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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우 Aug 17. 2020

<Not Shy>

있지를 잡아보세요


나 다움



JYP 엔터테인먼트의 있지(ITZY)는 육각형 걸그룹이다. 내가 있지의 극성팬이자 믿지(MIDZY)여서 그렇게 느끼는 것만은 아니다. 그녀들의 음악은 커머셜 한 퍼포밍으로써 완벽에 가깝다.


대한민국 걸그룹의 구체적인 계보는 잘 모르겠으나 내 군 시절을 돌이켜보면 당시 큰 인기를 끌었던 걸그룹들의 주요 셀링 포인트는 '청순' 혹은 '섹시'였다. 철저한 남성 위주의 판매전략에 가까웠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단순한 논리다. 걸그룹을 주로 소비하는 남성과 보이그룹을 주로 소비하는 여성에 맞춰, 멤버 개개인의 강점에 맞춰 그룹의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다. 아이돌(IDOL)이란 단어의 뜻 그대로 그들은 우상이자 '환상'이 되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아이돌 시장의 판도도 뒤바뀌었다. 대중문화에 있어 여성들에 비해 지갑을 쉽게 열지 않는 남성들은 타깃층으로써의 가치가 감소했고 과한 성적 대상화 또한 경계되었기에 걸그룹은 변화를 택했다. '틴 크러쉬'와 '걸 크러쉬'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꽤나 괜찮은 대안이었다. 이전의 셀링 포인트였던 청순과 섹시 또한 적절히 융합할 수 있는 포용력 있는 주제의식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 달라진 점은 '가사'다. 이 세대 아이돌들은 각자의 '개별성'을 강조한다. 나는 나고 너는 너다. 그 범위가 더욱 협소해지는 개인주의와 자유주의 시대 분위기를 따라가는 가사다. 이전 세대의 아이돌은 본인의 남성성과 여성성을 어필하거나 상대 성별을 향한 끊임없는 구애와 구차한 사랑을 피력했다면 이 세대 아이돌들은 '뭐가 어떻게 됐든 나는 나다!'를 외친다.


있지(ITZY)는 이 니즈를 가장 완벽하게 맞춰주는 팀이다. 데뷔곡인 <달라달라> (언니들이 말해 철들려면 멀었대 I'm sorry sorry 철들 생각 없어요)를 시작으로 <ICY> (다들 Blah blah 참 말 많아 난 괜찮아 계속 Blah blah They keep talkin', I keep walkin')와 <WANNABE> (누가 뭐라 해도 난 나야 난 그냥 내가 되고 싶어 I wanna be me, me, me 굳이 뭔가 될 필요는 없어 난 그냥 나일 때 완벽하니까)를 거쳐 오늘 발매한 <Not Shy>까지, 그녀들의 타이틀 곡은 단 한 번도 빠짐없이 본인들의 개성과 주체성을 강조해왔다.


그룹의 구성 또한 젊은 시대상을 반영하기에 적절하다. 있지의 멤버인 예지, 리아, 류진, 채령, 유나는 모두 00년도 이후에 출생한 '디지털 네이티브'들이다. 또한, 다문화 시대에 맞춰 중국이나 일본, 필리핀 출신의 멤버를 포함하는 여타 그룹에 비해 멤버 전원이 한국인이기 때문에 조금 더 토속적(?)이기도 하다. 참고로 이들의 MBTI는 각각 ISFJ, ENFJ, INTJ, ESFJ, ENFJ로 멤버 모두가 공통적으로 '판단형 J'를 포함하고 있다. 결단력이 있고 계획을 중시하는 이들이 주장하는 '나 다움'에는 설득력이 있다.


