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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우 Jun 12. 2020

<깡 Official Remix>

나 비 효과


그의 매니저 전화기는 조용할 일이 없네



2020년 현재 가장 뜨거운 인터넷 밈(meme)은 단연코 비의 <깡>이다. 사실 이 밈은 근래 들어 갑작스럽게 유명해진 것이 아니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적어도 1년 전부터 꾸준하게 많은 시청자들을 <깡>으로 인도했고 비슷한 이유로 비의 <차에 타봐>와 XIA의 <비단길> 또한 유사한 수혜를 입었다. 이 '아는 사람만 아는 명곡(?)'은 MBC의 <놀면 뭐하니?>를 통해 이제야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등장한 것뿐이다. JTBC의 <슈가맨>에서 양준일이 보여준 '탑골 GD'와는 다른 의미로 이들은 명백하게 '희화화'된 콘텐츠로만 소모되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비의 <깡> 열풍에는 분명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뉴트로'의 요소다. 한반도는 지금 꽤 오랜 기간 동안 레트로 콘텐츠에 잠식되어있다. '월드스타'였던 그는 앞서 말한 양준일과 마찬가지로 '한물 간 과거의 스타' 포지션을 완벽하게 갖췄고 <깡>은 여기에 뉴트로의 니즈 또한 충족하는 음악이었다. 2017년 11월 발매된 이 노래는 가장 젊은 감각을 가진 음악인 '힙합' 장르를 표방하고 있지만 당시 기성 래퍼들의 곡들과 비교해보면 어느 면에서 봐도 어설프다. 한 때 전국을 강타했던 <Rainism>과 <널 붙잡을 노래>의 위상을 돌이켜보면 이는 슈퍼스타의 몰락을 나타내는 가장 직접적인 지표가 되는 음악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지금의 '유튜브 세대'들에게 이 곡은 이상하지만 중독성 있는 과거의 '병맛' 유물의 역할을 충실히 담당하게 된 것이다.


둘째로 '항마력 테스트'의 요소다. 곡의 조악한 완성도와 더불어 뮤직비디오의 저조한 퀄리티도 한몫을 했다. 테크 웨어라고 하기에는 무언가 과장된 의상과 본인의 이름을 큼지막하게 박아 넣은 볼캡 모자부터 심상치 않다. 분명 트렌디해 보이기 위해 글리치 효과를 쓴 게 다분해 보이는 인트로는 왠지 모르게 촌스러우며 '꼬만춤'과 '척추 수술한 강아지 춤', '고릴라 춤'은 멋있다기보다는 보는 사람이 되려 부끄러운 요상한(?) 춤이다. 하지만 이 모든 면면은 위에서 언급했던 뉴트로의 개념과 적절하게 결합해 하나의 새로운 '인터넷 문화'로 변모했다. 사람들은 괴로워하면서도 '유노윤호의 살인예고'와 '강민경의 익룡 연기'를 즐겼던 것처럼 하나부터 열까지 조악했던 비의 <깡>을 항마력 테스트의 일종으로 소비했다.


그러나 비는 여기서 그의 <깡>을 단순히 밈의 요소로만 국한하지 않는다. "형님 하고 싶은 거 다 하지 마십쇼"라는 댓글이 많은 좋아요를 수집하고 있지만, 그는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트렌디한 힙합 음악을 하는 박재범 사단의 하이어 뮤직과 손 잡고 <깡>을 재창작했다. 이것은 그의 음악이 지금의 '밈'세대에게 전하는 일종의 통렬한 반격이다. 희화화의 대상이 되었던 <깡>은 <깡 Official Remix>로 변신해 단숨에 차트를 집어삼켰다.


https://www.youtube.com/watch?v=Mn3qh0XrLcc



GGANG


[Intro]


Yeah yeah H1GHR GGANG back at it again

Yeah yeah better watch out I’m gonna make it rain

차에 타봐 uh yeah

Before I hop out uh yeah

과연 누가 hot uh yeah

Brother u not uh



<깡 Official Remix>는 하이어 뮤직의 식케이(Sik-K)의 인트로로 시작한다. 하이어 뮤직은 'H1GHR GANG'이라는 표어를 자주 언급하곤 하는데 이를 <깡>과 결합해 이 곡에서는 'H1GHR GGANG'이라는 표어로 탈바꿈시킨다. 밈을 적절히 활용한 네이밍이라고 볼 수 있겠다.


