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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우 Jul 02. 2020

<비행>

많이 변했다


비행



비행 [flight, 飛行] : 생물이 스스로 하늘과 땅 사이를 나는 것을 말한다.


비행 [juvenile delinquency, 行] : 잘못되거나 그릇된 행위로써, 주로 소년비행을 가리키는 것.


비행 [bhang] : 방은 대마 제품이다. 인도 대륙에서 종교적 의미, 기호품, 약효를 기대하기 위한 섭취 등의 여러 가지 이유로 음식과 음료에 혼합된 형태로 전통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https://soundcloud.com/esensofficial/6xilzhi4cf8c




살다 보니까




[Verse 1]


야, 내가 많이 변했냐?

살다 보니까 다 변하더란 말들

믿을 놈 없는 곳이라 조심하라는 말들

난 널 뭐를 보고 믿지?



2015년 올해의 인트로를 꼽으라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이센스의 "야, 내가 많이 변했냐?"에 손을 들어주지 않을까 싶다. 구체적인 이유는 모르겠으나 이 라인은 시작부터 우리의 머리를 세게 때린다. 변했나? 내가?


"야, 살다 보니까 다 변해~"라고 말하는 사람들, "믿을 놈 나 하나밖에 없어~"라고 말하는 사람들. 이들의 공통점은 '비겁함'이다. 사람은 누구나 변한다. 그리고 사람은 누구나 배신을 당한다. 하지만 이후에 덤덤이 본인을 돌아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끊임없이 누군가를 탓하는 사람이 있다. 비겁한 사람들은 본인의 변화를 사회나 환경에 탓을 돌리고 본인이 당한 배신을 신뢰하지 못할 사람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비겁한 사람들의 충고는 애석하게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러니 화자는 묻는 것이다. "난 (비겁한) 널 뭘 보고 믿지?"



의리 따지던 친구들도 길이 나눠지지

절대 순진하지 말라네

많은 요구사항 동시에 몇 가지 듣지

못 미더운 그놈의 말과 오래된 친구의 절대 알 수 없는 속

어쩜 이 생각에 시간 쓴 내가 제일 더러워



의리를 말하던 순수한 친구들이 충고한다. 절대 순진하면 안 된다. 순진하면 피해 보는 건 너야. 나를 순진하지 못하게 만드는 수많은 요구사항들 사이에서 몇 가지를 듣는다. 이건 '비겁한 사람'들과 '의리를 말하던 친구'들의 차이점이자 공통점이다. 못 미더운 그놈(=비겁한 사람)의 말과 오래된 친구(=의리 따지던 친구들)의 절대 알 수 없는 속은 명백한 신뢰도 차이를 가지나 결국은 똑같은 충고로 귀결된다. 순수하지 말자. 그래서 어쩌면 이 따위 생각에 빠진 내가 사실은 더욱 순수하지 못한 사람(순수하길 원하지만) 일지도 모른다.



다들 경쟁, 비교하며 따져 드는 우위

아름다운 일 아니라고 뉴스는 떠들지만

금방 바뀌는 일이 아닌 걸 다 봤어 우린

옆에 일 아닌 듯 지내는 기술을 배우지

슬퍼만 하면 애지, 내가 버릇이 되어있는

착한 내 친구의 삶까지는 내가 못 챙겨

서로 이해해, 신나기만 하던 주정뱅이가 변하긴 했네

Life goes on



아직도 뉴스에서는 경쟁에 지친 사람들의 사망 소식이 들려오는데도 여전히 우리는 경쟁하고 비교우위를 따진다. 그것이 아름답지 않은 것을 알고 있는 동시에 금방 바뀌지 않는 일임에도 우리는 동의한다. 바로 당장 내 옆 사람들의 일이 아닌 것처럼 애써 무시하고 살아가는 '기술'을 배운다는 말이 폐부를 깊게 찌른다. 우리 아버지, 고등학생 시절의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공부하기 싫으면 기술이라도 배워라.


