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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우 Jun 21. 2020

<Orange>

우리의 성공은 활활 타오른다


애매모호한 성공



누구나 성공을 원한다. 으레 '성공'이라 함은 선명한 채도 밝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빛과 어둠'의 빛, '선과 악'의 선, '낮과 밤'의 낮처럼 말이다. 극명한 대칭이 있기 때문에 성공은 더욱 찬란해 보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노을이 지는 순간을 이런 '성공'에 비유한 점이 재밌는 이유는 바로 이 극단을 깨버렸기 때문이다. 노을은 말 그대로 '지는 상황'이다. 짓군즈가 낮이 끝남과 동시에 밤이 시작하기 일보직전인 이 매모호한 시간대를 성공으로 비유한 이유는 무엇일까?


https://youtu.be/zqEdNOvCCX4



찬란한 빛은 아니더라도


[Hook]


군즈의 집 밖엔 진항 주홍 빛깔 예

애매모한 시간은 이미 저물었으니

우린 빛날게

리짓군즈이 집 밖엔 진한 주홍 빛깔 예

애매모한 시간은 이미 저물었으니

우린 빛날게

오렌지 빛

오렌지 빛

오렌지 빛

오렌지 빛



'개와 늑대의 시간'이란 말이 있다. 해 질 녘 모든 사물이 붉게 물들고, 저 언덕 너머로 다가오는 실루엣이 개인지 늑대인지 분간할 수 없는 시간이라는 의미를 가진 프랑스어 'L'heure entre chien et loup'에서 유래한 말이다. 낮과 밤의 중간 지점인 노을이 지는 정도의 시간대로 해석하면 되겠다.


리짓군즈는 이 시간을 '애매모호한 시간이 저문 후'의 시간으로 표현한다. 이 애매모호한 시간은 일반적인 기준에서 성공으로 비유되는 '낮'이 아닌가 싶다. 낮이 저물고 밤이 찾아오니 말이다. 왜인지 모르겠으나 이들은 낮이 아닌 주홍 빛깔의 시간대에 빛나겠다고 선언한다.


이를 시각적으로 동일한 색상을 가진 '오렌지'로 표현한 점이 재밌다. 왜 하필 오렌지일까? 주홍색을 뜻하는 영단어가 orange라서?



운전자


[Verse 1]


시간이 지나고 너희들이 멀리

흘러간다면

우리들이 나눴던 이야기들이

조금씩 지워질 수도 있어

그럴 때면 하루를 버티고 나서

바라본 오렌지 빛처럼

너의 등 뒤에서 너를 감싸는

노래를 불러주고 싶어



리짓군즈 멤버 재달의 벌스다. 첫 네 마디에서는 그의 포부를 짐작할 수 있다. '버틴 하루'의 끝인 노을을 바라보는 사람을 청자로 설정하고 본인은 그런 당신들을 감싸안는 오렌지 빛의 음악을 들려주고 싶다고 말한다. 노을의 색상이 표현하는 시각적인 심상과 그 열기가 만드는 촉각적인 부분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공감각적 가사가 일품이다. 재달과 리짓군즈의 팬이라면 이러한 작사 법에 감동받지 않을 수가 없다.



more money more power

원하는 게 많아지네

몇 살엔 얼마를 모으고

신랑 입장을 해야만 해

웃음기 가신 채로 하는 일이

무슨 소용인가 싶네

핸들을 잡을 수가 없다면

암만 빨라도 난 그저 손님인데



다음 여덟 마디에서는 좀 더 구체적인 창작자와 청자의 상황을 비유한다. '청자'가 포함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 가사는 전혀 개인적인 내용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 많은 돈, 더 많은 권력을 원하는 우리, 몇 살에는 얼마를 모으고 언제쯤 결혼을 해야 하는 지를 말하는 우리는 모두 같은 처지의 대인이다.

 

이 '웃음기 가신 채로 하는 일'들이 무슨 소용인가 싶다. 다들 남들의 기준에 맞춰 성공을 재단한다. 이에 맞춰 빠르게 달려가다 보면 가끔 회의감이 드는 것이다. 분명 내 인생을 몰고 가는 운전자는 '내'가 되어야 하는데, 우리는 전혀 그러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핸들을 잡지 못하면 그저 '손님'일 뿐이라는 가사가 그래서 뼈아프다. 우리는 노을을 등지고 택시를 탄다.



I don't wanna live like this

얼마나 빠른지에 대해선

별로 관심 없지

보고 싶은 걸 눈에 담을 수 있다면

당나귀에 업혀도 난 상관없지

내 생각에 산다는 건 선착순이 아냐

난 서두르고 싶지 않아

저물기 직전에 빨간 노을처럼

활활 끈질기게 타오르고파



다음 여덟 마디에서는 본인의 주체성을 조금 더 강조한다. 이 또한 창작자 개인에게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고,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에도 관심이 없다. 천천히 걷는 당나귀에 타더라도 내가 보고 싶은 걸 보려 한다.