다음 이어 붙는 라인 또한 훌륭하다. "better watch out I'm gonna make it rain"은 "비가 오니 조심해라"라는 의미를 가지는 동시에 힙합의 표현에서 "돈 비를 내린다(make it rain)"의 의미 또한 충족시키는 이중적인 표현이다. 원곡자인 비를 리스펙 하는 동시에 힙합 레이블이 보여줄 수 있는 스웨그를 적절하게 보여줬다.


그리고 비의 또 다른 논란의 곡 <차에 타봐>를 오마주 하면서 흥미를 배가 시킨다. "Before I hop out"은 "내가 뛰기 전에"라는 뜻이니 대충 '내가 너를 잡으러 가기 전에 어서 차에 타라' 정도로 해석하면 되겠다. 비의 또 다른 밈을 적절히 차용하는 동시에 힙합의 작법에서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는 점이 흥미롭다.




진짜로 다시 돌아왔다


[Verse 1]


Yeah 다시 돌아왔지

It’s H1GHR GGANG

Yea we came back again

WOAH

이건 농담 아냐

다 매번 놀라 너무 오른 내 폼에

WOAH

전 세계를 돌아 we touring 지구 저 반대편까지 yea

누워서 가는 비행기 덕에 우린 절대로 차엔 안 타지



필자가 이전의 '가사도우미'에 한 번 썼던 아티스트인 pH-1의 벌스가 포문을 연다. 개인적인 견해로는 이 <깡 Official Remix>에서 가장 훌륭한 랩 메이킹과 퍼포먼스를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그는 첫 가사부터 원곡을 인용한다. "Yeah 다시 돌아왔지"는 실제로 <깡>의 첫 소절이다. 하지만 그는 스웨그를 풀어내는 방법에서 비와는 다른 방식을 선보인다. 그래서 그는 이 짧은 4마디 안에도 하나의 자그마한 경고문을 숨겨놓았다. 그는 '이것은 농담이 아니다'라고 선언한다.


원곡에서 비는 "스웩을 뽐내 WHOO! / They call it! 왕의 귀환 후배들 바빠지는 중! / 신발끈 꽉 매고 스케줄 All Day / 내 매니저 전화기는 조용할 일이 없네 WHOO!"라는 꽤나 직접적인 표현으로 본인의 성공을 뽐낸다. 그가 이 산업군에서 쌓아온 업적을 비하하려는 의미는 아니지만 뭔가 촌스러운 작사 법이다. 하지만 pH-1은 이 '성공'을 적절히 차용하면서도 본인만의 색을 잃지 않는 표현법을 보여준다.


'전 세계를 도는 투어'를 통해 그의 음악적 성공을 전시하는 동시에 그는 투어를 위해 타는 '누워서 가는 비행기' 덕분에 절대로 차에 타지 않는다고 말한다. 본인의 성공을 비유하는 장치로 '전 세계 투어'와 '비행기', 단 두 개만으로 차별화된 표현을 만들어냈다. 명확한 개연성(비행)을 가진 아이템들이기에 가능한 비유다. 동시에 앞서 인트로에서 오마주한 <차에 타봐>를 pH-1만의 방식으로 언급하면서 식케이와 마찬가지로 밈을 적절히 활용한 작사 법을 제공해 듣는 재미 또한 놓치지 않았다. 탁월한 작사 능력이다.




화려한 조명은 필요 없어 난 빛이 나니까


[Verse 2]


차엔 안 타지, 시간은 가지 tickin and tockin

가짜들 바삐 도망이나 가지 난 전부 다 깡그리

잡아 안 놓쳐, H1GHR GGANG 또 난동 펴

니네 팀 분위기 다 초 쳐

Ride or die lil homie I told ya

H1GHR GGANG



식케이의 두 번째 벌스다. 이 곡에는 총 네 개의 랩 벌스가 등장하는데 프로레슬링의 태그 팀 매치의 형식과 비슷하게 둘씩 짝을 지은 전개 방식(pH-1 - Sik-K, Jay Park - HAON)을 가진다. 일반적인 힙합 음악이 랩 벌스 8마디 혹은 16마디 다음 훅이 치고 들어오는 구성을 가진다면 이 곡은 4마디씩 나눠 두 명의 래퍼가 마치 하나의 벌스를 완성하는 것처럼 랩을 진행하는 것이다. 그래서 속도감 있고 지루하지 않다. 밈으로 뜬 음악을 소비하는 사람들을 의식한 프로덕션으로 생각된다.