이번 편의 '가사도우미'는 이례적으로 해당 곡의 뮤직비디오 속 몇몇 장면들과 함께 포커스를 맞추겠다.


https://www.youtube.com/watch?v=wTowEKjDGkU





[INTRO & PART A]


Not shy Not me (ITZY)

난 다 원해 다다 yeah

Not shy Not me



곡의 시작부는 강렬한 비트와 중독성 있는 훅을 '미리 보기'로 보여준다. 사랑을 말하는 데 있어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그녀들의 정체성을 강조하기 위해 뮤직비디오는 서부극의 형식으로 촬영되었는데 인트로의 이 장면을 미루어보면 있지는 현재 '현상수배범'들이다. 무언가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현상금이 붙어있는 설정인 것이다. 사례금인 20,190,212 달러는 그녀들의 데뷔일인 2019년 02월 12일을 깨알같이 패러디한 부분이다.



난 빨리빨리 원하는 걸 말해

못 가지면 어때 괜히

망설이다 시간만 가니

Yeah 다 말할래 cuz I like it, cuz I like it, like it

기다려 왜 기다려서 뭐해

내가 내 맘을 왜 왜 말하면 안 돼 yeah

그냥 탁 그냥 탁탁탁탁탁

Not shy to say I want you



곡의 화자는 원하는 걸 직접적으로 말하는 성격이다. 못 가지면 어떡할까 괜한 고민을 하며 시간을 보낼 바에는 원하는 것을 바로바로 말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내가 좋아하기' 때문이다. 동일한 의미를 가진 가사가 반복된다. 망설이다 시간만 가기 때문에 이들은 기다리지 않는다. 그냥 탁, 터놓고 말하는 것이다. 본인의 진실된 속마음을. 왜냐? Not shy to say I want you. 내가 당신을 원한다는 것을 말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후술 하겠지만 곡의 주제의식을 관통하는 의성어가 등장한다. 바로 '탁'이다. 탁 터놓고 말한다는 의미를 가지는 동시에 영어로 '말하다'의 의미를 가지는 talk과 유사한 발음 체계를 보인다. 또한 어딘가를 향해 달려가는 듯한 소리인 '탁탁탁탁탁'으로 의미를 연장해 다중적인 해석을 가능케 한 워드 플레이를 선보였다. 귀로 들리는 사운드 디자인적으로도, 가사적으로도 탁월한 단어 기용이다.






[PRE-HOOK & HOOK]


Hey there hey there 우리는

Great pair great pair 네 맘이

뭔지 모르지만 내 생각이

맞아 그러니까 yeah yeah

내 맘은 내 거 그러니까

좋아한다고 자유니까

네 맘은 네 거 맞으니까



훅에 진입하기 앞서 프리 훅을 통해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화자는 불분명한 'there'들에게 우리는 완벽한 짝(pair)이라고 말한다. 명확한 대상이 없기 때문에 이 'there'들은 '있지의 팬들'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뮤직비디오의 장면 또한 현상수배범인 있지가 어떤 차량을 쫓아가는 장면을 통해 이들이 '차량 납치범'임을 직접적으로 시사한다. 이들은 무엇을 훔치기 위해 저 차량을 쫓고 있을까.


또 한 번 주체성 강조의 표현이 등장한다. 네 맘이 뭔지는 몰라도 내 생각이 맞다.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한 부분이다. 뭔지 모르는 네 맘이 '나를 좋아할 수도' 혹은 '나를 좋아하지 않을 수도'있다. 전자의 경우 내 생각이 맞다는 표현은 화자가 생각하기에 'there'들은 화자를 좋아하는 것이다. 반면 후자의 경우 내 생각이 맞다는 표현은 'there'들이 설령 나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내가 맞기 때문에(!) 나를 따라오라는 뜻이다. 애초에 선택의 여지조차 주지 않는 것이다.


어떻게든 '내가 맞기' 때문에 그리고 내 맘은 내 것이기 때문에 자유롭게 당신을 '좋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있지가 아니라면 쉽게 선언할 수 없는 자의식 과잉이다. 하지만 마지막 문장에서 일말의 양심의 가책을 느낀 것처럼 보인다. '네 맘은 네 것이 맞다' 세상 당당하게 본인을 스웨깅 하던 모습에서 한 발짝 물러선 것이다. 이 아이러니한 표현은 마치 존 스튜어트 밀의 질적 공리주의를 이야기하다 제러미 벤담의 양적 공리주의로 급선회하는 모습과 유사하다. 사랑(쾌락)에 대한 개인의 다양성에도 등급이 있다고 판단하다 오히려 이는 사실이 아니라 그저 양의 차이에 따라 다르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리니 말이다.