우리도 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고 성공 또한 선착순이 아니다. 서두른 성공이 있다면 분명 더듬거리며 찾는 성공도 있을 테니 말이다. 나(우리)는 해가 지기 전의 저 빨간 노을처럼 활활, 끈질기게 타고 싶다.




얼굴 붉히지 말자구요


[Verse 2]


it feels like an orange yea

it feels like an orange yea umm

물에 탄 보드카처럼 기억들이

lost & gone ohh i wonder

it feels like an orange yea

it feels like an orange yea umm

떠날 놈 다 떠나버린 하늘은

서울의 밤 같아



리짓군즈 멤버 제이호의 두 번째 벌스다. 앞서 재달이 본인의 포부를 담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미지를 만들어냈다면 제이호는 좀 더 감상적인 부분을 건드린다. 


첫 네 마디에서는 재달과달리 미각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 기분은 오렌지 같다'는 말을 영어로 반복하며 삶의 씁쓸한 맛을 표현한다. 그러곤 보드카를 오브제를 내세운다. 마치 우리가 술자리에서 끊임없이 본인의 삶의 씁쓸함을 토로하듯이 말이다. 재밌게도 이 곡의 메인 테마인 '오렌지'로 만든 오렌지주스는 보드카와 섞어 마시는데 자주 사용되는 음료다.



가볍게 흘려버린 시간을 돌리고

어느새 멀어져 버린 옛 친구도

come & chill 내 옆자릴 비울게

해가 떨어지기 전에 잔을 비울래 yea

주머닌 텅 비었어도

feelin hella good

오렌지 빛 하늘은 beautiful

우리 젊음에 바치는 serenade

serenade yea 우린 더 외로워도 돼



다음 여덟 마디에서는 제안한다. 같이 술 한잔 하자고. 그래서 주홍 구름도, 주홍 하늘도 사라진 깜깜한 밤은 '떠날 놈은 다 떠난 서울의 밤' 같다는 표현의 뒷맛 또한 이 제안처럼 씁쓸하다. 반면 흘러간 시간도, 멀어진 친구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런 당신을 위해 내 옆자리를 비워둘 테니 이 해가 떨어지기 전에 같이 잔을 비우자는 라임은 뒤따라 붙은 '텅 빈 주머니의 결핍'과 달리 안도감을 준다. 어쨌든 기댈 곳이 있구나, 하는 안도감 말이다.


아름다운 오렌지 빛 하늘에 대고 우리의 젊음을 바치는 세레나데를 부르는 그들을 보며 일종의 건배가 그려지는 건 나뿐일까? 이 세레나데 뒤에 우리는 더 외로워도 된다고 말한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뭐 이런  이야기하고 싶은 걸까?



o to the r a 우리 새벽

더 독한 보드카를 타

부귀영화를 누려야지 우리도 해서

boogie on let's get drunk

매일 밤낮을 새며 얼굴 붉히는 게

때론 부담이 돼

but we gotta keep dancin' burn to ashes

좋은 거지 좋은 게 너도 take that



다음 여덟 마디에서는 '좋은 게 좋은 거'라는 회의주의적 성공을 이야기한다.


이 노을 진 하늘은 우리의 새로운 '새벽'이다. 낮과 밤 사이에 '해가 지며 생기는 노을'이 있고 밤과 낮 사이에도 '해가 뜨며 생기는 노을'이 있다는 점에서 탁월한 표현이 아닌가 싶다. 새롭게 떠오르는 심상을 통해 지금껏 죽 묘사해온 '저무는 간대' 가진 씁쓸한 성공을 적절하게 반전시켰다. 


매일 밤낮을 얼굴 붉히며 부담스러운 성공을 이야기하는 것보다 노을을, 새벽을 위해 취한 지금 이 순간에만 부귀영화를 누리는 우리는, 비록 활활 타오르고 남은 잿더미 위에서 춤추더라도 그게 정말로 '좋은 게 좋은 거'지 않을까? 이보다 더 낙관적인 회의주의가 어디 있을까. 눈물이 난다. 조금 덜 붉은 오렌지 빛깔의 얼굴을 가진 사람들이 이 곡을 으며 각자 다른 성공을 기대하는 장면이 상상되니 말이다.




청춘은 오렌지 색



오렌지를 먹은 지 얼마나 오렌지... 같은 말장난에 여전히 픽하고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 빨리 돈을 모아 결혼을 하고 잘 정착해서 나와 같은 자식을 낳아 더 풍성한 오렌지 농장을 만드는 것도 좋지만 말이다.


우리는 안다. 청춘은 모두 아프고 찬란하다. 스물일곱이 되니 더욱 리게 느껴진다. 오렌지처럼 씁쓸지금의 내 인생도 이 노을의 시기를 잘 견뎌 익으면 아단맛이 겠지. 유의미한 수확을 고대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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