식케이는 pH-1의 "차엔 안 타지"를 그대로 이어받아 라임을 전개한다. 가사 자체는 일반적인 스웨그를 보여주는 정도지만 정석적인 라이밍을 통해 타격감 있는 벌스를 구축했다. '타지, 가지, tockin, 바삐, 깡그리'를 전형적인 투포리듬 박자에 넣어 운율을 만들었고 '안 놓쳐, 난동 펴, 다 초쳐, I told ya' 또한 유사한 방식을 보인다. '깡그리'라는 단어를 통해 <깡>의 색깔 또한 놓치지 않았다는 점도 흥미롭다.



[Hook]


화려한 조명이 날

감싸지 않아도 난 빛이 나

불이 꺼져 홀로 남아도

앞을 향해 계속 달려가

H1GHR GGANG we swagging

Boy you know we on the way

Hater들이 뭐라 해도

Don’t care what they say

모든 거를 적셔 적셔

Can u feel the rain

난 쓰러질 때까지 널 위해 춤을 춰



박재범의 본격적인 훅이다. 훅 또한 오마주를 놓치지 않는다. 원곡의 훅 첫마디는 "화려한 조명이 나를 감싸네"지만 박재범은 이를 약간 비틀어 "화려한 조명이 날 감싸지 않아도 난 빛이 나"로 가사를 전개한다. 또한 "불 꺼진 무대 위 홀로 남아서 떠나간 그대의 목소릴 떠올리네"로 뜬금없는 가사의 전환을 보여줬던 원곡과는 달리 "불이 꺼져 홀로 남아도 앞을 향해 계속 달려가"라는 개연성 있는 가사를 통해 '포부를 다짐'하는 명확한 정체성을 가진다.


익명의 헤이터들에게 "너네들이 뭐라 해도 나는 신경 쓰지 않고 내 갈길을 가겠다"라는 전형적인 힙합 논조를 이어가며 우리의 음악이 모든 것을 적시겠다고 말한다. 이 또한 원곡자 비를 활용한 언어유희다. 마지막 가사는 원곡의 마지막 마디와 똑같이 "난 쓰러질 때까지 널 위해 춤을 춰"라고 말하지만 주어가 약간 다르다. 원곡에서는 '나'라고 표현했으나 여기서는 '난'이라고 표현하다. 분명 뉘앙스가 다르다. 원곡에서는 이유모를 어떤 '그대'의 등장 때문에 이 '쓰러질 때까지 추는 춤'은 단일의 대상을 향하지만 박재범의 경우는 다르다. 박재범이 추는 춤은 이 '적심'을 느끼는 '팬들'을 향해있다고 해석하는 방향이 바람직해 보인다. 그래서 이 둘은 같은 가사로 훅을 끝냄에도 불구하고 호소력의 차이를 보이게 된다.




허세 없이 만드는 나 비 효과


[Verse 3]


Gotta hunnit dollaz

I’m a baller baller I’m a shot caller

What my ala motter

It’s get money money then I hit up follies

남자 놈들 왜 이리 말이 많아

네가 나를 알아? I get hotter hotter

똑같이 벌어도 우린 달라 달라

내 시간 원해 빌어 싸바싸바

난 hustler workman like lululala



박재범의 세 번째 랩 벌스이다. 이 벌스를 해석하는 데 부족함이 있음을 우선 인정하겠다. 필자가 영어권 국가에서 자라지 않았기 때문에 Jay Park의 가사를 해석하는 데 난관이 있었다. 하지만 명쾌한 주제가 있음은 이해하고 있다. 바로 '허세 없는 남자의 스웨그'다. 이는 원곡에서 끊임없이 지적받던 '뜬금없는 거만과 허세'의 대척점에 있다. 이 명확한 주제의식은 바로 이어 태그 하는 하온의 벌스에도 어느 정도 연결되는 기조로 여겨진다. 하이어 뮤직은 둘씩 짝을 지은 이 프로덕션을 통해 의도한 지는 모르겠으나 '대비'를 보여준다.


원곡에서 끊임없이 백그라운드 사운드로 깔리는 'hundred doller bill'을 의식한 'hunnit dollaz' 또한 힙합의 보편적인 작법에 등장하는 화폐 단위다. 이보다 더 큰돈도 많으나 하나의 상징적 의미로 '부'를 표현한다 정도로만 이해하자. baller 또한 비슷하게 이해하면 되겠다. 운동경기에 비유한 '플레이어' 정도의 의미지만 여기서는 돈을 많이 번 사람으로 해석하겠다. 중요한 것은 뒤에 붙는 'shot caller'다.