말해봐 다 어서 다 cuz I'm not shy

Not shy Not me ITZY

난 다 원해 다다 Not shy

Not shy Not me

Give me 다 다다 다다다다다

Not shy Not me ITZY

난 다 원해 다다 Not shy

Not shy Not me

너를 원해 뭐 어때 cuz I'm not shy



'AUTO SUPPLY' 간판을 단 배경에서 훅이 함께 한다. 내 맘은 내거고 네 맘도 네 거니까 이제 말해보라고 한다. 나는 부끄럼을 타지 않아 다 말했으니 너도 사랑을 말하라는 뜻이다. 한 가지 그림이 연상되지 않는가? 완벽한 'pair'라고 말하는 대상이 있지의 '팬들'이라면 이는 있지가 팬들에게 전하는 말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우리는 팬 여러분들을 사랑하니 팬 여러분들도 우리를 사랑한다고 말해주세요.


팬들의 사랑을 쫓아간 있지가 차량 용품을 판매하는 곳이라는 뜻인 'AUTO SUPPLY''바깥'에서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은 그녀들의 '노력'의 메타포로 추정된다. 팬들을 향한 추진력을 얻기 위해 잠시간 차량을 정차한 그녀들. '다' 원하는 그녀들은 말한다. Give me 다 다다 다다다다다. 앞서 말했던 '탁'과 유사하게 사용된 의성어다. 당신의 '모든'것을 달라는 의미를 가지는 동시에 빠르게 달려오는 듯한 소리와 유사한 '다다다다다'를 전개해 있지에게 빠르게 달려와달라는 이중의 의미를 가진다. 앞서 '탁탁탁탁탁'에 비해 한 단계 더 높은 속력의 뉘앙스를 가졌다는 점에서 이 '발진'은 팬들에 대한 사랑을 보다 탁월하게 표현한 점으로 느껴진다.





[PART B]


넌 빨리빨리 대답할 필욘 없어

어차피 내 거니까 woo

날 보고 있기만 하면 돼

Yeah You will like it, cuz you like it

Cuz you like it like it

내가 미워 아니라면 비워

다른 건 다 지워 내가 네 only one yeah

그냥 싹 지워 싹싹싹싹싹

Not shy to say I want you



B 파트는 A 파트와 구조적으로 대칭을 이룬다. A 파트의 첫 가사인 '난 빨리빨리 원하는 걸 말해'와 B 파트의 첫 가사인 '넌 빨리빨리 대답할 필욘없어'와 같이 말이다. 하지만 이유는 다르다. A 파트의 이유는 '내 시간이 아깝기 때문'이지만 B 파트의 이유는 '어차피 내 것이기 때문'이다. 뮤직비디오에서 쫓아가는 차량을 향해 얄밉게 메롱을 하는 모습은 '이미 내 손안에 있으니 달아나 봐야 헛수고'임을 뜻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B 파트에도 또 다른 의성어인 '싹'이 등장하는데 여기에는 이중적인 의미는 물론 '달리지는 전개'가 담겨있다. 뮤직비디오는 이 부분에서 리더 예지가 쫓아가는 차량의 앞을 가로막고 화면이 빨갛게 물드는 데 이는 한 발더 다가가는 '진취적인 대시'를 상징한다. 


내가 미운 게 아니라면 비우라는 말은 두 가지를 상상할 수 있게 만든다. 하나는 술을 마시는 것, 다른 하나는 내 이름이 들어갈 칸을 비우는 것. '다른 건 다 지워'라는 가사가 뒤따라 붙는 걸 봐선 후자의 해석에 더 가까워 보인다. 있지는 당신의 'only one'이니 다른 건 그냥 '싹'지워 버리라고 말한다.




