굿모닝>

미안, 근데 이해 좀 해줘


잘 자


 성시경은 노래를 잘한다. 우리가 흔히 '김나박이'라고 부르는 대한민국 최고의 '노래 기술자'들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없을 정도로 말이다. 감미로운 미성을 담은 음악과 방송에서 보여준 시니컬한 이미지로 유명해서 그럴 뿐 그의 음악은 그저 목소리 빨(?)이라고만 평가하기에는 매우 높은 기술적 난이도를 가지고 있다. 실제로 필자는 노래방에서 가끔 그의 대히트곡 <거리에서>를 부르곤 하는데 열창 뒤에는 적어도 네 곡은 건너뛰어야 할 정도의 체력이 소모된다.

 

 하지만 성시경의 노래는 일상적이다. 그의 음악은 단순 반복의 '후크 송'이 아니다. 음식으로 비유하자면 그의 음악은 MSG를 넣지 않은 자연주의 음식이다. 문학으로 비유하자면 그의 음악은 단편소설이나 경수필이다. 또 굳이 대중가요의 카테고리 안에서 분류하자면 그는 윤종신, 김동률과 궤를 같이한다. 실제로 그의 많은 음악은 윤종신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 오늘 소개할 <굿모닝>도 윤종신이 작사, 작곡했다.


 이별 후, 본인의 전 여자 친구 혹은 전 남자 친구에게 연락을 해 본 적이 있는가. 나는 없다. 흑역사를 만들고 싶지 않은 이유도 있지만 내가 사랑했던 그녀들에게 쿨한 이미지로만 남아있고 싶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녀들은 내 후회에도 아랑곳하지 않을 꼿꼿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연락을 받은 적은 있었다. 기분이 나빴다. 이미 사귀고 있는 여자 친구가 있을뿐더러 그녀의 대화 태도는 지나치게 무례했기 때문이다. 술기운을 빌려 본인 만의 후회를 주절주절 쏟아내는 것을 잠자코 들었다. 나는 여자 친구가 싫어하니 다시는 전화하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 그녀는 욕을 하며 나를 저주했다. 이별의 사후처리는 너무나 이기적이고 폭력적이라는 것을 그때야 알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qRAljqg2nRc




이별은 울림을 남기고 가


[Part A]


침대 옆 가습기 서럽게 숨을 쉬고 

눈을 떠 본 내방 안에 흩어지는 어젯밤 기억들 중에 

취한 가슴이 중얼거리던 애태운 그리움들이 

또 한 번 아침 힘을 뺀다



 성시경의 음악과 윤종신의 가사가 '일상적'임을 대변하는 가사다. 내가 아는 한 한국형 발라드 음악에서 '가습기'라는 단어가 등장했던 사례는 몇 없다. '침대 옆 가습기'로 시작하는 가사적 공간은 도입부부터 청자를 상상의 나래로 인도한다.


 눈을 떠 보니 가습기에서 뿜어 나오는 서러운 수증기처럼 내 방안에는 어젯밤의 기억들이 흩날린다. 아마도 화자는 어젯밤 술을 마셨나 보다. 그리고 술기운을 빌려 그리운 누군가에게 중얼거렸나 보다. 이 그리움들은 화자가 눈을 뜬 아침의 힘을 뺀다.



열린 창문 사이 재떨이 그리고 전화기 

하지 말아야 할 두 가지 모두가 무안한 듯 나를 보네 

무슨 말을 했는지 몰라도 꽤나 오래였는데도 

너의 이야기 희미한 울림뿐



 침대 옆 가습기의 공간적 상황을 더욱 구체화한다. 열린 창문 사이에는 재떨이와 전화기가 하나 놓여있다. 이 두 가지 오브제만으로 앞서 이야기했던 '애태운 그리움'들이 구체화된다. 절정은 바로 다음의 가사다. 하지 말아야 할 두 가지 모두가 무안한 듯이 나를 본다. 하지 말아야 할 두 가지의 무언가라니. 앞서 전시된 두 가지 오브제로 보아 이 '하지 말아야 할 무언가'는 아마도 '흡연'과 '전화'일 것이다. 무슨 말을 했는지는 취해서 기억이 나지 않지만 우리는 꽤나 오래 통화했고 기억에 남는 것은 그저 희미한 울림뿐이다.


 성시경과 윤종신은 <굿모닝>에서 후회와 외로움을 소리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그 상황을 조용히 보여준다. 많은 기성 한국 발라드가 휘몰아치는 외로움에 정신을 차리지 못할 때 이들은 덤덤히 그를 일상적인 영역 안에서 묘사하는 것이다.



미덥지 않던 내 이별 다짐들은

이내 너에게 피곤한 밤으로 다가와

그냥 그런 후에 그리움 따위 듣지 않아도 되는 푸념들 

미안해 잊어야만 했었던 너란 그늘이 컸던 

이별 후에 힘겨운 밤들을 모두 다 사과할게



 화자의 '애태운 그리움'은 애석하게도 '미덥지 않은 이별 다짐'의 실패에서 시작한다. 그는 취한 가슴을 부여잡으며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고 그녀는 그걸 받았다. 그러나 이미 남이 된 그녀에게 그 시간은 그저 '피곤한 밤'에 불과하다.


 그냥 그런 사이가 되었으니 이 애태운 그리움은 그녀에게는 듣지 않아도 될 푸념들이다. 화자는 그걸 알지만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사과를 건넨다. 미안해. 잊으려고 했는데 너는 내게 너무나 커다란 그늘이었어.




이별 뒤에도 하루는 시작된다



[Part B]


차디 찬 세수에 내 시야는 환해지고 

희미했던 순간들이 끊긴 듯이 떠오르고 사라진다

거울 속 부은 눈 바라보며 내 하루는 시작되고

잊을 수 없는 그대여 굿모닝 



 또 한 번의 공간의 이동이 일어난다. 가습기 옆의 침대에서 일어난 화자는 아마도 화장실로 들어갔을 것이다. 그는 아침을 맞이하며 세수를 한다. '희미한 울림'은 이 차디 찬 세숫물에 불현듯 나타났다 사라진다. 화자의 시야 또한 환해진다. 거울 속의 화자의 눈은 퉁퉁 부어있다. 많이도 울었나 보다. 그러나 이별 뒤에도 새로운 하루는 시작된다. 차가운 물로 정신을 차렸지만 잊을 수 없는 그녀 또한 마찬가지의 하루를 시작할 것이다. 굿모닝.



미덥지 않던 내 이별 다짐들은 

이내 너에게 피곤한 밤으로 다가와 

그냥 그런 후에 그리움 따위 듣지 않아도 되는 푸념들 

미안해 잊어야만 했었던 너란 그늘이 컸던 

이별 후에 힘겨운 밤들을 모두 다 이해해줘



일어나 출근 준비를, 등교 준비를, 아침 준비를 한다. 나조차도 미덥지 않은 이별의 다짐들이 야기한 '실패한 밤'이 지나 결국 또다시 그대가 없는 아침이 시작됐다. 전화해서 미안하다. 하지만 조금만 이해해주길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깡 Official Remix>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