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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우 Aug 14. 2020

사진을 드럽게 못 찍는 사람들

날 틀에 박을 수 있는 건 내 인스타그램뿐

사진기가 보급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절, 사람들은 카메라의 플래시가 인간의 영혼을 흡수한다고 믿었다. 영혼이 눈을 통해 왕래한다는 이 믿음 때문에 구한말의 사진을 보면 사진 속 사람들의 눈빛이 매우 강렬하다. 카메라의 눈에게 영혼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일부러 눈을 강하게 치켜뜬 것이다. 이는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유럽과 미국에서도 통하는 미신이었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카메라는 이러한 미신에 의해 외면당해왔다.


영화 <곡성>에는 이 미신을 극적으로 활용한 씬이 있다. 극의 엔딩 부분, 살해된 종구(곽도원 분)의 가족들과 이를 망연자실하게 바라보는 종구의 모습을 일광(황정민 분)은 태연하게 카메라에 담는다.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들은 이 장면에서 묘한 공포심을 느꼈다. 실제 영화 속에서의 일광은 종구와 그의 가족들을 피사체로 사용했지만 그를 담는 영화의 프레임은 이 포착의 과정이 마치 관객들을 향하는 것처럼 연출했기 때문이다. 감독인 나홍진은 관객들과의 질의응답 시간을 통해 이 카메라 씬은 사진을 찍어 피해자의 영혼을 담는다는 의미를 표현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나홍진, <곡성>


지금과 같은 이미지의 시대에는 퍽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순간의 포착을 위해 휴대전화를 꺼내 든다. 단순히 카메라의 성능이 좋다는 이유로 특정 브랜드의 휴대전화를 선호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카메라는 이제 일상의 영역에서 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된 것이다.




사진을 찍고 찍히는 행위가 자연스러워지자 기술적으로 '잘' 찍은 사진들이 필요해졌다. 그 시작은 '가족사진'이나 '영정사진'과 같은 특별한 순간의 사진들이었다. 거실 벽면에 가족사진을 걸어두는 것은 우리가 화목한 가정임을 간접적으로 증명하는 가족주의 문화 중 하나였고 현생의 마지막 모습을 최대한 정갈하게 담아내 남은 자들의 추억을 미화시키는 영정사진 또한 이와 유사한 이유로 유행했다. 필요에 의해 사람들은 사진을 잘 찍기로 소문난 사진관을 발품을 팔며 찾아다녔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스마트폰에 내장된 카메라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한 고화질의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되자 사람들은 이러한 문화와 점차 멀어지기 시작했다. 기껏해야 증명사진이나 커플사진을 찍기 위해서만 가끔 사진관을 찾았다.


그렇게 사진이 힘을 발휘하는 곳은 '일상'으로 변화했다. 이제 우리는 일상에서 사진을 잘 찍어야 했다. 여기에는 소셜 미디어가 가장 큰 원인을 제공했다. 특히 '인스타그램'이 그랬다. 인스타그램의 이전 세대 소셜 미디어라고 볼 수 있는 '페이스북'과 '트위터'는 각각 뉴스와 텍스트 미디어로써 그만의 정체성을 가졌다면 인스타그램은 철저히 '이미지' 위주의 플랫폼으로 출발했다. 지금은 대 유튜브 시대에 발맞춰 다양한 동영상 기능을 추가했지만 원래 인스타그램은 정사각형 프레임 하나만을 덩그러니 전시하는 공간이었다. 누구보다 유행에 민감한 힙스터들은 이 플랫폼을 통해 힙한 사진 한 장과 함께 '#mood'를 연출했다. 그것은 '무슨 말이 필요한가? 사진 자체에서 느껴지지 않는가? 이 분위기(mood)가?'라는 뜻을 내포했다.