내 마음대로



본 곡의 프리 훅과 메인 훅이 한 번 더 반복되면서 뮤직비디오는 차에서 내린 있지가 쫓아간 차량을 탈취해 달아나는 모습을 담는다. 이는 '팬들의 마음을 훔치는 데 성공한 있지'를 비유한 표현이기도 하다.



그녀들은 훔친 차량을 가지고 'GARAGE'로 왔다. 차고를 뜻하는 말이지만 앞서 훅의 무대가 되었던 'AUTO SUPPLY'와는 비슷한 듯 다르다. GARAGE는 '차를 보관하는 동시에 정비하는 곳'을 뜻하기 때문이다. 'AUTO SUPPLY'의 배경과 또 다른 점은 뮤직비디오 속 있지는 처음 철저히 '바깥'에서만 군무를 선보였다. 팬들의 사랑을 훔치기 위해 '외적'으로 노력했음(차량을 정비했음)을 시사한다. 반면에 팬들의 사랑을 훔친 지금은 '안과 바깥'을 넘나들며 군무를 춘다. 팬들의 '대내외적'인 부분(차량을 보관하는 동시에 정비하는) 모두에 인상을 남기겠다는 포부를 뜻한다.



[OUTRO]


후회하긴 싫으니까

엔딩 상관없으니까

Go go go 모두 쏟아내

No yes no 뭐든지 어때

이러면 저러면 어때

어차피 안 될 거 빼고 다 돼

Let's just be who we are

Do what we do 네 맘대로 해

Let the beat drop



아웃트로에 진입하면서 뮤직비디오 속 있지는 훔친 차량의 화물칸의 문을 연다. 그곳에는 'FRAGILE(파손 주의)'이라고 써져있는 정체불명의 상자가 가득한데 이 '개방'을 기점으로 있지는 뮤직비디오 내내 휘황찬란한 색상의 옷을 입은 것과 대비되는 '순백의 의상'을 맞춰 입고 춤을 춘다.


이는 팬들의 마음을 '소중하게 다루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사람의 마음은 누구나 파손 주의 스티커를 붙여야 할 정도로 유약하다. 동시에 팬들의 마음을 '순수하게 다루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순백의 의상을 통해 아웃트로의 가사처럼 '후회하기 싫고', '엔딩은 상관없기' 때문에 팬들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있지의 속마음을 엿볼 수 있다. 있지의 팬으로서 참으로 감동적인 연출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이 속에서 본인들의 주체성 또한 잃지 않는다. 팬들에게 훔친 마음(하얀 세상의 파손 주의 상자)들을 모아놓은 곳을 비추어주는 동시에 이전의 '차를 가로막는 씬'처럼 빨갛게 물든 배경을 빠른 속도로 반복해 보여주면서 진취적인 모습 또한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한다.


No든 Yes든 상관없이,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떤가. 어차피 안 될 건 안 되고 그걸 뺀 나머지는 모두 이루어진다. 이 얼마나 철학적인 가사인가. 있지는 팬들을 향한 사랑은 물론 'Let's just be who we are'를 외친다. 그냥 우리가 되자고. 이것은 있지 그녀들에게도, 팬들에게도 공통적으로 향하는 말이다.


있지는 이전의 곡들에서 CCTV에 옷가지를 던지거나(달라달라) 본인의 머리를 싹둑 자르는(WANNABE) 형식의 연출로 본인의 주체성을 강조하되 '행동'으로써 누군가를 제한하진 않았다. 하지만 본 곡인 <Not Shy>의 가사는 이에 한 발짝 더 나아가 '개입'을 선언한다. 더욱 강력해진 본인만의 자유주의로 그녀들은 팬들을, 더 나아가 가요계를 정복하고자 한다. 믿지로써 그녀들이 더욱 멀리 날기를 기원해본다. 있지 믿지 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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