그저 슬퍼만 하기에는 어른이 되었다. 버릇처럼 나를 찾는(기대는) 착한 내 친구의 삶은 그래서 챙겨줄 수 없다. 우리는 이제 애가 아닌 어른이니까. 각자 길이 나눠진 의리 따지던 친구들처럼 우리는 묵묵히 각자의 길을 걸어야 한다. 그래서 서로 이해한다. "살다 보니 변하는"사람과 "믿을 놈 없는 곳이니 조심하라는"사람들의 입장을 이해한다. 마음에 들지 않아도 이해한다. 그게 각자의 방식이니까.


첫 질문에 대한 답변을 내놓는다.

"야, 내가 많이 변했냐?"

"응, 많이 변했어"




살자


[Verse 2]


'차라리 그때가 나았지'

그건 아무짝에 쓸모없는 대사

네가 보낸 십 대의 삶이 또

괴로웠던 군대가 지금 되려 그립다니

빨리 뛰쳐나가고 싶어 했던 건 너잖니



"차라리 그때가 나았지"라는 후회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지나 대학교에 입학하고 곧이어 군입대를, 전역을, 졸업을, 입사와 퇴사를 앞둘수록 그렇게 느껴진다. 우리는 항상 바로 직전의 기억을 미화한다. 추억 보정한다. 대학만 가면, 전역만 하면, 졸업만 하면, 취업만 하면은 다 부질없는 가정일 뿐이다. 과거는 갔고 미래는 모르지만 우리는 현재를 산다.



Seven to ten, 책상에 앉아 있을 땐 지나가기만 바랬지

이게 꼭 그때의 얘기만은 아닌 듯하네 너한텐

마시고 죽지는 말자, 보면 다 왔다 갔다 해

자신의 모자름인가 불공평인가

시간 길게 두고 생각해볼 만 하지만

그걸 허락해주지 않네, 다 work, work



지금 너의 삶은 7시부터 10시까지 공부만 하던 학창 시절과 딱히 다른 것 같지도 않다. 그때나 지금이나 너는 후회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마시고 죽을 필요까지는 없다. 삶과 이상의 괴리감에서 잠시 벗어나려 할 필요가 없다. 살다 보면 사람들은 모두 왔다 갔다 하기 때문이다. 너만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해'하는 것이다. 살다 보니 변하는 사람과 사람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후천적으로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과연 이 주제는 '내 모자람'에서 시작하는 것일까. 아니면 '불공평'한 세상 때문일까. 시간을 길게 두고 생각해볼 법한 주제지만 아무도 그걸 허락해주지 않는다. 학업, 사랑, 일이 끊임없이 우리의 발목을 붙잡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얼 하든 끊임없이 달려야 한다. 사고는 멈출 때야 비로소 가능한데.



노른자위로 일단 가보게 엉덩이 털고 일어나지

반나절 넘게 걸려 도착할

그곳을 그려보며 괴로운 비행도 참아

날씨도 좋았으면 좋겠네

춥지도 덥지도 않고 딱 적당하게



아이러니하게도 멈추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서 기인한다. '노른자위'로 가기 위해. 더 좋은 위치를 얻기 위해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야 하기 때문에. 반나절이 될지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언젠가 도착할지도 모를 '그곳'을 상상하며 우리는 괴로운 '비행'도 참는다. 그곳에는 날씨도 좋았으면 좋겠다.




고장


앞으로 나아감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비행'을 말한다. 하지만 현실은 '운행'일 확률이 높다. 우리는 비행기보다 자동차에 익숙한 것처럼 말이다. 어떤 운송수단이 됐든 우리는 목적지를 향해 나아간다. 그 과정에 걸림돌은 언제나 존재한다. 자동차가 고장 나면, 비행기가 고장 나면 잠시간의 수리과정을 거치는 것처럼 우리는 관조하듯 삶을 되돌아보는 휴식기가 필요하다. 언젠가 도달할 춥지도 덥지도 않은 적당한 날씨의 어딘가를 위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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