인스타그램


이미지 하나로 본인을 나타내는 문화가 힙한 것이 되자 사람들은 너도나도 핫 플레이스를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피사체를 돋보이게 만드는 오브제가 가득한 공간들이 그 수요에 따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일명 '사진 맛집'이라고 부르는 공간들이 유명세를 탔다. 공간의 존재 이유보다는 공간 자체에 대한 선호도가 우선순위가 된 것이다. 일상과 힙의 접점을 만들기 쉬운 카페가 가장 큰 수혜를 입었다. 그렇게 몇몇 카페는 커피의 맛보다는 의자의 높낮이, 풍부한 채광, 오픈형 주방 등의 총체적인 인테리어에 신경을 곤두세웠고 그들의 주요 고객들은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커피를 마시는 자신을 담기 위해 카페를 방문하는 사람들이었다.


연남동, <VERS GARDEN & HOUSE>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나타났다. 고작 몇 장의 사진 때문에 인간관계에서 묘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한 것이다. 피사체가 되기 위해선 필히 사진을 찍어줘야 할 사람이 있어야 했고 좋은 사진을 건지기 위해선 파트너가 중요해졌다.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대체로 여성들에게서 이 문제가 크게 대두되었다.


지난 1월, 한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사진 못 찍는 애들 솔직히 짜증 나지 않냐'라는 게시물이 큰 반향을 일으켰다. 내용은 예쁜 장소로 놀러 가면 나는 인생샷을 몇 장씩 건져주는데 정작 내 사진은 드럽게 못 찍어주는 친구가 짜증 난다는 것이었다.


네이트판


댓글의 반응은 반반으로 나뉘었다. '못 찍는 걸 알면서도 계속 사진을 찍어달라는 것도 짜증 난다'는 비동의 파의 입장과 '글쓴이와 비슷한 억울함을 느껴본 적이 있다'는 동의 파의 입장이 대립되었다. 나는 동의 파의 입장에 조금 더 공감했다. 같은 돈을 내고 같은 시간을 내서 놀러 간 휴양지에서 나는 상대방을 배려해 최대한 예쁜 사진을 찍어주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지만 내가 받은 답례는 그 노력에 비해 무성의하다면, 심지어 그들은 내가 찍어준 예쁜 사진들을 인스타그램에 포스팅했지만 정작 나는 포스팅할만한 사진을 건지지 못했다면 상대방에게 실망감을 느끼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사진을 잘 찍는 것이 정말 중요해진 것에 비해 사진을 찍는 행위 자체에 어떠한 감정을 담는 것은 '고작'이 되었다. 고작 사진 하나 가지고 쩨쩨하게 군다며 '인스타충'이라고 비하하는 문화가 뒤따라 붙었고 인간관계에 있어 이러한 묘한 기류를 피하기 위해 크게 네 가지 집단이 나타났다.


우선 '인생샷 품앗이'가 가능한 '사진을 잘 찍는 사람들로 모인 집단'이다. 대개 여성 2명으로 이루어진 경우가 많으며 이들은 수많은 촬영 경험을 통해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서로의 요구사항을 충분히 만족시킬 수 있는 베테랑들이다. 주로 관광지나 카페에 자주 출몰하며 특히 '사진 맛집'으로 유명한 핫 플레이스에는 이 유형의 여성들이 가장 많이 상주하고 있다. 남성의 경우에는 잘 존재하지 않는 그룹인데 대체로 "남자들끼리 무슨 사진이냐"는 고정관념이 여전히 팽배하다는 점에서 정말 극소수로 발견되는 집단이다.


다음은 '서로 사진을 찍지 않는 집단'이다. 이 집단은 앞서 말한 커뮤니티의 글처럼 '나는 잘 찍지만 상대방은 잘 못 찍거나 찍는 걸 싫어하는 경우'에 가장 많이 나타난다. 한 번쯤은 사진 때문에 서로 감정이 상해본 경험이 있을 확률이 높으며 예쁜 장소를 발견하더라도 서로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셀프 카메라 모드로 본인 사진을 찍기에 여념이 없어 한쪽이 멍하니 기다리고 있는 장면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들은 불필요한 감정싸움을 피하기 위해 사진을 찍고 싶어도 이를 요구하지 않고 되려 한 발짝 떨어진다.