샷 콜러는 '남자들 무리에서 의사 결정권을 가진 우두머리'를 뜻한다. 지배하다, 명령하다의 의미를 가지는 은어 'Call the shots'에서 비롯됐다. AOMG와 하이어 뮤직의 수장인 박재범을 표현하기에 이보다 적합한 단어는 없다. 하지만 그가 여기에 샷 콜러를 가져온 이유는 바로 뒤에 이어 붙는 가사 때문이다. 이 부분의 해석이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이해해주길 바란다. 해석이 완벽하지 않은 이유는 필자가 'ala motter'의 의미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대충 단어의 형태와 뒤 문장과 연관 지어보면 '모토'의 의미를 가진 슬랭이라고 추측되지만 확실하진 않다.


대충 '모토'로 해석을 한다면 baller이지 shot caller로서 그의 목표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으며 돈을 버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말만 많은 남자 놈들'과 달리 그는 '허슬러'로서 정정당당하게 일을 하며 돈을 벌겠다고 말한다. 박재범이 여태껏 보여준 행보를 잘 팔로우 업한 사람들이라면 아무도 이 가사에 태클을 걸 수 없을 것이다. 여기서 hustler의 일종으로 'workman'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이는 1일 아르바이트 체험을 통해 유명해진 유튜브 채널 '워크맨'을 활용한 재치 있는 워드 플레이다. 이 워크맨을 제작하는 곳은 JTBC의 디지털 콘텐츠 그룹 '스튜디오 룰루랄라'이다.



[Verse 4]


나는 없어 자만

해내야만 했어

허세와는 거리가 넘 멀어

더 세게 밟아 들어가 이제 터널

TV에 나와 like timmy turner

나 비처럼 fly

Ain’t gon’ lie

하늘에 누워있지 다 물 만나

아무리 따라와 봤자 날 못 잡아

H1GHR gang 아니 고쳐 깡



하온의 네 번째 벌스이다. 사장님인 박재범의 벌스와 마찬가지로 허세와 자만에서 먼 성공을 이야기한다. 이는 그가 메인스트림에서 유명해진 계기가 된 <고등래퍼>의 이미지와 비슷하다. 원곡의 '나비효과'를 차용해 '나 비처럼 fly'라는 가사를 통해 비처럼 날겠다는 어린 래퍼의 포부를 보여준다. 는 거짓과 허례허식 없이 정당한 성공을 거머쥐겠다고 다짐한다.


식케이와 비슷하게 전형적인 힙합의 작법 안에서 성공을 다짐하는 지극히 일반적인 가사이지만 식케이와 달리 아쉬운 랩 메이킹을 보여준 점이 안타깝다. '멀어, 터널, turner'는 라이밍을 의도하고 쓴 가사임이 분명 하나 그 당위성이 떨어진다. "TV에 나와 like timmy turner'는 단순하게 라임을 맞추기 위한 용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필자는 뻔한 이야기를 하는 가사일수록 차별화된 포인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하온은 이 벌스에서 아무런 차별점을 보여주지 못했다. <깡 Official Remix>에서 그는 같은 회사의 선배들과 비교했을 때 가장 부족한 기량을 보였다. 물론 하온은 이를 충분히 헤쳐나갈 잠재력이 큰 아티스트다.




1일 10깡



<깡>의 성공은 분명 대중문화 역사에 길이 남을 일이다. 하지만 아티스트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슬플 수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이 세상의 어떤 가수가 본인의 곡을 폄하하는 분위기를 즐길까. 하지만 비는 이를 오히려 영리하게 사용해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그는 사람들의 조롱에 작사가나 작곡가를 탓하기보다는 자신의 부족한 안목을 인정하는 동시에 "1일 3깡은 해야지"라고 우스꽝스럽게 되받아치며 대인배의 풍모를 보였다. 그렇게 그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거운 사람이 되었다. 그가 <깡>에서 말했던 대로 매니저의 전화기는 조용할 일 없을 정도로 바쁘다고 하니 말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혹시 이 모든 게 진정 그가 예견했던 나비효과인 건 아닐까. 오늘도 필자는 1일 10깡을 완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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