세 번째는 '모든 것을 내려놓는 집단'이다. 대체로 이 집단은 4인 이상의 절친한 사람들로 구성된 그룹이다. 한 프레임 안에 담기도 힘들뿐더러 개인의 사진을 찍기에는 시간이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들은 주로 지나치게 정적이거나 엽기적인 사진을 찍는다. 어딘가를 방문했다는 증거를 남기기 위해 의례적인 포즈로 사진을 찍거나 '얼굴 몰아주기'와 같은 유래를 알 수 없는 사진 기법을 주로 활용한다. 이들은 대개 이 집단에서 만큼은 인생샷을 포기한 경우가 많으며 최대한 덜 튀거나 최대한 망가지며 사진을 추억으로 활용한다.


마마무의 '얼굴 몰아주기'


마지막은 '일방적으로 사진을 찍고/찍히는 집단'이다. 이 집단은 연인의 형태에서 가장 자주 나타난다. 보통 사진에 크게 관심이 없는 남자 친구가 여자 친구의 인생샷을 건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많다. 근래 들어 이 집단은 효율적인 전신샷을 건져내기 위해 삼각대를 주로 사용하며 이 또한 남자 친구가 주로 각도와 피사체의 위치를 조정하는 사진기사로 활약하며 바닷가를 등지로 타이머를 맞추고 후다닥 여자 친구의 곁으로 달려가는 장면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이 집단은 '인스타그램의 남자 친구들'이라는 온라인 커뮤니티가 생길 정도로 전 세계적으로 발견된다.


페이스북 페이지, <Boyfriends of Instagram>
Worldation




사진을 드럽게 못 찍는 '똥손'들을 대상으로 한 매뉴얼도 등장했다. 이 부분은 내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해보겠다. 뒷 광고는 일절 없으며 불펌은 환영한다.


1.  다리가 길어 보이고 싶다면 렌즈의 각도는 위로, 발 끝은 프레임에 가깝게 맞춰라


눈높이에서 찍은 사진은 카메라 렌즈의 왜곡 때문에 피사체의 키를 실물보다 작아 보이게 만든다. 다리가 길어 보이게 사진을 찍고 싶다면 허리를 최대한 뒤로 젖혀 카메라의 각도를 올려보자. 카메라의 위치가 낮으면 낮을수록 이 효과는 더욱 극대화된다. 또한 피사체의 발끝을 프레임 하단에 가깝게 맞추고 몸은 사진의 중앙 부근에 위치시킨다면 밸런스가 잘 잡힌 인생샷을 건질 수 있다.


제주도에서 글쓴이


2. 필터를 써라


자연광이 부족하거나 실내광이 어두침침한 장소에서 사진을 찍는다면 필터를 씌우는 것도 효과적이다. 요즘 출시되는 카메라 어플은 자동으로 명암을 조절해주며 피부의 잡티까지도 말끔하게 지워준다. 후보정을 거칠 자신이 있다면 기본 카메라로 촬영하는 것을 더 추천하나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거나 그 과정이 귀찮다면 필터를 쓰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롯데월드에서 글쓴이


3. 포즈가 어색하다면 이를 보완할 아이템을 적극 활용하라


내가 모델이 아닌 이상 누군가의 피사체가 된다는 것은 꽤나 부담스러운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유독 사진을 찍을 때면 부자연스러운 모습을 많이 보이는데 특히 '손의 위치'와 '자세'가 그렇다.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아이템을 활용해보자. 자고로 사진은 자연스러울 때 가장 잘 나오는 법이다. 손이 어색하다면 손에 무언가를 쥐고 다리가 어색하다면 의자에 앉아보자. 얼굴 자체에 자신이 없다면 뒷모습을 촬영하는 것도 좋은 대안이다. 고개를 약간 숙이거나 각도를 살짝 틀어주는 것도 효과적인 방법이다.


석촌동에서 글쓴이


4. 애매한 구도를 시도하지 말고 정방향으로 찍어라


주로 진취적인 남성들에게서 많이 나타나는 현상인데 근본도 없는 괴상한 구도를 잡아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피사체를 프레임 구석 어딘가에 처박아두는 애매한 구도를 고민할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정방향에 맞춰 사진을 찍어라. 뒷배경과 최대한 수평을 맞추고 피사체가 사진의 정중앙에 나온다면 최소한 평균 정도의 사진은 찍을 수 있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광안리에서 글쓴이


5. 이마저도 도저히 모르겠다면 교정 어플을 써라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사진을 드럽게 못 찍는 똥손이라면 구도를 자동으로 잡아주는 교정 어플을 써라. 이마저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면 사물을 눈으로만 볼 것을 추천한다.


구도 카메라 어플, <SOVS>




나는 피사체보다 촬영자가 되는 것을 더 선호한다. 스스로의 외모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인생샷을 건진 피사체가 기뻐하는 모습이 진심으로 좋기 때문이다. 나는 관찰력도 좋다. 상대방이 저기에 서면, 이런 포즈를 취하면 아주 근사한 사진이 나오겠다는 틀이 비교적 한눈에 보인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서 그러한 점을 더욱 잘 찾아낸다. 나는 귀찮을 정도로 여자 친구를 닦달하며 셔터를 눌러댔다.


어릴 적 나는 사진 찍는 걸 너무나도 싫어했다. 내 유년 시절 앨범을 들춰보면 대부분 엄마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울고 있는 사진들뿐이다. 왜 그랬을까. 나는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부터 이를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사진을 찍는 그 찰나의 침묵을 너무나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여러 번 사진을 찍자고 요구하는 아빠에게 짜증과 귀찮음을 느낀 것은 둘째치고 그 찰나의 순간이 아주 오랜 기억으로 남을 거라는 예감이 왜인지 모르게 나를 두렵게 만들었던 것이다. 한 장으로 끝나지 않는 사진들의 무덤 사이에서 오랜 시간 관짝을 들고 서 있는 기분을 느끼며 아주 어릴 때부터 완강했던 나는 툭하면 사진을 찍고 싶지 않다며 울고불고 떼를 썼다.


과거의 사람들은 카메라가 본인의 영혼을 사로잡는다고 믿었다. 나는 지금도 그 미신을 어느정도 믿는다. 생물로써 사람은 누구나 생동성을 가진다. 우리는 가만히 있다고 말하면서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끊임없이 눈을 깜빡이고 숨을 몰아쉬며 몸을 움직인다. 그래서 나는 사진이 좋다. 내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그 찰나의 순간을 정적으로 포착하는 게 좋다. 직접 눈으로 보고 느낀 것을 사진으로 완벽하게 담아내는 것은 앞으로도 영원히 불가능할 테지만 그와 비슷한 모습을 남길 수 있다는 게, 그보다 더한 감정을 남길 수 있다는 게 좋다. 사진은 실제와는 또 다른 특유의 매력이 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틀에 박히지 않으려 한다. 사진, 딱 하나를 제외하고. 우리는 프레임에 갇히는 걸 두려워하면서도 이 작고 네모난 프레임을 향해 활짝 미소를 짓는다. 오늘도 거리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카메라와 눈을 맞추며 조금은 어색하지만 희미한 웃음을 띄고 있다. 때론 귀찮더라도 이 소소한 행복에 조금 더 집중해보면 어떨까. 이왕 찍을 거면 드럽게(?) 못 찍는 거 보단 잘 찍는 게 좋잖아? 사진 찍는 걸 아무리 싫어하는 사람이라 해도 본인이 잘 나온 사진을 프로필 사진으로 쓰지 않는 사람들을 본 적 있는가? 적어도 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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